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에게 워라밸은 없다
아침도 저녁도 주말도 없다. 편안한 철밥통 생활은 옛말
‘공무원은 편안한 직업이다’라는 사회적 인식은 여전하다. 공무원은 정말 사기업보다 업무강도가 낮고 워라밸도 지킬 수 있는 직업일까? 만약 그렇다면 공무원의 낮은 연봉도 감수할 수 있겠다. 하지만 공무원은 더이상 그런 직업이 아니다. 9급 공무원은 1년 내내 저녁도 주말도 없이 업무와 사람에 치이는 극한직업이다.
도대체 무슨 일을 그렇게 많이 하길래 하급 공무원들의 워라밸이 엉망진창이 되었을까?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로, 내가 맡은 업무 이외의 각종 근무 차출이 너무 많다.
특히 비상근무 차출은 지방자치단체에서 근무하는 지방직 공무원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온다. 비 오고 눈 내리면 새벽이고 저녁이고 나가서 비상근무에 임해야 한다. 주말이나 연휴에도 마찬가지다. 새해 첫날 1월 1일에 눈이 와서 치우는 경우도 있다. 여기가 군대인지 어디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지방직 공무원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안좋은 기억이다.
비가 와도 공무원은 집에서 편안하게 쉴 수 없다. 호우주의보가 발효될 정도의 강수량이 예보되면 또다시 차출되어 근무해야 한다. 침수 피해가 우려되는 곳으로 출동해 양수기로 물을 빼거나 모래주머니로 차벽을 쌓는다. 빗속의 사투다. 물론 침수피해를 사전 예방하고 제설작업으로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일은 공무원의 신성한 의무다. 공무원은 국민을 위해 존재하므로 국민의 안전을 위해 일해야 한다. 눈을 제때 치우지 않았다가 아침에 출근하던 국민 누군가가 미끄러져 큰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 침수피해는 말할 것도 없다. 자칫 사람의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는 일이다. 안전은 타협할 수 없는 가치다.
문제는 이 모든 일을 공무원들이 직접 수행한다는 것과 그에 따른 보상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마치 군대에서 모든 작업을 군인에게 시키는 것과 비슷하다. 군대에서는 좋은 장비를 사서 운용하면 쉽게 해결될 일을 굳이 군인 수십 수백명의 삽질로 비효율적으로 해결한다. 공무원도 마찬가지다. 폭설이나 침수에 대비한다면 용역업체나 인력을 고용해 해결하는 것이 주민에게 더 효율적일텐데 굳이 공무원을 동원하여 작업을 한다. 예산을 아껴서는 안될 일이다. 폭우가 쏟아져 1분1초를 다투는 급박한 상황에서 행정공무원 1~2명이 출동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관련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현장에서 상황판단도 올바르게 할 수 없고 작업속도도 현저히 느릴 것이다. 비슷한 상황을 많이 겪어보고 작업해본 전문가가 출동해 신속하게 조치해야 주민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 제설 수방 근무를 할 때마다 심각한 무력감과 좌절감을 느낀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근무를 하지만 막상 그 만일의 경우가 일어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이다.
자칫 공무원 자신의 안전마저 위협하는 경우도 생긴다. 2020년 여름. 춘천에 폭우가 내려 의암호에 있던 인공수초섬이 의암댐 근처까지 떠내려가는 일이 있었다. 계속 떠내려가는 인공수초섬을 다시 고정하기 위해 수초섬 관리업체 직원과 기간제 노동자, 담당 공무원이 함께 출동해 폭우 속에서 작업을 하다가 배가 뒤집혀 모두 사망했다. 사망한 공무원은 8급 공무원이었는데, 더 안타까운 것은 사고 당시 출산휴가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폭우 속에서 피해를 최소화하려 작업에 나섰다가 순직했다. 지난해에는 동작구에서 폭우에 쓰러진 가로수를 정리하다 감전사한 공무원도 있었다.
공무원의 워라밸을 빼앗는 근무차출은 폭우 폭설만이 아니다. 당직근무와 각종 축제 등 차출 근무도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온다. 당직근무란 밤새 시청이나 군청, 구청 등 시설을 관리하고 지키는 일을 말한다. 18:00부터 다음날 아침 09:00까지 무려 15시간 동안 사무실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한다. 생활리듬이 완전히 깨지기 때문에 누구나 싫어하는 일이다. 혹여나 큰 사고가 일어났을 경우에는 책임을 지는 위치에 있기에 부담감도 상당하다.
