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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이삭 Aug 05. 2023

뻔할 뻔자 공무원 인생

시나브로 시들어간다


사람 일 아무도 모른다. 어디로 흘러갈 지 모르는게 인생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인생의 변동성을 체험하고 목격한다. 한 끼 밥 사먹을 돈도 없이 대학로 연극판에서 거리를 전전하던 누군가는 지금은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부와 명예를 얻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최고의 위치에서 밑바닥까지 떨어져 인생의 쓴맛을 보기도 한다.


국가도 흥망성쇠를 거친다. 1970~80년대를 지나며 전세계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기 힘든 폭풍성장을 거듭, 한강의 기적을 이룬 대한민국은 1990년대 후반 IMF 경제위기라는 초유의 국가부도 사태를 맞았다. 공무원이라는 직종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주목받은 시기가 바로 이 때부터다. 국가가 잘되든 망하든 일정한 경제·사회적 위치를 보장받는 공무원 직종의 매력이 부각되었다. 속된 말로 공무원은 굶어죽을 일은 없다는 장점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시작한 것이다.


일제시대부터 6.25 전쟁과 경제 성장, 군부독재, 민주화운동, IMF까지 굴곡의 근현대사를 몸으로 겪어낸 우리나라 사람들은 항상 생계에 위협을 받으며 살았다. 나라를 둘러싼 내·외부 환경의 변동 진폭이 너무 컸다. 지금 좋다가도 언제 나빠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살았다. 심지어 목숨마저 위협받는 때도 많았다. 그래서 언제 올라가고 내려올지 모르는 그 변동성, 비예측성에 거부감을 갖게 되었다. 밥에 김치만이라도 평생 안정적으로 먹고 살 수 있다면 괜찮다는 국민적 인식이 공무원 직종의 인기를 부추겼다.


어느덧 IMF 경제위기 이후 25년이 지났다. 우려와 달리 우리나라는 위기를 이겨내고 발전을 거듭했다.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복지행정의 발전이다. 우리나라 복지행정 수준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소년소녀가장, 장애인 등 사회취약계층에 대한 복지는 물론이고 국가가 직접 복지대상자를 찾아다니면서 지원을 하는 명실상부한 적극복지국가가 되었다. 일자리가 없으면 실업급여를 주고, 무료로 취업교육을 시켜주며 청년들에게는 청년이라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청년수당을 준다.


이제 대한민국 국민 그 누구도 굶어죽을 걱정은 하지 않는다. 내 꿈이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 내 욕망을 세상에서 제대로 실현시키지 못하는 아쉬움이 문제일 뿐 내 생계와 생명을 위협하는 의식주의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었다.


현 시대에 공무원이 인기가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먹고 자는 기본적인 삶의 욕구가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이미 해결된 상황에서 국민 누구나 자신의 꿈과 미래를 위해 살기 시작했다. 나이가 젊고 열정으로 충만한 MZ세대는 더욱 그렇다. 남들보다 더 멋지게, 내 개성을 마음껏 펼쳐 보이며 살고 싶어한다. 더이상 이밥에 고깃국 먹으면서 하루하루 사는게 인생의 목표인 시대는 아니다.


