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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이삭 Aug 03. 2023

악성민원에 당하고 또 당하는  공무원의 삶

욕먹고 폭행 당해도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다.


최근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아리따운 선생님 한 분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일이 벌어졌다. 아직 정확한 조사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불합리한 학부모 민원으로 선생님이 큰 고통을 당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다. 전국에서 선생님들도 들고 일어섰다. 언제까지 학부모 악성민원에 시달리면서, 학생을 제대로 통제할 수도 없는 선생님으로 살아갈 수 없다며 정부를 상대로 정당한 교권을 지켜달라는 시위가 진행되고 있다. 국민들도 지금은 선생님의 편에 서 있는 듯 하다.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며 일반행정 공무원으로서 약간은 박탈감이 들었다. 악성민원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공무원분들도 정말 많은데. 그런 일은 아무런 사회적 이슈도 되지 않았다. 선생님만큼 악성민원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바로 공무원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더하다. 학생이나 학부모가 학교에 와서 기름을 붓고 불을 지르지는 않지 않는가? 확실한 건 선생님이든 공무원이든(교사도 크게 보면 공무원이긴 하지만) 아무 대책 없이 악성민원에 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쨌든 공무원과 민원은 떼려야 뗄 수 없다. 민원을 처리하기 위해 공무원은 존재한다. 알고보면 공무원의 모든 업무는 민원과 관련이 있다. 도로변에서 청소를 하는 공무원이나 보고서를 쓰는 공무원이나 그 업무의 뿌리는 민원에 있다. 공무원은 국민의 행복하고 편안한 삶을 위해 종사한다. 작은 민원이든 큰 민원이든 공무원이 민원해결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다.


민원이 나쁜 점만 있는 것도 아니다. 민원은 꼭 필요하다. 민원이 없으면 나라가 발전할 수 없다. 민원을 제기하는 국민에게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알빠노’ 관념이 유행하는 이 시대에 나라 일에 관심을 가지고 인터넷으로 전화로 민원을 제기해준다는 것 자체가 공익에 기여하는 것이다. 필자는 진심으로 민원을 제기하는 국민들을 존중한다. 그들이 있어 국민생활이 조금이나마 편해지고 행복해진다.


공무원 입장에서도 민원을 제대로 해결했을 때의 기쁨은 크다. 사람은 이기적으로 행동할 때보다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때 더 보람을 느낀다. 거리가 매우 더러우니 치워 달라거나 공공시설물이 파손되었으니 고쳐달라거나 여러 종류의 민원을 해결해 주고 민원인에게 감사인사를 받으면 그보다 더 큰 공무원의 보람은 없다. 일 잘해서 관리자에게 칭찬받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다. 공무원은 이 보람으로 살아가는 것이고, 이 보람이 쌓였을 때 공무원으로서의 자존감이 생긴다.


복지업무를 담당하고 있을 때, 임대주택을 신청하고 싶은데 어떻게 신청하는지 잘 몰라 도움을 요청하는 주민이 있었다. 말도 서투르시고 교육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해 사회생활이 힘든 분이었다. 마음이 동했다. 임대주택에 대해 전혀 몰랐지만 내 일처럼 알아봤다. 서류도 준비해 드리고 개인 전화번호까지 알려드리면서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해 달라고 했다. 결국 신청절차가 잘 마무리되었고 임대주택에 들어가실 수 있게 되었다. 얼마 후 정말 고맙다면서 나에게 감사인사를 오셨다. 그분이 가져오신 비타500 한 병이 너무 달고 달았다. 그 어떤 비싼 영양제보다 힘이 나는 듯했다. 마음이 참 따뜻했다. 이 맛에 공무원하나 싶었다.


악성민원은 이와 꼭 반대다. 악성민원인은 법령 상 가능하지 않은 사안을 가지고 내 뜻대로 처리해달라며 떼를 쓴다. 떼만 쓰면 다행이다. 욕설과 폭행을 동반한다. 최근 여성 공무원이 많아지면서 악성민원인들의 폭언 폭력 행태는 더 심해지고 있다. 매일같이 폭언을 듣다가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호소하며 신경정신과 신세를 지고 있는 직원들이 부지기수다. 악성민원으로 공무원이 받는 스트레스는 악성민원 자체에도 있지만 악성민원을 대하는 공공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의 불합리한 대응체계 탓도 있다.


