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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성 Aug 17. 2019

유화 속 풍경 자그레브 트칼치체바

크로아티아 여행기 -4

 우리나라의 성수동 카페거리나 삼청동 카페거리처럼 자그레브의 트칼치체바는 어디를 바라봐도 예쁘고 아기자기한 카페와 건물들이 가득합니다. 반 옐라치치 광장 좌 우로 펼쳐져 있어 자그레브 시내에 있다면 어디서도 접근하기가 수월합니다. 대성당을 둘러보고 아무 목적 없이 걷다 보니 거리를 둘러싼 성벽 아래 작은 쪽문을 지나니 트칼치체바 거리가 나옵니다. 햇빛이 쨍 하니 뜨거운 날이라 나뭇잎들이 더욱 선명합니다.               


                              

 무지개처럼 총천연색의 자그레브는 강렬한 색채를 가진 유화 같습니다. 빛의 표정을 통해 장면이 연출한 특유의 시각적 표현으로 거칠지만 매혹적인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 같은 매력이 이 거리에서 발산됩니다. 카페뿐만 아니라 다양한 레스토랑도 있어 메뉴 구경하는 재미도 있습니다. 걷기 좋은 거리라고 명명해도 아무도 이견이 없어 보입니다. 주변의 다양한 동상들도 이 거리를 멋지게 해 줍니다. 메리 포핀스같이 우산을 든 정겨운 여성의 동상은 알고 보니 자고르카라는 여성 운동가의 동상입니다. 그녀의 손에는 누군가 말린 꽃을 꽂아두고 갔습니다. 반대편에는 기념품 상점을 장식하는 거대한 부활절 달걀 같은 조형물도 있습니다. 거리 골목골목 하나하나 빠뜨릴 것 없이 모두 아름답습니다.             


                       

햇빛은 아름답지만 너무 따갑습니다. 해를 피하기 위해 바로 옆의 작은 카페에 들러 앉았습니다. 카페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커피를 사랑하는 커피홀릭이지만, 이런 골목에서는 왠지 모르게 달콤하고 새콤한 오렌지 주스가 당깁니다. 머리 끝의 뜨거운 태양 열을 식힐 얼음이 가득한 차가운 오렌지 주스 한 잔을 시켜 앉아서 가만히 앉아 있는데 영어를 잘하는 종업원이 신기한 이야기를 해 줍니다. 바로 블러드 브리지, 피의 다리라는 이야기입니다.                


                           

예전에는 이 곳에 냇가가 흐르는 강가였습니다. 강을 건너기 위한 다리가 하나 있었는데 이 강을 기준으로 한쪽은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자치를 받은 캅톨 지구였습니다. 바로 직전 들렸던 성당이 캅톨 언덕에 있어 캅톨 대성당이라고도 불렸는데 그 구역입니다. 다른 한쪽은 헝가리 제국으로부터 자치를 부여받은 그라덱 지구였습니다. 서로 다른 자치권을 부여받은 두 지구의 사람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 마치 강남과 강북처럼 이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경쟁과 갈등을 지속했는데, 두 구역의 주민들은 유혈충돌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 곳의 다리에서 서로 며칠간 피를 본 이후 다리 밑이 사람들의 피로 흥건히 젖어 붉게 물들었습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이 곳을 블러드 브리지, 피의 다리라고 불렀습니다.                   


                        

지금은 하천이 사라지고 트칼치체바 거리가 생겨 아름다움을 뿜어내지만 한 때는 이 곳이 피로 이루어진 갈등의 시발점이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종업원은 이야기를 마치고 영수증을 책에 꽂아 가져다줍니다. 신기한 이야기를 해준 값으로 두둑한 팁을 챙겨주고 일어나 거리를 다시 걸었습니다. 이야기를 듣기 전과는 확연히 다른 기분입니다. 도로에 한 발자국 건넬 때마다 이야기가 머릿속을 맴돌며 옛 장소의 풍경이 어렴풋이 떠오르는 신기한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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