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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성 Jul 10. 2019

브라티슬라바에서 만난 최고의 수프

슬로바키아 여행기 -2


 아무것도 없어 휑한 버스터미널을 보고 브라티슬라바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면 안 됩니다. 칙칙한 회색빛 버스 정류장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기분 좋은 녹색이 구시가지 입구를 밝혀줍니다. 푸른 가로수가 넓고 멀리 펼쳐져 있어 사이로 새어 나오는 반가운 바람과 햇빛과 푸른 하늘을 만나며 구시가지로 조금씩 스며듭니다. 이런 눈을 뗄 수 없는 풍경을 바라보는데 배가 고픕니다.



 브라티슬라바에서 숙소를 잡지 않았고 오스트리아에서 이튿날 식사를 거의 하지 않아서 덕분에 지갑에 여유가 조금 생겼습니다. 가난한 여행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레스토랑에서 멋진 식사를 기대해봅니다. 그동안 여행을 하며 거한 식사를 한 경우는 드뭅니다. 기껏 해봐야 가끔 먹는 한식이나 생일날 에스토니아에서 차린 푸짐한 생일상 말고는 식비에 큰돈을 쓴 일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에서는 한 번쯤 사치를 부려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곧바로 누가 봐도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멋지고 고급져 보이는 레스토랑으로 들어갔습니다.


 당당하게 수프부터 파스타, 에이드까지 풀코스로 주문합니다. 익숙한 팝송이 흘러 테라스를 가득 메우다 못해 거리로 흘러 퍼집니다. 길거리를 걸어가는 사람들은 마치 푸른 가로수처럼 여유가 넘칩니다. 마치 시인이나 음악가 같은 예술가처럼 이 분위기를 천천히 즐기고 있는데 식전 빵부터 나옵니다. 이제 드디어 브라티슬라바에서의 만찬을 음미할 시간입니다.



 식전 빵과 함께 나온 치즈에는 붉은 무언가가 들어있습니다. 웨이터에게 물어보니 햄을 육포처럼 말린 후 치즈와 섞은 것이라고 합니다. 빵에 듬뿍 발라서 먹으며 다음 음식을 기다렸습니다. 이어 나온 음식은 브로콜리 수프였습니다. 이 수프 하나의 가격만 무려 5유로, 어제 먹은 볶음 국수보다 비싼 가격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알록달록한 가니시부터 먹음직스럽게 느껴집니다. 가니시도 포함된 가격인진 몰라도 이렇게 화려한 음식은 오랜만에 만납니다. 체다 치즈의 고소하고 짭짤한 맛과 브로콜리의 색감이 합쳐져 꼭 만화 속에서나 나올 만한 수프입니다. 아삭 거리는 생 순무도 예술 같습니다. 수프에 순무와 아스파라거스, 그리고 바게트를 약간 잘라서 한 입에 넣으니 완벽합니다. 다음 음식이 벌써 기대됩니다.



 오늘의 메인이자 가장 비싸고 알찬 메뉴가 나왔습니다. 바로 연어 크림 파스타입니다. 이미 완벽한 수프를 맛보았지만 너무나도 먹음직스러운 모습에 위가 새로 생긴 듯 파스타를 갈구합니다. 고소한 연어와 잘 익은 토마토는 마치 장어와 생강이나 고구마와 김치처럼 너무나도 잘 어울립니다. 파스타의 면은 두꺼운데도 소스가 잘 배어 있어서 밀가루 냄새도 나지 않고 너무나 조화롭습니다. 이래서 비싼 값을 한다는 말이 있나 봅니다. 괭이밥처럼 생긴 가니시된 작은 풀은 달콤한 향을 일으켜 먹어도 크림이 질리지 않게 해 줍니다.


 최고로 완벽한 점심 식사를 마치니 웨이터가 커피를 가져다줍니다. 커피를 마시며 브라티슬라바의 향에 빠져가며 도시의 매력에 더욱 녹아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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