어떤 악성민원인이 동주민센터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 공무원에게 자신이 해달라는 대로 민원을 처리하지 않는다며 온갖 욕설을 내뱉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당장 경찰에 신고하고 주변에 있는 직원들이 합세하여 그 악성민원인을 훈계하고 엄하게 제지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동장 등 관리자들은 그저 죄송하다면서 오히려 악성민원인을 달래는데 급급하다. 심지어 법령에 어긋나는 일인데도 유야무야 민원을 처리해주기도 한다.


오히려 폭언 폭행을 당한 공무원에게 사과를 종용할 때도 있다. 이유 없이 욕 먹은 것도 억울한테 사과까지 종용당하니 정신적 상해가 없을 리 없다.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이런 식으로 대응하니 악성민원인이 더 활개를 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동주민센터에 와서 불지르고 공무원을 칼로 찌르는 사례가 괜히 생기는 것이 아니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고 폭언해도 대접해주니까 폭언에서 폭행으로 폭행에서 방화로 계속 그 정도가 올라가는 것이다.


상황이 이리 심각한데도 실질적인 대책은 없는 실정이다. 욕을 먹는 공무원만 날로 지쳐가고 책임을 지는 이는 아무도 없다. 욕먹고 사과하고 울고 신경정신과 가서 약 먹으면서 버티는 방법밖에 없다. 어쩌다 한번씩 있는 일이라면 그냥저냥 넘어가겠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벌어지는 일이다. 반복적으로 악성민원인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당하고 또 당하고 N차 가해다. 결국 해당업무를 맡고 있는 공무원의 멘탈은 엉망진창이 된다.


이는 공무원의 기본 근무태도에까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일반적인 민원인조차도 무조건 악인으로 규정짓고 복지부동하는 결과를 낳는다. 정당하게 예의를 지키면서 민원을 제기하는 민원인에게까지 불친절하게 된다. 사람에게 기가 질린 것이다. 아무도 이 공무원을 불친절하다고 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 공무원도 살아야 하기 때문에 방어기제를 작동시키는 것 뿐이다. 공무원도 사람이다.


슬프게도 악성민원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행정안전부에서 발표한 악성민원인의 폭언 폭행 건수 통계를 보면 그 상승폭이 가파르다. 국민의 교육수준도 높아지고 국가GDP도 높아져 대한민국이 G7이 되었네 3050클럽에 들어갔네 명실상부 선진국이라는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악성민원인의 폭언, 폭행 등 행위 건수 (행정안전부)



첫째로, 국민들의 공무원에 대한 인식이 기본적으로 부정적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며 빠르게 성장해온 대한민국 역사에서 생겨난 부작용이다. 특히 민주화 과정에서 군부 독재정치는 꼭 타도해야만 하는 대상이었다. 독재정치는 자유민주주의사회에서 국민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박탈하고 공권력만 강화시켰다. 독재정권 당시 공무원은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일반행정 공무원이든 경찰이든 교사든 국민의 권리를 마음대로 빼앗고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챙겼다. 민간업체로부터 뇌물을 받는 공무원, 정당하게 제기하는 민원을 무시해버리는 공무원, 촌지를 받는 교사 등 수많은 악성 공무원들이 존재했다. 경찰은 죄 없는 이를 잡아다가 감옥살이를 시켰고 교사는 학생들을 마구잡이로 폭행했다. 국민들은 아직도 공무원들이 부정부패할 것이라고 으레 짐작한다. 수십년 대한민국 독재정권 역사에서 몸으로 체득한 국민들의 공무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아직 없어지지 않았다. 공무원은 일 안하고 놀기만 한다는 패러다임도 독재정권 시절에 생겨난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공무원에 대해 이러한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 물론 현재 공무원들에게는 전혀 해당사항이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잠재의식 속에 깔려 있는 부정적 인식이 나도 모르게 악성민원의 형식으로 나타난다.


둘째로, 악성민원인을 원칙적으로 제재하지 못한다. 그 어떤 경우라도 폭언 폭행은 받아들일 수 없는 행위다. 특히나 공무를 보고 있는 공무원이 그 대상이라면 더욱 그렇다. 공무집행방해라는 형사죄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모욕죄, 공무집행방해죄 등 악성민원인이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책임을 질 수 있게 원칙으로 대응하면 악성민원인은 자연스레 없어지게 되어 있다.


하지만 그렇게 못하는 이유가 있다. 대부분의 민원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처리하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이후, 시장, 군수, 구청장, 교육감 등 모든 지방자치단체장들은 국민이 직접 선출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장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표가 중요하다. 정치인에게는 표가 곧 밥줄이다. 악성민원인을 지방자치단체 명의로 고발하다가 혹여 지역민심이 안좋아져 표를 잃게 되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악성민원인 막자고 원칙대응하다가 정치인으로서의 내 표를 잃을 바에야 약 먹고 버티든 울면서 버티든 부하 공무원들이 그냥 몸빵해주는게 이득이다. 기관장이 공무원을 지켜줄 생각 자체가 없는 것이다. 일선에서 악성민원에게 당하고 또 당하는 공무원들에게는 기댈 언덕이 없다.