공무원은 이러한 시대욕망과 완전히 정반대의 직업이 되었다. 특히 9급 공무원은 더 그렇다. 행정고시 출신의 고위공무원은 미래의 장·차관, 정치계 진출 등 사회 고위직으로서 자신만의 비전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말단 공무원은 아무런 희망도 비전도 없다. 그저 조직 내 중간관리자인 팀장 과장으로 성장하는 정도의 성공을 인생의 꿈과 비전이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9급 공무원의 미래는 99% 정해져 있다. 워커홀릭이 되어 열심히 업무를 배우고 인맥을 잘 쌓는다면 4급 서기관까지는 진급해서 작은 공공기관의 기관장 정도까지 역임하고 퇴직한다. 물론 관운이 따르고 본인이 매우 열심히 근무한 경우에 한해서다. 대부분의 9급 공무원은 5급이나 6급까지만 진급하여 팀장 과장 업무를 수행하다 퇴직한다. 남들보다 3~4년 빠르게 진급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지만 이는 그 순간 기분이 좋다 뿐이지 다른 직원보다 3~4년 빨리 진급하는 일을 인생의 꿈과 비전으로 삼고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10~15년의 기간동안 9~7급 실무 공무원으로서 역할을 하고 나머지 시간 6, 5급 공무원으로 관리자 역할을 하다가 60세에 퇴직. 이것이 9급 공무원의 인생이다. 근무하면서 일의 보람을 찾기도 힘들다. 기관장의 지시에 따라 상명하복 절대복종하는 직업이 공무원이기 때문이다. 그저 시키는 대로 일을 한다. 다른 사람의 뜻에만 따라 움직이는데 보람이란게 있을리 없다. 50년 100년을 근무한다 해도 보람이 없을 것이다. 보람이라는 감정은 온전히 내 자율의지대로 행동하여 성과를 냈을 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공무원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9급 공무원으로 들어와 1~2년만 근무해 봐도 60세 퇴직때까지 내 미래가 그려진다. 그 시기와 방법, 절차마저 명확하다. 내일 일도 모르는게 인생이라는데 수십년 내 인생길이 그대로 확정되어 버린다. 뻔한 일상, 뻔한 미래, 뻔한 업무. 시키는 대로 일하다 나이가 들어 퇴직하는 그 순간까지. 그 정해진 길을 하루하루 걸어간다. 인생의 변동성은 없다. 대박도 쪽박도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아무리 작은 직업이라도 큰 성공을 기대할 수 있다. 길가에서 붕어빵 장사를 한다 해도 그 붕어빵을 국내 최고의 붕어빵으로 만들면 금새 입소문이 퍼지고 유명해진다. 아무것도 아닌 붕어빵 트럭에 사람들이 1시간씩 줄을 서서 붕어빵을 사먹는다. 길가에서 작은 손수레 하나로 시작한 붕어빵 장사가 프랜차이즈 기업체가 될 수도 있다. 본인의 노력과 성과에 따라 한없는 가능성이 열려있다.


공무원에게 그런 가능성이란 0%에 수렴한다. 아무리 내 분야에 정성을 다해 실력을 쌓아도 코스가 정해져 있다. 정해진 시기에 진급해야 하고 정해진 시기에 관리자가 되고 정해진 시기에 퇴직한다. 몇년 빠르고 늦을 수도 있지만 큰 차이는 없다. 사회에 격변이 많이 일어나는 시기에는 이 터무니없는 안전성이 매력으로 다가올 수 있겠지만 현재의 대한민국은 아니다. 점점 개인주의화되어 본인의 개성대로 사는 세상이다. 개성과 다양성을 억압하고 표준화시키는 공무원 사회가 MZ세대에게 인기가 없어진 이유다.


공무원에게도 성공의 기회가 열려있지 않느냐 반문할 독자가 있으실지 모르겠다. 로또당첨급의 아주 작은 가능성이 있기는 하다. 9급 공무원의 신화로 불리는 이들도 일부 있기는 하다. 9급 공무원으로 시작해 기초지방자치단체장 자리까지 오른 사람, 2~3급에 해당하는 고위공무원으로까지 진급에 성공한 사람들이 그 예다.


하지만, 단언컨대 이런 케이스는 극히 일부이며 기적에 가깝다. 유튜브로 누구는 수십억씩 벌고 있으니 나도 해보면 되지 않을까 망상하는 것과 다를바 없다. 그리고 9급 공무원의 신화라고 해봤자 2~3급 공무원까지 올라간 후 퇴직이다. 큰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엄청난 명예와 인지도를 얻는 것도 아니다. 그저 공무원일 뿐이며, 60세까지만 일할 수 있을 뿐이다.


60세 이후 재취업 시 공무원 커리어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도 압박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60세는 더이상 노인이 아니다.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한창 일할 나이다. 그러나, 그 어떤 재취업 시장에서도 공무원으로서의 전문 경력은 인정되지 않는다. 이른바 깡통 커리어다. 내가 일하고 있는 기관에서 퇴직한 선배 공무원들 중 일부는 공공근로 일자리를 전전하고 있다. 아파트 경비원이나 택시기사를 하는 분들도 있다.


