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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만 무명 용사

러시아 여행기 -10

by 박희성

성당을 나와 국립박물관쪽으로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예상과 달리 모스크바의 날씨는 따사로운 봄날씨입니다.

얇은 점퍼 하나면 충분히 걸어다닐만 했고, 구름 한 점 없는 날씨는 들뜬 기분을 더욱 붇돋습니다.

국립 박물관 앞에는 말을 타고 있는 동상 하나가 눈길을 끕니다.

주코프 원수의 동상이었다.

주코프 원수는 레닌그라드 전투와 스탈린그라드 전투, 베를린 전투까지 승리로 이끈 2차 세계대전의 명장입니다.

외국인의 입장에서 모스크바의 심장 붉은 광장의 입구에서 위엄을 뽐내는 동상을 보면 평범한 사람은 아니겠구나 생각했는데,

역시나 많은 러시아인들이 주코프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image_2349967781528976031614.jpg?type=w773 주코프 원수의 동상

동상을 뒤로 한 채 공원처럼 보이는 곳으로 이동하다보니 무언가 눈길을 이끕니다.

꺼지지 않는 무명 용사의 불이었습니다.

수 많은 관광객들이 서서 근무 중인 군인을 구경하고 있습니다.

군인들은 절도 있게 서서 불이 꺼지지 않게 지키고 있었습니다.

러시아 역사가 소비에트 혁명부터 1,2차 세계 대전을 거쳐오는 동안 우리는 단순히 레닌, 스탈린 등만 공부하고 외워왔습니다.

사실 역사는 영웅을 만들고, 그 역사를 만든 것은 작은 사람들입니다.

수천만의 사람들이 영웅들의 전쟁놀이에 희생되었고, 이름없이 불꽃으로 사그라졌습니다.

비단 러시아 역사만이 아닙니다.

최강대국이었던 미국, 영국을 비롯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죠.

결국 위대한 것은 영웅이 아닌 민초일지라도 말입니다.

이곳에서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영혼들이 작은 불꽃으로만 남아 있었습니다.

1523512882223.jpg?type=w773

절도 있는 모습으로 한 군인이 근무를 서는 군인 앞으로 오더니 속삭입니.

이 둘은 무슨 말을 나눴을까요.

사그러져 간 선배 군인을 지키는 영광스러운 근무를 격려했을까요.

그는 잠시 이야기를 하더니 옷 매무새를 정리해주고 다시 기계처럼 절도 있게 밖으로 빠져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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