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마을의 중심에서 마을 사람들에게 생명수를 제공하고, 휴식지가 되어주던 돌우물. 돌우물의 물이 맑고 시원하면, 그 마을에 풍요가 넘쳐났듯이, 스타트업 '돌우물'도 상생 정신을 통해 지역 상권에 활기를 가져다주고, 사람들에게 풍미 있는 음식 맛과 편안함을 전해주기 위해 시작되었다. 청년 기업가의 호연지기가 느껴지는 상호다.
내가 돌우물의 임 대표를 다시 만난 것은 2020년 설 즈음이었다. 수년간 가족 친지 모임이나 명절 때 보기 힘들어지자, 그의 안부가 궁금해졌고, 고향에서 서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전화를 걸었다. 이십 대 후반, 그 또래의 청년들이 취업 준비로 여념이 없을 시점에, 또래들과는 다른 진로를 결정했다는 소식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대학에서 인문학, 철학, 문예 창작을 전공한 임 대표에게, 애당초 (대기업) 취업은 맞지 않는 옷이었을 것이다. 신춘문예 당선이나,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하는 것이 전공자로서는 좋은 선택일 수 있지만, 어쩌면 그것은 기약 없는 시간과의 싸움이리라. 선택지가 많지 않은 경우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낫다.
# 떡볶이
돌우물의 시작은 작은 떡볶이 가게였다. 대구에 터 잡은 유명 떡볶이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아르바이트 경험을 해 본 그의 결정은 '떡볶이'였다. 만인이 사랑하는 메뉴이자,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도전해 볼 수 있는 메뉴. 떡볶이는 여전히 우리의 향수를 자극하고, 한때는 동네 길모퉁이를 걷다가도 여느 할머니가 운영하는 가게를 쉽게 찾아볼 수도 있었지만, 이제 모두 과거의 추억일 뿐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떡볶이 브랜드만 해도 “신전, 엽기, 죠스, 배떡, 청년다방” 등 열 손가락으로도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시장에서는 이미 다수의 떡볶이 프랜차이즈 업계 강자들이 엎치락뒤치락 순위 다툼을 하며 경쟁 중이고, 그 외에도 수많은 창업가들이, 새로운 메뉴와 참신한 브랜드명을 출시하는 방법으로 시장에 계속 뛰어들고 있다. 떡볶이뿐만 아니라, 치킨, 피자, 더 나아가 배달음식업과 요식업 전체까지도 이미 포화상태의 산업이 되어버렸다. 그야말로, 치킨게임이다.
언급하면 입만 아픈 레드오션 산업! 진입장벽이 낮고, 맛의 차별성도 크지 않아 경쟁이 치열하며, 예측 불가능한 배달주문에 몸도 고단하고 신경도 예민해져, 주변 사람이라면 대다수가 말리는, 대표적 3D 창업 분야다.
이렇듯, 떡볶이 가게 창업스토리는 지극히 평범하고 위태롭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도 크다. 음식점 허가총량제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한 해에도 수만 개의 음식점이 새로 문을 열고 닫는다. 행정안전부 통계를 보면, 2020년 한 해 동안 총 6만 5천여 개의 음식점이 창업을 했고, 폐업한 음식점 수가 약 5만 4천여 개로 집계됐다. 폐업률이 무려 83%에 이른다. 웬만한 자신감과 멘털로는 버텨내기가 버거운 수치다. 성공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는 세상에 블루오션 같은 것은 없다. 더구나 인문계 출신 청년들이 새롭게 개척해 나갈 창업시장이란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저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상품과 서비스에 나만의 필살기가 더해져 ‘경제적 부가가치’라는 이름으로, 세상의 평가를 받게 될 뿐이다. 취업에 뛰어들어 기업의 선택을 받을 것인가, 창업하여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것인가는, 조금 냉정게 말해, 온전히 본인의 몫이다.
2022년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학 졸업자들의 취업률은 67% 수준이다. 코로나 19 유행 전 수준으로 회복된 수치가 이 정도다. 이 중에서 인문계열 졸업자들의 취업률은 약 58%로 가장 저조한 수준이다. 선망의 직장이라 할 수 있는 대기업 취직이 9%, 공무원 임용이 10%, 공기업/공공기관 취업이 5% 정도라고 하니, 대략 76%의 대졸자들은 중소기업에 취직한다고 볼 수 있다. 대졸자들의 월평균급여 소득은 275만 원, 연봉으로 환산하면 3천3백만 원 수준이다. 우리나라 국민의 1인당 평균소득이 3만 5천 달러 정도니까, 직장인, 즉, 급여 소득자로서의 소득은 평균적인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평생 소득 수준을 크게 벗어나기 어려운 구조다.
