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1일. 법무부 청사에서 열린 신임 검사 임관식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말했다.
"생활인으로서, 직업인으로서, 밥 벌어 먹기 위해 하는 일의 기준이 공정과 상식이라서 참 좋았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검사 출신이다. 검사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기에 새파란 신임 검사들 앞에서 하고 싶은 말이 오죽 많았으랴만 검사라는 직업의 좋은 점을 이렇게 설명하는 내용을 듣고 참 검사라는 직업이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범죄를 저질러 무고한 국민에게 피해를 준 범인의 죄목을 낱낱이 밝혀 정의의 이름으로 심판하는 검사라는 직업은 모든 사람이 열망하는 공정과 상식의 가치에 정확하게 부합한다. 내 노력이 공공선을 이룬다. 사익과 공익이 일치한다. 돈과 명예를 떠나 내 일이 국가와 사회를 위해 기여한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눈으로 보인다.
의사도 마찬가지다. 환자의 목숨을 살려내기 위해 몇시간 동안 수술에 임한다. 그 환자가 건강을 회복해 퇴원하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행복할까 싶다. 한 사람은 하나의 우주와 같다. 하나의 우주를 살려내는 직업인 것이다.
물론 모든 직업이 검사나 의사처럼 가시적인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직업은 아닐 테다. 특히 평범한 회사원이라면 더욱 그렇다. 회사원은 자신이 속한 회사를 위해 일하는 부속품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내 자아를 실현하고 인생의 가치를 찾는 직업으로서는 부적절하다. 회사의 목표를 위해 일하는 것이지 내 목표를 위해 일하는 것은 아니다. 회사원 개인에게 중요한 건 내가 일한만큼 정당한 대가를 가져갈 수 있느냐다.
결국 직업은 돈과 보람, 둘중에 하나는 있어야 좋은 직업이라고 볼 수 있다.
검사나 의사, 연예인처럼 둘 모두를 가져가는 직업은 최고의 직업이다. 모두가 선망한다. 하지만 그렇기에 모두가 될 수 없는 직업이다. 경쟁이 치열하다. 되기 어렵다.
그 다음은 둘중 하나라도 있는 직업이다. 보람이든 돈이든 하나만 확실해도 직업의 만족도는 크다. 당연히 최악의 직업은 둘다 없는 직업이다. 경제적 소득도 후지고 보람도 없는 직업. 이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둘중 하나라도 있는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 자리에 노력 없이 계속 맴돌면 내 삶의 만족도는 시간이 갈수록 떨어질 수밖에 없다.
9급 공무원은 안타깝게도 돈도 보람도 없는 직업이다. 돈이 없다는 것은 이미 서두에 설명했다. 최저임금 수준의 박봉 직업이다. 그런데 보람마저 없단 말인가? 실망스럽겠지만 그렇다. 원래 공무원은 돈은 없어도 보람으로 하는 직업이었다. 영화 베테랑에서 정의로운 경찰 역을 맡은 황정민은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라고 고함친다. 가오가 곧 보람이고 사명감이다. 공무원들은 특히 이 사명감이란 말을 좋아한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사명감, 그 보람으로 하는 일이 공무원이다.
그런데 왜 지금은 공무원에게 보람마저 없어졌을까?
공무원의 일은 크게 사업과 대민서비스, 지원 3가지로 나뉘어진다.
사업이란 국가가 국민에게 제공하는 모든 종류의 업무를 말한다. 작게는 공원을 관리하고 도로를 청소하는 것에서부터 크게는 도서관을 짓고 공원을 만들고 축제를 개최하는 등 그 종류가 무궁무진하다.
대민서비스는 직접 주민에게 무언가를 제공하는 일이다. 사업도 크게 보면 주민에게 제공하는 일이지만 서비스는 그 범위가 소수에 한정되어 있다. 작게는 수천명 크게는 수십 수백만명이 영향을 받는 사업과는 다르다. 동주민센터에서 주민등록등본을 떼주거나 복지직 공무원의 복지서비스가 이에 해당한다. 우리나라 공무원 대부분은 사업이나 대민서비스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지원업무는 사업이나 대민서비스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이 그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뒤에서 지원하는 업무다. 군대로 따지면 보급부대다. 공무원들 월급도 주고 장비도 마련해 주고 불편한 점이 있으면 해결해준다. 공무원을 위한 공무원들이다.
사업, 대민서비스, 지원 어떤 분야에 종사하고 있든지 공무원은 보람을 느끼기 힘들다. 이유는 하나다. 내 뜻대로 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담당업무에 대해 주체적으로 일을 추진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한다.
내가 담당하는 작은 회의 하나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 회의에 사용되는 현수막과 명패 색깔까지 관리자의 결재를 받아야 한다. 내가 작성한 보고서의 글씨 크기와 줄 간격까지 제멋대로 수정하는 관리자들이 많다. 실무를 담당하는 하급 공무원 입장에서는 미칠 노릇이다. 모든 일을 이런 식으로 해야 하니 내가 기계인지 사람인지 헷갈려진다. 그 어떤 일을 해도 보람을 느낄 수 없다. 내 뜻이 반영된 일이 아니라 오롯이 관리자의 뜻만 반영되기 때문이다.
이는 하급 공무원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관리자가 되어도 마찬가지다. 관리자조차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극히 좁다. 기관장의 지시와 각종 조직 차원의 관례 관습이 공무원의 자율성을 짓누른다. 내가 평소에 생각하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 싶어도 기관장의 결재가 없으면 시행할 수 없다.
대민서비스 분야는 더욱 심각하다. 애초에 이 분야는 자율성이 없는 분야다. 등본을 떼주고 복지행정을 하는데 자율성이 어디 있겠는가? 법령과 지침에 따르기만 하면 된다. 괜히 융통성 있게 업무를 했다가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을 수도 있다.
