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여행기 -9
붉은 광장은 바실리 성당 뒤쪽으로도 입장이 가능하고,
굼 백화점 앞으로도 입장이 가능하지만 부활의 문이 진정한 정문입니다.
전형적인 러시아 건축물처럼 보이는 부활의 문은 입구쪽의 기도실을 기준으로 좌우가 대칭되는 모양입니다.
러시아의 상징 쌍두독수리 모양을 기준으로 뾰족한 두 첨탑을 간직한 부활의 문을 지나 붉은 광장을 통해 들어오니 은은한 종소리가 들려옵니다.
문득 종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카잔 성당이 있습니다.
전날밤에도 카잔 성당을 보긴 했었는데, 어제는 단순히 작은 가게라 생각했을 정도로 작고 아기자기합니다.
분홍색 아담한 성당은 언뜻보면 에버랜드의 기념품 상점처럼 생겼습니다.
이렇게 아담하고 귀여워 보이는 카잔 성당은 사실 러시아 역사에서 꽤 의미 있는 성당입니다.
이반 4세 이후 러시아의 국력이 쇠퇴하며 폴란드와 스웨덴이 번갈아 침공하는 동란의 시대가 찾아옵니다.
1610년 폴란드가 러시아를 침공하며 국가의 명운이 달려 있을 때 성모 마리아가 한 소녀의 꿈에 나타났습니다.
성모 마리아는 소녀에게 이콘(그리스 정교회에서의 신성한 종교 그림)의 위치를 알려주었습니다.
잠에서 깬 소녀는 폐허 사이에서 성모의 이콘을 찾아냈습니다.
러시아군은 이 이콘의 힘을 빌려 폴란드 군을 물리치고 이콘을 보관하는 카잔 성당을 지었습니다.
카잔 성당은 러시아를 지켜주신 성모 마리아를 위한 위대한 성당인 것입니다.
하지만 소비에트 연방 당시 카잔 성당과 부활의 문은 열병식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파괴되었습니다.
성당은 1993년 소련 해체 이후 다시 지어져 지금의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이 때문에 분홍빛의 귀여운 모습인가 싶습니다.
예전의 카잔 성당 모습이 궁금해집니다.
다시 러시아 국민들의 품에 돌아온 성당은 언제나 신의 목소리가 은은히 퍼집니다.
정교회 신자가 아닌 저도 그 목소리에 이끌려 입구에서 성호를 긋고 성당으로 들어갔습니다.
별 다른 화려한 장식이 없음에도 이콘의 성스러움과 신도들의 기도가 성당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성당안에서는 아침 미사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아름다운 노래처럼 신부님의 미사는 신도가 아닌 제 마음에도 후비고 들어옵니다.
이렇게 성당과 저는 천천히 동화되어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