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이삭 Aug 02. 2023

공무원 조직은 쌍팔년도 군대문화

절대복종과 기수문화에 기반한 갑질이 난무하는 곳


옛 사람들은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다. 언뜻 10년이 길어보이지만 지나보면 짧다. 사람 수명이 대략 70년이니 사는동안 7번은 강산이 바뀐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강산이 몇번이 바뀌는데도 바뀌지 않는 조직이 있다. 80~90년대 조직문화가 2023년 현재에도 그대로 살아 숨쉬는 곳. 바로 공무원 조직이다.


쌍팔년도 조직문화라는 속어는 군사정부 독재정권을 오랜시간 겪어냈던 대한민국의 아픈 근대사의 자취다. 1963년 시작된 제3공화국부터 1992년 문민정부의 출범까지 30년의 군사독재정권은 대한민국 전반에 군대문화가 뿌리 내리게 만들었다. 민주정부가 수립된지 어언 30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도 이 오랜 역사를 가진 군대문화의 영향은 아직도 대한민국에서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다.


물론, 독재정권만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다. 남성들의 영향도 있다. 대한민국 남자는 일정한 나이가 되면 신체에 문제가 없는 한 예외없이 군대에서 2년 가까이 시간을 보낸다. 20대는 가장 예민하게 환경에 적응하고 학습하는 나이다. 이 시기에 습득한 경험과 지식이 그 사람의 평생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군대문화가 우리나라에서 사라지지 않고 유지되는 이유다.


그렇다면, 군대문화란 도대체 무엇인가? 군대의 핵심가치는 무엇일까? 군대는 적과 싸워 이겨야 하는 조직이다. 따라서 절대복종과 경력과 서열에 따른 기수문화가 조직의 핵심을 이룬다. 그리고 이 가치는 대한민국 공무원 사회에서도 아주 철저하게 적용된다.


절대복종은 군대에서만큼은 꼭 필요한 덕목이다. 그러나, 현 민주사회에서는 당연히 비합리적이며 지양되어야 한다. 토론과 논쟁이 우선이다. 상사의 지시라고 해서 절대복종해서는 그 회사가 제대로 돌아갈 리 만무하다. 어떤 회사에서는 red team을 상설화해 운영하기도 한다. red team이란 회사에서 추진하는 모든 사업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만 내는 조직을 말한다. 이 팀은 긍정적인 의견을 내면 안된다. 무조건 부정적인 주장을 하고 그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절대왕정이었던 조선시대에도 왕이 명령했다 해서 그대로 시행하지는 않았다. 대신들은 치열하게 토론하고 왕을 설득했다. 어떤 신하는 왕에게 그렇게 하시려거든 자기부터 죽이고 하라는 말까지 한다. 통촉해 달라며 왕이 뜻을 거두어주기를 거듭 청한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였다. 아첨하는 신하보다는 바른 말을 하는 신하를 우대하고 사회적으로 존중했다. 왕에게 좋은 말만 하지 않았다. 절대 네네 알겠습니다 하는 나라가 아니었다. 사대부는 자신의 목숨을 잃을 위험이 있다 해도 왕에게 팩트로 돌직구를 날려대며 자신이 옳다 생각하는 바를 가감없이 아뢰었다.


기수문화도 쌍팔년도 군대문화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한 달이라도 빨리 입대한 사람이 선임자가 되어 후임자의 목숨줄을 쥔다. 내무반 생활부터 훈련까지 공과 사를 가리지 않고 선임자가 후임자에 대한 모든 권력과 통제권을 갖는다. 당연히 갑질이 따라온다. 후임자도 한 명의 고귀한 사람인데, 내 물건처럼 마구잡이로 써먹기 시작한다. 모두가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조직에서는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된다. 결국 후임자에 대한 마지막 인격적 존중감마저 잃어버리고 폭언 폭행 갈취 등 범죄에까지 이르는 경우가 많았다.