보람과 자부심은 ‘나’의 자율의지로 성과를 이루어냈을 때 생긴다. 다른 사람의 의지로 이루어낸 성과는 개인의 성장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개인의 성장도 정체한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다른 사람의 강요에 의해 올바른 길로 나아가는 것보다 설령 결과적으로 잘못된 길일지라도 개인의 주체적인 선택으로 그 길을 나아가는 것이 그 사람의 발전에 더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사람은 그렇게 성장하는 것이다.
이제 막 프로야구에 데뷔한 신인선수가 타석에서 소극적으로 가만히 서있기만 하고 감독 말만 따라하면 성장하지 못한다. 자기 생각대로 마음껏 스윙해보고 삼진도 당해보고 땅볼도 쳐보고 이것저것 내 주체적으로 맞부딪치며 성장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감독이나 코치의 조언이 도움이 되는 것이지 감독이나 코치의 말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선수에게는 미래가 없다.
공직사회에 뿌리깊게 박혀 있는 상명하복과 관리자의 마이크로매니징이 하급 공무원들의 업무의욕을 떨어뜨리는 일등공신이다. 공무원이 자부심과 보람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완전히 박탈시킨다.
공직사회는 군대가 아니다. 관리자는 정책의 시행여부와 방향성을 결정하는 자리이지 보고서 형식이나 현수막 색깔이나 지적하고 고쳐대는 마이크로 매니징을 하는 자리가 아니다. 과감하게 하급 공무원을 믿고 세부적인 내용은 위임해야 한다. 위임하지 못하는 관리자는 용기가 없는 관리자다. 물론 위임한 결과가 좋지 않을 수 있다. 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그 과정을 통해 개인은 더 발전한다. 개인이 발전하면 조직도 발전한다. 관리자는 호밀밭의 파수꾼처럼 하급 공무원들이 마음껏 자신의 생각을 그 담당업무 분야에서 발휘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주고 큰 실수를 저지를 위험이 있을 때만 개입하여 지켜주면 된다. ‘잘한 사람 상 주고 못한 사람 벌 주는’ 일이 관리자의 가장 기본적인 업무임을 다시 한번 상기해 본다.
우리나라 행정절차의 근간인 ‘품의제’도 과연 이 시대와 맞는 것인지 다시 검토해 보아야 한다. 품의제란 담당 실무자가 어떤 행정결정이나 행정처분을 할 필요가 있을 때, 문서를 작성하여 관리자의 결정을 얻는 제도를 의미한다. 문제는 관리자가 한 명이 아니라는 데 있다. 최소한 2명, 많게는 5명까지 결재를 받아야 한다. 결재과정에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섞이고 그 의견을 모두 반영해야 한다. 그 5명의 관리자들이 얼마나 그 문제에 관심이 있겠는가? 담당자만큼 상황을 잘 알고 있지도 않다. 담당자로서 확고한 의견을 내는 것도 사실상 불가하다. 공직사회는 절대복종과 상명하복으로 움직이다. 관리자는 언제나 자신의 뜻대로 되길 원한다. 담당자의 의견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다. 괜히 찍힐바에야 상사 하는 말에 네네 알겠습니다 수긍하는게 편한 길이다. 결국 이사람 저사람 의견을 모두 반영하다 보니 문서는 엉망이 되고 담당자 본인이 갖고 있던 의지와 주관은 어느새 저멀리 사라져 버린다. 한사람 한사람 관리자의 결재를 거치면서 실무 공무원의 뜻은 꺾여 간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으며 아무런 자부심도 보람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중간 관리자들도 마찬가지다. 본인이 이러저러 추진방향을 정하고 결재했는데 그 위에 관리자가 다 엎어버린다. 본인이 결재할 이유가 없어진다. 그들의 주관도 없어진다. 어차피 내 뜻대로 되지도 않을 건데 다음부터는 그냥 윗분한테 100% 물어보고 진행해야겠다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그렇게 공직사회에 생각 없는 좀비처럼 적응해 가는 것이다.
2022년 직장인들이 꼽은 가장 행복도가 높은 기업은 구글코리아였다. 소셜플랫폼 블라인드에서 한국노동연구원과 공동개발한 지표로 소속직원들의 행복도를 산출한 결과다. 구글코리아가 1위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직급이 낮은 직원이라도 어떤 의견이든 말할 수 있다는 심리적 안전감으로 나타났다.
관리자 앞에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권리, 내 뜻대로 일하는 방식과 방향을 조정할 수 있다는 통제감을 하급 공무원에게 부여해야 한다. 물론 공무원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래서 최근 기업들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직원들의 자율성을 존중해 주지 않으면 기업의 성장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떻게든 직원들의 기를 살려주려 한다. 파격적으로 30대 젊은 직원을 임원으로 승진시키기도 하고, 수평적 조직문화를 위해 직위간 호칭을 없애버려 전 직원이 서로 직위가 아니라 이름을 부르며 일을 한다. 담당자에게 업무의 목적과 예산만 부여하고 완전히 자율성을 부여하여 담당자가 그 어떤 결재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예산을 사용하며 업무를 추진하는 경우도 있다. 공무원에게는 꿈과 같은 이야기다. 이런 수준의 개혁적인 조치는 바라지도 않는다. 공무원의 의견을 어느정도 반영해주고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만 만들어 줘도 숨통이 트일 것이다. 그러나, 절대복종 눈치백단 공무원 사회에서 현실은 까라면 까다. 튀지 마라 의견내지 마라. 조용히 살아라다. 문제 해결은 요원하고 요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