지난해 이태원 압사 사고 시, 마포구청에서 당직근무를 하고 있던 공무원은 당직 근무자로서의 책임 때문에 아직까지도 사고 여파에 시달리고 있다. 보통 당직근무는 1년에 3~4번 정도 차출되는데, 기관마다 그 주기가 천차만별이다. 주기가 짧은 곳은 한달에 한 번으로 매우 짧고, 어떤 곳은 1년에 1번 정도로 길다. 기관에서 당직근무를 운용하는 방법이 완전히 다르므로 완전히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예산을 활용하여 당직근무 전담 용역업체를 고용하는 기관도 있고, 남자 공무원만 당직근무를 하는 기관도 있고, 남자 여자 공무원 모두 당직근무를 하는 기관도 있다.
어쨌든 당직근무 주기가 긴 곳에 근무하는 공무원은 운이 좋은 공무원이다. 하지만 1달에 한번 꼴로 당직근무해야 하는 기관에 소속되어 있다면 이보다 안타까운 일도 없다. 개인 여가 시간을 뺏기는 건 물론이고 건강도 크게 나빠진다. 뜬눈으로 밤을 새며 신체리듬이 완전히 흐트러진다. 실제로 밤샘근무는 신체균형과 자율신경에 이상을 일으켜 체중 및 혈압 증가, 각종 뇌심혈관 질환 유병률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무원 당직근무는 평일의 경우, 09:00에 출근하여 18:00까지 모든 일상 업무를 수행한 이후에 휴식 없이 바로 근무에 들어가는 시스템이다. 당일 아침에 출근해 다음날 아침 09:00까지 일하게 되는 셈이니 24시간 연속근무다. 더구나 다음날 아침 09:00에 바로 퇴근하지 않고 잔여업무까지 마치고 퇴근하는 악습까지 남아있는 기관들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공무원 당직근무는 불합리한 정도를 떠나 인권 유린에 가깝다. 대한민국 어디에서 휴식 없이 24시간 연속 노동을 시킨단 말인가. 까마득한 전태일 열사 시절 이야기다. 70~80년대 산업화 시대에 노동자들이 노동 권리를 전혀 보호받지 못하고 착취당했던 그 수준이다. 이렇게 15시간 근무하고 받는 돈, 당직수당은 고작 6만원이다. 시간으로 따지면 4천원. 오히려 안주는게 낫다 싶을 정도로 공무원의 사기를 더 떨어뜨린다.
축제 차출근무도 지방직 공무원의 워라밸을 해치는 1등공신 중 하나다. 모든 지방자치단체는 그 지방을 대표하는 축제를 적게는 1개, 많게는 3~4개씩 개최한다. 화천 산천어축제, 함평 나비축제, 진해 군항제 등 전국에서 사람이 몰려오는 대규모 인기 축제들만 있는게 아니다. 인지도 없는 축제들이 더 많다. 모든 지자체가 매년 1건 이상의 대형 축제를 개최한다.
이런 대형 축제들이 개최되면 지방직 공무원들은 예외 없이 끌려나가 근무한다. 하는 일은 안전관리(노란 조끼 입고 경광봉 들고 가만히 서 있는 사람들이다.), 주차관리, 쓰레기 청소 등 가지가지다. 지난해 이태원 압사 사고 여파로 인지도 높은 인기 축제의 경우에는 차출되는 공무원 숫자가 더 늘었다. 중대재해방지법 시행 여파다. 중대재해방지법 상 어떤 안전사고가 일어나면 기관장이 그 책임을 지게 되어 있다. 기관장의 자리를 위협하는 실질적인 위험요소다. 그래서 기관장들은 안전 관련 문제에는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 사고 일어나면 기관장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판인데 무조건 안전 또 안전이다. 실제 필요한 인력보다 2배 3배의 인력을 동원해 혹시나 사고가 일어났을 경우, 기관장으로서 안전 조치에 최선을 다했는데 어쩔 수 없었다는 방어막으로 삼으려 한다. 차출되어 근무하는 공무원에게 따로 지급되는 수당은 없다. 지역축제 특성상 휴가철이나 날 좋은 4~5월, 9~10월에 개최하는 경우가 많다. 아름다운 봄, 가을철 다른 직장인들은 가족과 연인과 친구와 즐거운 여가시간을 보내는데 매년 축제에 동원되어 대가 없이 일하는게 공무원의 숙명이다.
