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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이삭 Aug 09. 2023

소확행, 그리고 공무원

9급 공무원은 소확행이 가능한 직업일까?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퇴근 후 캔맥주 하나, 따뜻한 커피 한잔, 인사이트가 있는 책 한권, 몰입할 수 있는 게임, 강아지와 공원 산책, 소중한 사람과의 교제..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월든’에서 자연과 함께하며 세상욕심 버리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삶을 찬미한다. 월든은 심플하고 소박한 인생을 살아가고자 하는 모든 이들의 지침서가 되었다.


공무원의 삶도 ‘월든’ 정도는 안될지라도 월든 근처에는 갈 수 있다. 소확행이 가능하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의 양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이 뭐라 하든 크게 신경쓰지 않으면 된다. 내 자신을 파고 들어가는 내밀한 삶을 꿈꾸는 이라면 9급 공무원도 자신의 인생을 맡길 만한 선택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소확행과 함께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일까?    


· 생계유지 가능한 소득

· 소확행에 만족할 수 있는 내면의 힘

· 난이도가 높지 않고 9 to 6가 보장되는 업무량




소득 문제는 9급 공무원이 되는 순간부터 인생의 마지막까지 국가에서 보장해 준다. 금액이야 적더라도 생계유지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내면의 힘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기에 언급하지 않는다.


문제는 업무량이다. 공무원은 결국 국가가 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일을 시키는 사람은 일하는 사람의 사정을 그리 잘 봐주지 않는다. 일하는 사람이 밤을 새든 주말을 희생하든 그 사람의 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앞선 글에서 수차례 설명한 바와 같이 공무원 30년 생활 중 절반인 15년 정도는 관리자로서 신선놀음하기에 이 문제도 시간이 자연스럽게 해결해 준다. 또한 실무자로서의 생활도 내가 일을 안하면 그만이기 때문에 적절하게 일을 조절할 수 있다. 물론 조직 내 평판은 나빠질 수 있지만 소확행을 목표로 하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조직 내 평판이나 빠른 진급에 목을 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상관이 없다.


창업이나 프리랜서, 일반 사기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꿈도 못 꿀 일이다. 그들은 많은 돈은 손에 거머쥘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난이도가 높지 않으며, 9 to 6가 가능한 업무여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사업가는 출근과 퇴근이 없다. 회사 하나를 책임지고 총괄관리한다는 책임감은 상상 그 이상이다. 끊임없이 변하는 내·외부 환경에 적응해야 하고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자칫 한번만 삐끗해도 그 회사는 나락으로 가버린다.


사기업에서 근무하는 직원도 마찬가지다. 공무원은 일을 피할 수 있지만 사기업은 일을 피할 수 없다. 시키는 일은 어떻게든 감당해 내야 한다. 감당하지 못하면 희망퇴직이 기다린다. 진급을 해도 마찬가지다. 공무원은 진급하면 일 안하고 책임 없이 신선놀음이지만 사기업은 진급을 할수록 일이 많아지고 성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며 조기퇴직 가능성도 높아진다.


후배 직원들이 치고 올라오는 것도 부담이다. 그 어느 세대에나 젊은이들은 나이든 이보다 똑똑하고 힘이 있다. 그들과 어느정도 수준을 맞추려면 퇴근 시간 이후에도 자기계발해야 한다. 공무원은 뛰어난 젊은 직원들이 아무리 많아봤자 위험요소가 되지 않는다. 상명하복 장유유서 서열연공 중심의 군대문화가 강력하게 자리잡고 있으므로 오히려 뛰어난 젊은 직원은 ‘나댄다’ ‘교만하다’라는 식의 프레임에 걸려 버린다. 경력 많고 계급 높은 사람이 그저 최고다. 나이가 들수록 공무원이 편안한 이유다.


아무리 생각해도 공무원만큼 소확행을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직업은 찾을 수 없는 것 같다. 최근 전문직 열풍이 불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과는 메디컬, 문과는 변호사·감평사·노무사·회계사·법무사 등 전문직 자격 시험에 도전하고 있다. 그러나, 바늘구멍을 뚫고 목표를 달성한다 해도 이 직업들이 소확행을 실천할 수 있는 직업일까? 그렇지는 않다. 결국 전문직은 개인사업자이며 프리랜서다. 자신들만의 전문범위가 있는 하나의 창업가이자 프리랜서일뿐 그 본질은 일반 사업가와 다를 바가 없다. 치열한 영업과 인맥싸움, 새로운 아이템을 계속 내세워 본인을 차별화해야 한다. 어떤 이는 회사에 들어가 일해야 한다. 물론 일을 계속 하면서 업무가 손에 익어 업무 난도 자체는 낮아질 수 있지만 본인 밥벌이 문제를 두고 계속 고민하며 사회에서 싸워나가야 한다는 점은 불변이다. 아무 일도 안하고 인터넷 서핑만 하다가 퇴근하는 공무원 신선놀음과는 비교불가다.


