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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는 시간을 전한다

오랜만에 써 보는 편지

by 박희성

편지란 신기하다. 수천 년간 인간의 의사소통을 위해 이용되어 온 방식이지만 이젠 연인 사이의 로맨틱한 사랑 고백이나 어버이날을 맞이하는 자녀들의 선물로만 간간히 사용된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와 같은 더 쉽고 편한 소통 수단들이 늘어난 탓에 인류 최초의 원거리 통신 방식의 의미가 바뀌었다. 이제는 의사소통보다는 낭만의 수단이다. 이제는 비효율적이기에 도태된 것이다. 주변을 둘러봐도 편지라는 말은 노래로 흘러오는 단어로만 남아 있다.


오랜만에 보고 싶은 사람에게 편지를 쓴다. 편지는 일방향이다. 답장이 오기 전까지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 말을 듣고 무슨 말을 할지 모른다. 카톡이나 전화처럼 순간적인 즉답이 없다. 익숙하지 않은 방식이라 무슨 말을 써야 하는지 고민한다. 대답 없는 말을 전하다 보니 손이 갈피를 잡지 못한다.


그래서 아무 말이나 쓰게 된다. 오늘 날씨가 어떻고, 무엇을 먹었고... 하고 싶은 말은 하지 못하고 빙빙 돌아간다. 논리도 초점도 없이 그냥 입에서 나오는 말이 글로 바뀐다. 하지만 이내 조금씩 길을 찾아간다. 편지의 이유가 조금씩 잡혀 간다. 갈피를 잡지 못하던 편지에 몰입하다 보니 서서히 속마음이 나타난다.


그러면서 다음 문장에는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알게 된다. 나 혼자 하던 말은 이제 상대와 함께한 추억과 기억들로 바뀌어 편지에 스며든다. 편지를 쓰다 보니 다른 생각들이 떠오르지 않는다. 오롯이 상대만 생각하게 된다. 결국 편지는 상대를 생각하는 시간을 전달한다.


마지막 문장에 "보고 싶다."라는 말을 써넣는 것으로 편지를 마쳤다. 결국 보고 싶다는 말을 하기 위해 이렇게 돌아온 것이었다. 보고 싶다는 한 문장을 위해 처음 횡설수설과 우리의 추억을 쓴 것이다. 하지만 그 한 마디를 하기 위해 이렇게 오랜 시간 그대를 생각할 수 있었다.


문득 내가 받았던 편지들이 생각났다. 벽장 깊숙한 곳에 숨어있던 편지들을 꺼내 펼쳐 보았다. 편지를 써 준 그들이 나를 생각하는 시간들이 오래된 벽장 속에서 숨 죽인 채 멈춰 있었다. 각기 다른 글씨들로 그들의 바람, 사랑 혹은 나와의 추억들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들도 한 마디를 하기 위해 수많은 단어들을 통해 나에게 시간을 보내주었다. 비효율적으로 적힌 그 단어들 덕분에 지난 기억들이 다시 되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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