공무원의 워라밸을 빼앗는 또다른 이유는 뭐니뭐니해도 상사 술시중 밥시중이다.(동주민센터나 면사무소에 근무하는 공무원은 이와 더불어 주민단체 술시중까지 들어야 한다.) 관리자들은 하급 공무원과 달리 업무시간 내내 신선놀음하기에 저녁에 기력이 남아돌아 술만 먹으려 든다. 술맛은 사람이 많을수록 더 난다. 내 말에 감히 반박하지 못하고 리액션해줘야 하는 부하직원들이 술맛돌게 하는 사람들로 딱이다. 틈만 나면 평일이고 주말이고 가리지 않고 술약속을 잡으려 든다. 알콜 중독이 심한 관리자는 주 2~3회씩 부하 직원과의 술자리를 가진다. 물론 술값은 법인카드로 해결한다. 문제는 이러한 술자리가 인사평가에 개입한다는 것이다. 관리자도 사람이기에 같이 술먹어준 부하직원들에게 고마움이 없을 리 없다. 근무평가 점수를 높게 부여하고 진급을 조금이라도 빨리 할 수 있게 도와주거나 부서 전보 등 각종 인사조치 시 관리자가 가지고 있는 영향력을 행사하여 혜택을 준다.
결론적으로 업무보다 상사 술시중이 근무평가 점수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 상사는 업무에 관심이 없다. 일하기도 싫다. 그저 나이가 들어 외로울 뿐이다. 허무한 인생 놀아줄 사람이 필요하다. 상사 심심하지 않게 잘 놀아주면 상사를 잘 모시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래서 체육대회나 워크숍 등 상사 취미에 맞는 놀거리를 만들어 주면 나이 60 가까운 사람들이 체면도 없이 어린애처럼 좋아한다. 연 1~3회 정도 1박 2일 코스로 (당연히) 주말을 껴서 부서 전 직원이 놀러가는 일이 잦다. 물론 관리자 본인만 놀러가는 거지 직원들은 감정노동이다.
평일에 그 고생을 하고 주말에는 쉬어야 하는데 쉴 수가 없다. 워크숍에 끌려가 타기도 싫은 산 타고 선배 직원들 눈치보며 관리자도 모셔야 한다. 1박2일이니 음주량은 과할 수밖에 없다. 몇 번을 토하면서 술 마시고 노래 부르고 탬버린 치다가 1박2일이 지나간다. 안가면 그만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절대복종 기수문화가 본질인 공직사회에서는 집단주의 문화가 팽배하다. 튀는 행동은 관리자에게 찍힐 뿐이다. 관리자의 눈 밖에 나면 인사상 불이익이 따라온다. 관리자는 ‘내가 술 먹자 했는데 저 직원은 자꾸 술자리에 빠지네. 저 직원은 나를 싫어하나 보다. 감히 나를 싫어해? 어디 두고보자.’ 로 흘러가는 사고회로를 가지고 있다. 원래 나이를 먹으면 옹졸해지고 잘 삐진다. 올라간 사회적 위치와 지위에 걸맞는 대우를 원하기 때문에 '감히'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동료 직원들의 눈치도 있다. '누군 가고 싶어서 가냐 다같이 고생하는데 너만 빠지면 안된다'라는 무언의 압박을 준다. 이제 막 입사한 신규 9급 공무원이라면 더욱 그렇다. '8급 7급 선배 공무원들도 빠지지 않고 술시중 드는데 너가 감히?'라는 선배 공무원들의 눈치를 안 볼 수가 없다.
9급 공무원은 이토록 업무시간 이외 많은 것들에 시달리고 또 시달린다. 때마다 비는 오고 눈은 쌓인다. 예상할 수 없다. 좀 쉬나 했더니 당직근무가 돌아온다. 매일같이 상사들은 술먹자고 난리다. 주말에나 좀 쉬자 계획했는데 축제 차출근무다. 또 그 다음주에는 뭔 부서 워크숍을 간단다. 용기를 내서 빠지려 하니 상사들은 물론이고 동료 선후배 직원들 눈치가 너무 보인다. 울며 겨자먹기로 내 개인시간을 희생하며 하루가 한달이 일년이 지나간다. 몸과 정신이 함께 축난다.
