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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성 Dec 30. 2020

오랜만에 사라져가는 페이스북에 들어갔다

잊힌 관계들의 그리움

 글을 쓰다 오래된 여행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페이스북에 들어갔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하루에도 몇 번이고 들락거리던 SNS였다. 특히 대학생 시절에 페이스북은 거의 생활 필수 요소 중 하나였다. 아침에 눈을 뜨고 지하철을 타고 학교를 가는 내내 들여다보고, 지루한 수업 시간 사이사이 교수님 몰래 친구들이 올린 글을 확인하고, 집에 누워서 자기 전 더 이상 볼 만한 게시물이 없어도 무의식적으로 새로운 글을 찾던 일종의 중독 비슷한 상태였다. 페이스북에 사활을 걸었던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을 거라 짐작한다.


 하지만 마치 연락을 끊은 지 오래된 친구처럼 어색한 기운이 있어 수년 동안 접속하지도 않고, 찾아보지도 않았던 페이스북이었다. 친구들과 찍은 사진을 올려 공유하던 페이지에는 이제 광고만 나뒹굴고 있었고, 수십 개의 댓글로 이야기 나누던 게시물들은 몇 년 전부터 발길이 끊겼다. 초등학교 앞에 서 있던 낡고 작은 떡볶이집을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다시 찾아가면 옛 기억보다 훨씬 낡고 후미지고, 벽에는 색 바랜 전단지가 떡이 되어 뭉쳐 있는 그런 떡볶이집.


 아직 페이스북에 글을 쓰는 친구들이 있는 듯했지만 이전의 활기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짧고 화려했던 삶을 마쳐가는 페이스북에는 간신히 인공호흡만 달려있었다. 인스타그램이라는 새로운 활력 있는 자식을 낳고 연어처럼 사라져 가고 있었다. SNS라는 실존하지 않는 서비스임에도 마치 대자연에서 살아있는 유기체의 순환처럼 느껴졌다.




 사라져 가는 페이스북에 연민을 느끼며 내가 올렸던 게시물들을 쭉 훑어보았다. 오래 지난 시간의 길이만큼 길어진 스크롤을 따라 올라가면서 점점 어려지는 나와 만났다. 특히 여행을 자랑삼았던 어린 시절의 부끄러운 흔적들이 가득했다. 언제 어디를 갔고, 무엇을 먹었다는 모든 기록들이 기억에서는 아스라이 떠났지만 페이스북에는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디지털 일기장인 셈이었다. 공개된 일기장이라 감정을 모두 다 드러나지 않고 억누르고 있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지만 다시 만난 어린 기억 속의 나의 감정은 다시 느껴졌다. 여행의 자랑, 외로움, 기쁨, 회한, 아쉬움 그리고 두려움까지 모두 사진으로, 글로 담겨 있었다.


 페이스북에 대한 연민은 잊혀 가는 나의 청춘에 대한 아쉬움이 녹아내린 감정이었다.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살펴보던 옛 추억의 게시물들 아래에는 많은 댓글들이 달려 있었다. 이제는 끊어져버린 관계들이 남은 흔적이었다. 심지어는 얼굴도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는 사람이지만 함께 웃고 떠드는 모습도 있었다. 기억 속에서 잊혀 가는 사람들에 대한 추억만큼 그들의 기억 속 나의 모습도 옅어졌을 것이다. 


 대화를 나누던 수많은 사람들 중 아직까지 꾸준하게 연락을 주고받는 이들은 오히려 손에 꼽을 정도로 좁아졌다. 대학교 동기, 고등학교 친구, 그리고 우연히 여행 중 알게 된 사람들. 더 이상 페이스북을 하지 않은 탓인지 아니면 SNS 자체를 거의 하지 않는 탓인지 다양한 관계 속의 사람들이 점점 희미해졌다. 옅은 종이 같은 관계라 사라지는 관계들은 연락이 닿지 않는 이유가 이해가 되었다. 짧은 기간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 만났던 사람들이나, 금방 나와버린 학원에서 알게 된 사람들은 긴 기간 혹은 깊은 관계를 맺지 않았으니 흩어져버리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보다 끈끈했다고 생각했지만 이젠 흩어져버린 과거가 되어버린 사람들은 눈에 밟혔다. 과거 짝사랑했던 선배, 매일 밤 술 마시며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들, 속 이야기까지 터놓고 지내던 좋은 친구들까지 모두 옅은 색으로 페이스북에만 남아 있었다.


 세월이 지나면 넓었던 관계는 저절로 좁아진다. 학생 때와는 다르게 삶의 빠른 시간에 적응하기도 어려우니 모든 사람을 다 챙기기는 어렵다. 어찌 보면 그 많은 사람들이 나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그렇게 넓었던 관계망이 힘들기도 했다. 쉬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불려 나갔던 술자리는 얼마나 많았는지. 사람들 없는 곳에서 한 달만 모든 연락을 끊고 살아보면 어떨까 하는 망상도 종종 했던 그 시기가 이제 좁아진 관계 속에서 미화된 것이다.


 하지만 오랜만에 바라본 페이스북 안에서 웃고 떠들던 글들을 보니 알 수 없는 그리움이 찾아왔다. 당장 오늘만의 유희만 그리워하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만은 아닐 것이다. 잊혀 버린 저 사람들과 있던 추억만 떠오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린 시절의 나의 과거에 대한 회상만은 아닐 것이다. 무엇인지 특정하지 못하는 그리움이 점차 폭발해 나는 페이스북을 닫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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