과거에는 ‘고객은 왕이다’라고 했었다. 그때는 그런줄 알았다. 고객우선주의가 온 사회를 지배했다. 고객이 떼 쓰면 다 들어주었고, 욕하면 먹어줬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서비스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도 함께 중시하고 있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똑같이 인격을 가진 사람이다. 상호 존중하고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다. 국민의 지성수준이 고양된 것이다. 서비스 제공자의 인격적 권리도 존중하는 사회가 되었다.


콜센터 직원들은 이러한 사회적 문제의 대표예시 직종이었다. 하루종일 전화로 고객의 컴플레인을 받아주며 상담해주는 콜센터 직원들은 폭언과 성희롱 발언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같지 않다. 폭언과 성희롱이 많이 없어졌다. 회사 차원에서 전화를 끊을 권리를 보장해 주었고 법적 제재를 가할 수 있다는 점을 고객에게 미리 공지하기 때문이다. 민간에서도 서비스 노동자의 인권에 이렇게 신경을 쓰고 있는데 오로지 공무원만 예외다. 공무원은 무시해도 되고 욕해도 되는 존재로 아직까지 인식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지방자치제의 영향이 가장 크다.


그래도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아예 손을 놓고 있지는 않다. 웨어러블 캠을 민원업무 담당 공무원들에게 나누어준다거나 안전 보안요원을 민원실에 의무적으로 배치하는 등 나름 신경을 쓰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은 미미하다. 웨어러블 캠이 있다한들 그 증거자료를 기반으로 고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지금도 각 동주민센터나 민원실에는 CCTV가 있고 녹음도 개인 스마트폰을 활용해 쉽게 할 수 있다. 장비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관리자가, 기관장이 직원을 보호하려는 진심이 있느냐가 핵심이다.



‘남의 고통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 때까지 우리는 철저하게 그 고통에 무관심하다.’ - 찰스디킨스



오늘도 공무원들은 인격모독적인 발언과 욕설을 들으며 근무하고 있다. 그 고통이 누군가를 불편하게 해야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그런데 아무도 불편하지가 않다. 욕 먹는 당사자 말단 공무원만 고통스러울 뿐이다. 원칙적으로 대응하면 여러사람 불편해 진다. 경찰 부르고 고발하면 관리자가 가서 상황설명하고 증거자료 제출하고 기관장에게도 보고해야 하고 혹여나 그 악성민원인이 지역에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문제는 더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그저 담당자가 억울해도 사과하고 악성민원인 뜻대로 해결해주는게 가장 편하다.


공무원 노조가 있지만 딱히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노조가 없는 공공기관도 부지기수다. 나름 대책이랍시고 하는 일이 기껏 민원인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폭언 폭행하지 말아달라고 안내판이나 세워주는게 다다. 안내판 내용은 실로 눈물겹다.


‘업무를 보는 공무원도 누군가의 아들이자 딸입니다.’

‘폭언 폭행 시 경찰에 신고할 수 있습니다.’


폭언 폭행해도 고발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어떻게든 민원인을 달래기만 하려는 저자세로 일관한다. 공무원을 보호하지 않겠다는 내심이 묻어난다.


9급 공무원은 이렇게 살아가는 직업이다. 콜센터 직원들도 혜택받고 있는 기본적인 보호 조치조차 받지 못하는 직업이다. 욕먹고 얻어맞아도 아무도 나를 지켜주지 않는 불편한 진실. 말단 공무원은 외롭고 또 외롭다. 전국의 교사들이 한마음 되어 서이초등학교를 추모하는 모습은 부러워보이기까지 한다. 지금까지 수많은 공무원들이 고통당했으나 공무원들은 이렇게 뭉쳐본 일이 없었다. 선배 공무원들은 나도 그랬었다고 공무원이 원래 그런거라고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을 뇌까릴 뿐이다.


오늘도 시청에서 구청에서 동주민센터에서 규정대로 열심히 일하다가 이유없이 욕먹고 신체적으로까지 위협당하는 공무원들이 있다. 화장실에서 남몰래 눈물을 삼키며 하루를 보내고 있는 그들을 응원한다. 하루빨리 근본적인 대응방안이 국가 차원에서 마련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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