더구나, 2021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취업자들의 평균 퇴직 나이는 49.3살로 쉰 살에도 못 미친다. 10년 전인 2011년 통계청 조사에서는 일자리를 그만둔 나이는 평균 53살이었다. 60살 정년이 의무화된 지 오래지만, 은퇴 시점은 오히려 빨라진 셈이다. 다만, 특이한 점은 지난해 취업했던 대졸자 28만 9809명 중 5만 8759명(20.3%)이 퇴직하였고, 이 중 상당한 수의 청년들이 창업가 또는 프리랜서의 길로 들어섰다는 점이다. 확실히 고용시장의 트렌드는 변화하고 있다.
돌우물 1호점, 쏘크라테스 떡볶이는 작은 가게에 불과했지만, 나름의 생존전략을 마련했다. 코로나로 말미암은 비대면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보았다. 홀 매장은 과감하게 포기하고, 배달전문점을 내기로 했다. 배달 수요가 많을 것으로 보이는 주택가에 매장을 오픈하되, 가게 보증금과 월세를 아끼기 위해 주택가 뒷골목, 공실 상태인 소형점포를 구했다. 대면 접촉이 죄악시되던 시기, 경기침체의 위기감은 점점 커져만 갔고, 그에 비례해 기존 음식점들의 보증금과 권리금, 월세가 점점 내려가는 상황이었다. 창업비용 4천만 원, 소크라테스 떡볶이는 공포에서 시작됐다.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스토리텔링도 가능하다 싶어서 상호를 쏘크라테스 떡볶이로 정했다. 누구나 아는 철학자의 이미지를 상표 화하고, 네 맛을 알라 라는 간단명료한 슬로건을 내세워 SNS를 중심으로 젊은 소비자들에게 어필했다.
인생은 타이밍이라 했던가. 때마침, 가수 나훈아가 오랜만에 신곡 테스형을 발표하면서 노래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라는 가사가 코로나 시대, 힘들고 답답한 사람들의 정서와 맞물리면서, 사실상 아무런 관련도 없는 쏘크라테스 떡볶이의 지명도와 매출에도 영향을 준 것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주문은 늘어났고, 가맹점 문의도 들어왔다.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배달수요에 대응하고, 인근에 2~3호점을 냈다. 학교 선후배, 주변 지인 몇 명이 스타트-업 돌우물에 합류했다.
당초 떡볶이가 잘 안 팔릴 경우를 대비해서 후속 메뉴로 냉면, 파스타, 짜글이, 닭발, 국밥 등 다양한 먹거리까지 준비해 두었고, 주문이 들어오는 대로 팔았다. 하나의 사업자가 여러 종류의 조리 메뉴들을 취급하다 보니, 새로운 개념인 샵-인-샵 딜리버리 매장의 개념도 잡혔다.
디자인과 마케팅에 흥미를 느끼는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음식 메뉴별로 다수의 상표권을 등록했다. 미래의 가맹점주들에게는 브랜드 선택권이 넓어진 것이다. “쏘크라테스 떡볶이,쌍팔반점, 근돼국밥, 후구오네 짜글이, 언택트 파스타, 로댕닭발, 잘난 찜닭,쭈신쭈왕, 송탄부대집, 제육입니다만, 카페 파라노이드, 와드커피” 등이 상표화됐다.
한 사람의 뚝심 있는 도전은, 조금 있어 보이는 표현으로, 기업가정신이다. 혁신성과 진취성, 위험감수성. 무엇 하나 예사로운 단어는 없다. 태초 이래, 사업하기 좋은 때란 없었다. 누구나 창업 앞에서는 두려움을 느낀다. 실패의 위험을 무릅쓰고, 문예창작과 디자인을 전공한 젊은이들이 만나 떡볶이 사업을 시작했다. 구멍가게에 머무를 수는 없기에 음식 포트폴리오(메뉴)를 늘리고, 작은 주방에서 여러 메뉴의 조리가 가능한 효율적인 방법을 고안했으며, 동시에 다양한 상표들을 등록했다. R&D 기반의 FNB 브랜드 커머스 회사, 돌우물은 이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