이 군대식 기수문화는 한국사회 전반에 뿌리를 내렸다. 초등학교에서도 6학년이 저학년 학생을 위협한다. 체육계에서도 선후배 관계가 엄격하다. 연예계도 마찬가지다. 회사도 그렇다. 대한민국의 조직이라는 곳에는 항상 기수문화가 있다. 그 조직에 먼저 들어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선임이라고 선배랍시고 으스대면서 후배들을 강압적으로 짓누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기수문화는 그 뿌리였던 군대에서는 거의 사라지고 민간분야에만 남아있다. 현재 군대에서 기수문화는 장교나 부사관 등 간부 군인들에게만 남아있을 뿐, 이제는 병장이 이등병에게 갑질할 수 없는 병영문화가 정착되었다. 민간에서도 여전히 기수문화가 남아있긴 하지만 1980~90년대에 비할 수는 없다. 많이 없어졌고 없어져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다. 가장 기수문화가 강했던 분야인 체육계에서도 선·후배 간 격의없이 농담하고 장난치며 지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회사에서도 기수문화가 없어져야 함은 물론이다. 기수문화가 존재하는 한, 회사의 생산성이 떨어지고 당연히 매출도 떨어진다. 기수문화가 나빠서 없애는게 아니라 회사에 이득이 되지 않기 때문에 없애는 것이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토론하고 의견을 나눠야 발전과 혁신, 창의적인 무언가가 생겨나는데 기수문화가 만연한 곳에서 이런 분위기가 생길 리 없다.


정말 안타깝게도 절대복종과 기수문화, 이 쌍팔년도 조직문화의 양대축이 공무원 사회에서는 그대로 살아있다. 그것도 아주 강하게 살아남아 핵심가치로 기능한다. 이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공직에서 성공할 수 없다. 반대로 말하면 절대복종과 기수문화를 잘 지키면 성공한다는 이야기도 된다. 앞에서 언급한 불공정경쟁, 젊어서는 고생이고 늙어서는 신선놀음이라는 공직문화와도 연계된다. 모두 절대복종과 기수문화가 그 뿌리라고 볼 수 있다. 이제 공무원 사회에서 절대복종과 기수문화가 어떻게 발현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우선, 상사나 선배의 지시에 절대 반박하거나 토 달면 안된다. ‘이것’ 하라고 했으면 알겠다고 하고 ‘이것’하면 된다. 상사도 물론 사람인지라 잘못 생각하고 지시할 수도 있다. 지시한 내용이 비합리적이고 규정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네 알겠습니다.’ 하고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만약 지시내용이 위법하거나 정말 해서는 안될 내용일 때는 지시하자마자 반박하지 말고 최소한 몇시간이 지나서 조심스럽게 이야기 해야 한다. 아까 지시하신 내용을 살펴보니 어떠한 관련규정과 지침이 있어서 그대로 시행하기에는 어려울 것 같다고 아주 상냥하고 조심스럽게 상사를 존중하면서 말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싸가지 없는 직원으로 찍힌다.


여기서 싸가지가 없다는 것은 예의를 지키지 않는 행위를 말하는게 아니다. 공무원 사회에서 싸가지가 없다는 말은 ‘나에게 상냥하게 대하지 않는다, 내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뜻한다. 옳은 이야기를 하면 안된다. 상사가 듣기 좋은 이야기를 하면 된다. 한마디로 아첨하면 된다.


선배 직원이나 상사의 사적인 요구도 암암리에 들어줘야 한다. 마치 옛날 군대에서 후임이 선임 옷가지를 빨래해 주던 것과 비슷하다. 그 요구는 자신의 업무를 은근슬쩍 떠넘기는 것일 수도 있고, 같이 어디를 가서 술먹자 밥먹자 등산가자 놀아달라는 것일 수도 있고, 심지어 돈을 빌려달라는 경우도 있었다. 이 요구들을 들어주지 않는 순간 ‘싸가지 없다’라는 말을 듣게 된다. 자신들이 불합리한 요구와 부탁을 해놓고 그것을 수용하지 않으면 저 직원은 싸가지가 없다며 낙인을 찍어 공직사회에서 평판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는게 선배 공무원이라는 자들의 무기다.


상사가 혼자 밥먹게 해서는 안되는 문화도 있다. 팀원이 3명인 팀이 있다고 하면 어느 날은 그 3명 모두 점심시간에 개인일정이 있을 수 있다. 팀장만 개인일정이 없다고 한다면, 팀장은 그냥 혼자서 점심식사를 하면 된다. 그런데, 공직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우습게도 상사 혼자 점심시간을 보내게 놔두어서는 안된다는 관습이 있다. 팀원 3명 중 누군가는 자신의 일정을 포기하고 팀장과 함께 점심을 먹어야 한다. 이건 모든 상사가 마찬가지다. 팀장도 과장도 절대 혼자 밥을 먹게 해서는 안된다는 불문율이다. 직급이 높아질수록 더욱 그렇다. 상사 밥시중 술시중은 공무원 업무중 최고로 중요한 업무다.