물론 퇴직 공무원은 연금이 있기 때문에 일을 굳이 하지 않아도 생계에 문제는 없다. 그러나 사람이 돈으로만 사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사회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어졌다는 절망감으로 우울증에 시달리는 퇴직공무원들이 많다. 생각보다 하루는 길다. 몸 건강하고 정신이 맑은데 집에서 손가락만 빨며 삼식이가 되어 가족에게 불편만 끼치는 존재가 되기는 싫은 것이다.


공무원은 일반 회사원들과도 그 궤가 다르다. 사기업에 근무하는 회사원은 공무원과 달리 능력만 인정받으면 고속승진이 가능하고 임원도 달 수 있다. 최근 모 대기업에서는 30대 임원까지 나왔다. 장유유서식 연공 서열을 모두 무시하고 성과와 능력만 강조하는 조직문화가 우리나라 기업들에도 서서히 자리를 잡고 있다. 꼭 대기업에 다니지 않아도 된다. 중소기업에서 열심히 커리어를 쌓고 인정받으면 내 힘으로 돈을 벌 수 있는 힘이 생기고 회사를 차려 독립할 수 있다.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자서전을 보면 이런 일화가 나온다. 정주영 회장을 열성으로 돕던 부하 직원이 어느날 정주영 회장에게 사표를 제출했다. 놀란 정주영 회장이 왜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느냐고 묻자 그 직원은 “회장님을 모시면서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하는지 알게 되었고 자신감이 생겼다. 이제 그 방법으로 저도 돈을 벌고 싶다.”라고 말했고, 정주영 회장은 흔쾌히 그 부하직원의 미래를 응원하며 사표를 수리했다는 일화다. 이처럼 일반회사원도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본인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변곡점을 만들어낼 수 있다.


공무원은 이런 자기계발 가능성이 없으며, 사실상 이직도 불가하다. 내가 재직하고 있는 회사보다 더 높은 연봉과 좋은 근무여건의 회사 문을 계속 두드리며 자기발전을 꾀할 수 있는 경로가 단절되어 있다. 공무원 커리어는 공무원 조직을 벗어나는 순간 그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한다. 민원인만 대하고 워드 보고서만 쓰던 사람을 사회 어디에서 대접해 주겠는가? 공무원 신분을 오래 유지할수록 내 인생의 족쇄가 될 뿐이다. 1년 1년 나이는 먹어가고 커리어는 없고 무엇엔가 도전할 열정도 힘도 없는 초라한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최근 공무원이 된 지 5년 이내 신규 공무원들의 퇴사율이 올라가는 것은 바로 이런 선배들의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고 자신의 미래가 그런 식으로 흘러가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얼마 전 내가 근무하는 부서에서도 20대 후반 나이의 신규직원이 노무사 시험을 준비하겠다며 퇴직했다. 평소 매우 성실하고 성과도 있는 직원이었다. 진심으로 응원해주었다. 훌륭한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인생의 변동성과 예측불가능성은 과연 부정적인 요소일까? 나는 절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우리네 인생이 살만한 건 내일 일도 감히 예상할 수 없는 그 변동성 때문이다. 그 변동성을 내 노력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 내 의지와 성과에 따라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그 점이 바로 각자의 인생을 열심히 살게 하고 재미있게 만든다.


하지만 공무원으로 살게 되는 순간, 내 인생은 아무런 재미도 꿈도 비전도 없어진다. 노력해도 발전 가능성이 없으니 자기계발도 없고 그저 공무원 조직에서 하루하루 시들어가며 나이만 먹는다. 장점은 단지 하나, 실패할 가능성도 없다는 것. 그것뿐이다.


꿈이 있으면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청년이다. 아무리 하찮은 일을 해도 그 일을 통해 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열정이 있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그 열정으로 각자의 인생을 충실히 채워갈 때, 나 자신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도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것이다.  아무 꿈도 비전도 없이 오로지 실패가 두려워 내 자율성이라고는 하나도 발휘할 수 없는 조직에서 남 시키는 일만 꾸역꾸역 하면서 평생을 보내는 공무원이라는 직업. 안정성 보다는 승부와 경쟁, 내 성과를 중요시하는 사람이라면 이 직업을 선택하지 말기를 강력히 권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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