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 안전 요원의 절규
전국! 노래! 자랑!
일요일 낮을 이렇게 오래오래 책임지고 있는 프로그램이 또 있을까. 오래전 내가 거주하는 지역에서 전국노래자랑이 열렸을 때 구경 간 적이 있다. 지금은 작고하신 송해 선생님의 열정적인 사회를 보면서 참 정정하시고 멋있으시다고 감탄했다. 그때 구경 온 주민들이 한 군데에 몰리지 않도록 안내하던 사람들을 보았다. 그때는 그들이 방송국 또는 봉사단체에서 나온 사람들인 줄로만 알았다.
지방직 공무원이 되고 몇 달 지나지 않아서 내가 근무하는 지역에서 전국노래자랑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자체에서는 발 빠르게, 녹화 당일 근무할 행사 진행요원 명단을 과별로 제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 근무조와 오후 2시부터 녹화가 끝날 때까지 근무조, 이렇게 두 개조를 편성할 수 있는 인원을 채워야 했다. 그때 깨달았다. 예전에 내가 본 사람들이 방송국도 봉사단체도 아닌 지자체에서 나온 공무원이었음을. 역시 내 일이 되어봐야 비로소 제대로 알게 된다.
나의 첫 지역 행사 차출은 전국노래자랑이었다. 촌스럽게도, 나는 그저 모든 과정이 신기했다. 방송국 사람들의 STAFF 조끼도 멋졌고 멀리 보이는 연예인도 힐끔거리며 쳐다보았다. 스태프들은 사진 촬영은 허용하나 동영상 촬영은 저지하는 일을 했고 몇몇 사람에게서는 경호원과 같은 매서움도 느껴졌다. 그들 사이에서 병아리 같은 노란 조끼를 입은 공무원들은 아주 약간은 귀여울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국가직 공무원일 때는 보지 못한 행사에 나는 아주 신이 났다. 마치 소설 「동백꽃」의 점순이처럼 “너 봄 감자가 맛있단다. 느 집엔 이런 거 없지?”하는 마음이었을 거다. 전 직장 동료들에게 “지방직 공무원은 이런 일도 한단다. 전국노래자랑 가까이서 본 적 없지?”라며 뻐기고 싶은 충동까지 들었으니까. 하지만 이런 허세 섞인 자랑을 하고 싶은 욕심은 그날의 근무가 끝나기 전에 싹 사라졌다.
오전 근무조였던 나는, 본 녹화 전 리허설 소리만 들을 수 있었다. 행사 요원은 시민들의 보행 안전을 책임지는 역할을 해야 하므로 무대가 아닌 보행 통로를 바라보며 서 있어야 한다. 그렇게 다섯 시간 가까이 선 자세로 있으려니 허리가 뻐근하게 아려왔다. 점심도 못 먹고 서서 오후 근무조가 어서 와서 교대해 주기만을 기다렸다. 본 녹화 시간은 오후 3시 남짓이라 관객석에도 텅 빈 의자들이 많았다. 지천에 의자가 깔려 있는데도 앉지를 못하다니. 그것이 바로 행사 요원의 숙명이었다.
이런 차출은 몇 차례 더 이어졌다. 국회의원 선거 투표관리원 차출, 지역축제 행사 보조 인력 차출, 핼러윈이나 크리스마스 전야와 같은 인파 운집 시 필요한 안전요원 차출 등등. 그나마 공직에서 근무 중인 의사와 간호사는 의료 지원 인력이라는 직함이라도 있지, 안타깝게도 공직약사는 이들 사이에 들지 못했다. 각 지자체 보건소는 신속대응반을 운영하고 있어서 재난, 재해 상황을 미리 대비하고 있는데, 내가 일했던 근무조에서는 약사를 행정요원으로 분류했다. 의료법상 의료인의 정의에 약사가 포함되지 않기 때문일 것으로 짐작한다.
그럼에도, 행사 요원으로 투입될 때는 내가 관리하는 구역을 오고 가는 사람들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렇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너무 힘들고 지칠 것 같아서다. 안전수칙을 따라 달라고 앵무새처럼 반복하다 보면 그나마 유지하던 인류애 고갈의 위기도 종종 찾아왔다.
“통로에 서계시면 통행에 방해가 됩니다. 이동해 주세요.”
“이곳에서 흡연은 안 됩니다.”
“난간에 기대지 마세요. 위험합니다.”
통제는 누구에게나 불편하고 부담스럽다. 하지만 사람이 많이 모이는 상황에서는 때론 노랗고, 때론 파란색 조끼를 입은 행사 안전요원의 말을 들어주시길. 사실 나도 이 일을 하기 전에는 그들이 힘들다는 것을 잘 몰랐고 왜 저렇게 날이 서있지 싶었던 적도 있다. 안전에 예민해지고 같은 말을 반복하다가 그렇게 된 줄을, 내 일이 되었을 때야 비로소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