또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은 무조건 후배 몫으로 돌아간다. 업무난도와 업무량, 개인의 적성에 따라 업무가 배분되어야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모두가 맡기 싫어하는 일, 부담스러운 일이 연차가 가장 낮은 직원에게 배정된다. 어려운 일일수록 행정경험이 많은 선임들이 맡아줘야 하는데 그 어떤 선배직원도 나서지 않는다. 오히려 배정이 되면 상사에게 항의하고 나는 그 일 못한다고 까무러친다.


후배 직원은 그렇게 반발하기 힘들다. 연차가 오래되지 않았기에 자기 주장을 마음껏 펼치기 어려운 입지에 있다. 한낱 동물들도 새끼일때는 성체가 될 때까지 주변에서 배려해 준다. 먹이를 직접 잡을 수 없으니 가져다 먹여주고 이동할 때도 그 속도에 맞춰 준다. 공무원에게 그런 배려를 바라는 것은 사치다. 이제 막 입사한 신규 공무원에게 가장 어려운 일, 모두가 하기 싫어하는 일을 업무배정해버리고 나몰라라다. 본인이 버티면 다행이고 못버티고 나가도 어차피 나랑 상관없는 일이라는 식이다. 어차피 그 직원 나가도 신규직원은 계속 들어온다. 그리고 그 직원이 당돌하게 일을 못하겠다라는 식으로 나오면 싸가지 없다는 낙인을 찍고 신규 직원이 일 열심히 안한다며 선배 직원들끼리 똘똘 뭉쳐 조리돌림한다. 팀장 과장 등 관리자는 다 알지만 모른체한다. 괜히 나서기도 싫고 책임지기 싫고 직원들에게 싫은소리 하기도 어렵다. 결국 연차가 가장 낮은 신규직원만 고생 또 고생이다.


공무원에서 관리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결혼 장례식 등 자신의 경조사에도 갑질을 부린다. 상사 자녀가 결혼을 하면 결혼식 입구에서 부조를 받고 하객들을 안내하는 등 뒤치다꺼리를 부하직원들이 한다. 상사 부모가 돌아가셨는데 장례식 발인에서 부하직원이 관까지 들어주는 경우도 있었다. 상사와 관련된 모든 일에 노예처럼 동원되는게 하급 공무원의 일상이다. 특히 30년 가깝게 같은 기관에서 계속 근무하는 지방직 공무원이 더욱 심하다.


이토록 위계질서가 빡빡하고 수직적이니 공적인 회의문화도 제대로 성립되어 있을리 없다. 회의가 아니라 교장선생님 훈화말씀을 듣는 자리라고 보면 된다. 공무원의 회의에는 토론과 논쟁이 없다. 그저 그 회의에서 가장 높은 직급에 있는 사람에게만 발언권이 있다. 모두 조용히 듣기만 하고 질문에 형식적인 대답만 한다. 회의를 통해 아무런 디벨롭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윗사람은 말하고 아랫사람은 듣는다. 그리고 그대로 시행할 뿐이다.


공직사회의 슬프고 슬픈 현실이다. 필자가 10년 이상을 근무했지만 전혀 바뀌지 않았고 바뀔 분위기도 보이지 않는다. 지금은 2023년이다. 이제 세상은 10년마다 강산이 바뀌는게 아니라 1년마다 바뀐다고 생각한다. 쌍팔년도 군대문화는 이제 대한민국에서 완전히 필요없는 시대가 되었다. 모두 자신의 역할을 각자 하고 있을 뿐이지 윗사람 아랫사람의 개념은 아니다. 관리자는 직원들을 잘 통솔해 최상의 생산성이 산출될 수 있도록 리드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이고,  실무자는 말그대로 실무에 집중하는 사람이다. 단순히 분업할 뿐이다. 위 아래의 개념이 아니다. 서로 자신의 일만 잘하면 된다.


이 당연하고도 당연한 명제가 언제쯤 공직사회에 받아들여질지 의문이다. 9급 공무원이 되면 이런 쌍팔년도 문화 속에서 30년 동안 직장생활을 해야한다. 자기계발과 성장이 될 리 없다. 필자는 공무원 문화가 이렇게 꽉 막혀 있을줄은 꿈에도 몰랐다. 알았다면 절대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