자유롭게 이 모든 굴레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순간이 바로 관리자가 되는 순간이다. 팀장 과장 등 보직을 받아 관리자로서 일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신선놀음이다. 공무원 생활의 가장 큰 변곡점이다. 중간관리자만 되어도 상사의 술자리나 워크숍에 비교적 자유롭게 빠질 수 있음은 물론이고 각종 수방 제설 축제 차출근무에 동원되지 않는다. 왜 동원되지 않는지 별다른 이유는 없다. 그저 관리자라는 그것 하나로, 윗사람이라는 이유 때문에 동원되지 않는다. 괜히 신선놀음이 아니다. 하급 공무원 착취구조는 공무원 조직문화 모든 분야에서 그 뼈대를 이루고 있다.
공무원은 칼퇴근도 할 수 없다. 출근 또한 그렇다. 공무원 조직에서는 관리자보다 먼저 출근하고 늦게 퇴근해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다. 그래서 관리자가 일찍 출근하거나 늦게 퇴근하는 사람이라면 그 부하직원들의 워라밸은 완전히 끝장난다고 봐도 된다. 내가 겪은 관리자 중에는 매일 아침 7시부터 출근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지키지 않아도 되기는 한다. 다만 관리자 눈에 나서 인사적 불이익을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동료직원들 눈치도 보인다. '저 친구는 일이 없나.' '누구는 칼퇴근 안하고 싶어서 안하나.' '신규 직원이 되가지고 선배들 다 남아서 일하는데 자기 혼자 칼퇴근하고 이기적이다.'라는 식의 모함을 받게 된다.
어떤 관리자는 이런 불문율을 깨고 자유롭게 출퇴근하라고 하는 경우도 요새는 꽤 있다. 그래도 조금씩 공무원 사회가 바뀌어 가는구나 긍정적으로 생각되지만 여전히 9 to 6를 칼같이 지키기는 부담스럽다. 동료직원들의 눈치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공무원식 집단주의 상명하복 서열중심 문화의 폐해는 그렇게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대략 10년 전만 해도 공무원이 월급은 적지만 워라밸이 좋으니 괜찮지 않느냐라는 인식이 있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주 52시간 근무제도가 법제화되면서 일반 기업의 근무여건이 몰라보게 좋아졌다. 기업들은 어떻게든 직원들을 과로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52시간 넘게 근무시키면 회사 입장에서 금전적으로 손해이기도 하고 직원들의 자유로운 사생활 보장이 결국에는 더 높은 생산성으로 회사에 기여한다는 원칙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공무원은 상대적으로 최악의 근무조건이 되었다. 박봉은 더이상 말할것도 없다. 워라밸이 최악이다. 칼퇴근하지 못하는 문화, 상사 술시중으로 개인의 업무평가가 결정되는 문화, 각종 차출근무와 안전관리 업무에 무지성 동원되어 책임지는 문화, 선후배간 엄격한 위계질서로 눈치보는 문화가 결합되어 개인 여가시간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
대책은 없을까? 정말 공무원 문화는 바뀌지 못하는 걸까? 많이 힘들지 싶다. 결국 워라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제설 수방이나 당직근무 축제차출 근무보다는 상사 술시중 드는 일과 칼출근 칼퇴근이 안되는 업무환경이다. 하급 공무원의 개인시간을 뺏는 빈도가 가장 높다. 심하면 주 5회까지 회식을 한다. 못해도 월 2~3회다. 앞서 언급했듯이 관리자들은 자신이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쾌락을 절대 포기할 리 없다. 업무성과만으로 직원들을 평가하게 되면 자신과 놀아줄 직원은 없어진다.
일반인들은 술을 먹고 싶으면 하룻밤 수십 수백만원의 돈을 내고 술집에 가서 종업원의 접대를 받으며 술을 마신다. 내가 하는 말을 다 들어주고, 감히 반박하지 못하고, 재미있게 리액션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밤새 술을 마신다는 쾌락은 마약과도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유흥주점에서 수십 수백만원을 쓰는 것이다. 공무원 입장에서는 이 쾌락을 매일같이 부하직원들과 법인카드로 즐길 수 있는데 그 어떤 관리자가 이 쾌락을 포기하고 업무성과만으로 직원을 평가하겠는가? 바뀔 리 없다. 매일같이 업무에 상사 술자리에 비상근무에 치이며 당신의 젊음과 열정을 허비하고 싶지 않다면 9급 공무원은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직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