공무원의 소확행은 얼핏 완벽해 보인다. 그러나 결정적인 문제점이 있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소확행의 본질적인 면까지 충족시킬 수는 없다는 점이다. 소확행이 가져오는 진정한 행복은 ‘대확행’할 수 있는데 ‘소확행’한다에 있다.


나는 강남 한복판에 브랜드 아파트를 구입해서 살 능력이 있지만 자연이 좋아 경기도 외곽 전원주택에 산다든가, 외제차를 구입하여 관리할 수 있는 충분한 경제적 여력이 있지만, 심플한 삶을 추구하기 때문에 경차를 운행한다든가, 할 수 있지만 하지 않고 작은 행복에 만족한다는 게 소확행의 진정한 본질이다. 십만원 쓸 수 있는데 만원 쓰는 것과 만원밖에 없어서 만원 쓰는 것은 엄청난 차이다. ‘대확행’을 못해서 ‘소확행’하는 것은 온전히 소확행을 누리는 삶은 아닌 것이다.


서두에서 언급한 소확행의 대표명사인 ‘월든’의 작가 데이비드 소로도 도시에서 충분히 자신의 역량을 발휘한 사람이고 평생 일 안하고 놀고 먹을 수 있는 재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한마디로 사회적 위치가 상당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월든’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찬미했기에 ‘월든’이 명작으로 남은 것이다. 데이비드 소로가 아무런 사회적 위치도, 학벌도, 재력도 없이 변변치 않은 사람이어서 어쩔 수 없이 그냥 시골 ‘월든’에 사는 거였다면 ‘월든’에서 보여주는 그의 통찰력은 나오기 쉽지 않았을 게다. 독자들도 감동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소로는 월든에서 평생 산 것은 아니다. 도시로 결국 돌아갔다.)


공무원의 소확행도 이러한 한계점이 명확하다. 소확행하고 싶어서 하는게 아니라 어쩔수없이 소확행하는 것이다. 소확행 말고는 딱히 내 인생에 의미를 둘 어떤 가치를 창출할 방법이 없다. ‘대확행’을 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인생주관과 신념에 따라 ‘소확행’을 선택했다가 되어야 하는데 소확행할 수밖에 없는 인생인데 소확행한다면 그 만족감은 극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약 10년 전 9급 공무원 열풍이 불고 있을 때, 서울대생이 9급 공무원이 되어 화제가 되었다. 당시 아무리 공무원이 인기직종이라 했어도 서울대생이 9급 공무원이 된다는 건 상상하기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 사람은 다른 길을 택할 수도 있었지만, 공무원만이 주는 장점이 있기에 이 직업을 선택했다고 말했는데 이러한 내·외면의 힘이 있다면 9급 공무원을 직업으로 선택하는 것을 추천한다.


꼭 서울대생이 아니더라도 이러한 조건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부모님이 경제적 여력이 월등해 부모님이 하던 일 그냥 물려받을 수 있거나, 혹은 그 경제적 여력을 바탕으로 내 마음대로 직업을 선택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소확행이 좋아 9급 공무원이 하고 싶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여러가지 직업 선택의 가능성이 완전히 열려 있는 상황에서 주체적인 선택으로 소확행의 삶을 누리고자 9급 공무원을 선택한 경우는 충분히 공무원 직업을 선택할 만하다. 이것은 소확행의 본질과 완전히 부합하기 때문이다. ‘대확행’할 수 있지만 ‘소확행’을 주체적으로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공무원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과 안전성 정도에 추상적인 매력을 느끼고 9급 공무원이 되었다면 소확행을 해도 소확행이 아닐 것이다. 내 욕심과 야망은 그대로 남아 있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안좋은 조건의 직업이 9급 공무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실망감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체념하고 소확행에 만족하려 해도 마음 한구석에 아쉬움은 계속 남아 인생의 그늘이 된다.


자신의 성격을 비롯해 나를 둘러싼 내·외부 환경을 꼼꼼하게 검토해 보고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주체적으로 선택하기 바란다. 그저 남들이 하니까 먹고살게 딱히 없으니까 막연한 생각으로 선택하지는 마라. 절대 추천하지 않는다.


필자는 9급 공무원이라는 직업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자신에 대한 깊은 사색과 성찰, 환경분석 끝에 그 신념에 따라 소확행을 목표로 하고 이 직업을 선택한다면 9급 공무원도 충분히 좋은 직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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