레트로 중식당을 오픈하다
떡볶이 다음은 짜장면으로 결정했다는 임 대표의 말은 참으로 생뚱맞았다.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었고.....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배고플 때 짜장면은 음식이지만, 그렇지 않을 땐, 짜장면은 추억이자 향수다. 떡볶이에 이어 짜장면 사업에 도전한다고 하니, 레트로 감성의 요식업에 특화하려는 건가 싶었다. 떡볶이 사업도 아직 자리를 잡았다고 하기엔 이른데, 계속해서 업을 확장한다고 하니,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요식업 중 폐업률이 가장 낮은 분야, 다시 말해, 성공률이 가장 높은 분야가 중식이라는 점이다. 아무래도, 중식당을 창업한다는 것은 타 업종 대비 요리의 전문성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이 크고, 이로 말미암아 상대적인 진입장벽이 더 높기 때문이다. 매일 먹기는 부담되지만, 짜장면과 짬뽕은 평생 메뉴이기도 하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학생들도 중국집 가서 짜장면 한 그릇씩 시켜 먹는 것은 큰 부담이 없다. (단언컨대, 당구장에서 시켜 먹는 짜장면보다 맛난 음식도 없다.) 입학식이나 졸업식 때 부모님과 함께 식사하기에도 중국집이 제격이다.
허나, 중식 요리가 유행을 타지 않는 스테디셀러인 만큼, 기존에 자리 잡은 중식 프랜차이즈도 많다. 어느 동네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수많은 ‘만리장성’, ‘동보성’은 별개로 치더라도,
‘홍콩반점, 이비가짬뽕, 홍짜장, 짬뽕지존’등 가맹점 수만 100개 이상인 프랜차이즈 중식당들도 많았다. 특히 백종원 대표의 ‘홍콩반점’은 넘사벽 아니던가. 배민 앱에서 마포 일대 중식 전문점 숫자를 검색해 보았다. 이렇게 많은 자영업자들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그래도, 다른 음식 메뉴들보다는 동 업종의 경쟁자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고, 남녀노소의 선호도가 높다는 보편성 측면에서 도전해 볼 가치는 있어 보였다.
무엇보다, 중식 조리는 어렵고 힘들다는 편견을 깨야 했다. 중식당이 잘 되려면 쫄깃한 면발은 기본이고, 다양한 메뉴의 중식 요리를 잘하는 주방장이 필요하고, 그에 의해 성패가 좌우된다는 일반적인 인식이 강하다. 진입장벽이 높다는 인식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별다른 조리 기술이 없어도 창업자 본인이 쉽고 간단하게 요리할 수 있어야 하고, 맛의 퀄리티가 유지되어야 한다. 게다가 가격까지 합리적이어야 한다.
쌍팔년도, 호돌이가 뛰어놀던 88 서울올림픽 시절의 향수와 레트로 감성,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가격 등을 고려해 상호를 ‘쌍팔반점’으로 정했다.
아는 것과 실제로 행동하는 것은 다르다. “칼질과 웍질, 그리고 주방장이 필요 없는 중국집, 뜯고 넣고 끓이면 끝”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야심차게 내세웠지만, 막상 시작해 보니, 쉽지 않았다. 불지 않는 고기짜장, 맵기 조절이 가능한 짬뽕 등을 주력메뉴로 결정하고, 수개월간 시도와 수정을 반복한 끝에 대학생들이 많이 사는 봉천동에 쌍팔반점 1호점을 오픈했다. 직원과 아르바이트생들을 고용하고, 몇 주간의 준비시간을 거쳐 마침내 배달주문을 시작했으나, 오픈 몇 시간 만에 주문받기를 중단해야 했다.
통제하기 힘든 변수들은 도처에 도사리고 있기 마련이다. 이십 대의 청년들, 중식 요리는 먹는 것인 줄로만 알던 기존의 소비자들이 짜장면과 짬뽕, 꿔바로우를 직접 만들고, 멘보샤를 튀기며, 사이드 메뉴까지 챙겨 배달주문 1건을 완수하는 것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어렵다.
그러나, 실패의 두려움과 성공에 대한 믿음 사이 거리는 멀지 않다. 조리법을 더 익히고, 동선을 줄이는 등 배달주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방법을 익히는 데 약간의 시간이 더 필요했을 뿐이다. 기다림의 시간을 버텨내지 못한 이는 떠나가지만, 적응의 시간을 견딘 자는 능숙해진다. 재정비는 그리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어떤 일을 완전하게 준비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작하는 것이다.
약 6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리뷰는 쌓여갔고, 가성비 맛집이라는 소문이 났다. 야간 배달에 집중한 것이 단골손님 쌓기에 효과가 있었나 보다. 그러다가도, 야간 아르바이트에 결원이 생기면, 본사 인력이 투입되기도 하고, 날씨(눈) 때문에 의도치 않게 배달주문을 닫는 날들도 생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울다가 웃는 일들이 반복된다.
첫 매장을 오픈하고 나서 그리 긴 시간이 흐르진 않았음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배달에 특화한 소형점포 위주로 가맹 문의가 들어왔고, 홀 매장과 배달을 병행하는 중형규모의 직영점도 성업 중이며, 개업 후 여러 가지 사정(육체적 고단함, 원재료 가격의 상승, 거리제한 강화 등)으로 조기 폐업하는 가맹점도 생겼다. 상호와 메뉴, 재료와 조리법(레시피)은 표준화되었어도, 모든 가게마다 사람과 사연은 제각각이다. 미묘한 차이(대표자와 종업원의 조화, 역량, 끈기, 성실성)가 성업이냐 폐업이냐를 가르기도 하고, 객관적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어떤 요소가 매출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본사가 가맹점주들의 사연을 들어주고, 공감해 주고, 고충 사항을 반영해 주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자, 언제나 참인 명제다. 그러나, 이것은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다. 객관적인 데이터 분석이 필요하다. 매장 수나 가맹점 수가 늘어나는 경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매장별 매출액/매출원가/영업이익 등을 비교해 보고, 평균값과 표준편차를 계산해야 한다. 매출액 등의 증감률을 계산해 보고, 전반적으로 증가세인지 감소세인지, 아니면 보합세인지 그 패턴을 모니터링해야 한다. 특별히, 매출액이 높은 매장, 이상하리만큼 매출액이 적은 매장(표준편차가 +-1을 초과하는 매장)은 별도로 분석해 그 원인을 따져보아야 한다. 정량적 데이터가 있어야 객관적/맞춤형 매장관리가 가능하고, 상생 경영을 위한 전사적 경영전략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서는 쌍팔반점의 미래를 쉽사리 예측하기는 힘들다. 거시적으로는, 여전히 치열한 동 업종의 경쟁, 고공행진 중인 물가, 소비심리의 위축 등을 이겨내야 한다. 미시적으로는, 가맹점 수 증가를 위한 본사의 영업력 및 브랜드 홍보 강화, 본사의 현금흐름 개선, 인력 충원의 효율성 제고, 무엇보다 핵심경쟁력인 합리적 가격유지와 음식 맛의 진화 등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기업은행의 광고문구처럼, 이 세상에 (꿈이) 작은 기업은 없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세상에 (걱정거리가) 작은 기업도 없다. 밤낮없이 고군분투하는 이 땅의 수많은 기업인들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