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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성 Oct 22. 2023

여행이 모험이 되는 순간

12월 30일 13시 암베르 포트 앞 포장마차

12월 30일 11시 30분 이름 모를 짜이 집


어제 잘 때까지만 해도 날이 춥지 않았는데 아침에는 너무 추워서 일어났다. 그런데 또 밖에 나오니까 덥다. 이게 뭔가 싶다. 햇빛이 비치면 더운데, 건물은 아직 열이 전달 안 돼서 추운가 보다. 일교차가 심한 날씨다. 8시에 눈을 뜨고 그냥 내려가서 조식 어떻게 되는지 물어봤다. 3층으로 가면 있다고 하길래 대충 옷만 입고 먹으러 갔다. 나름 호텔이라 뷔페 형식이었다. 티와 커피가 4종류 있었고, 계란 프라이, 스크램블 에그, 토스트, 마살라 볶음밥 정도가 준비되어 있었다. 



조촐하지만 알차게 밥 먹고 짐 챙겨서 나왔다. 체크 아웃하고 짐은 호텔에 맡기고 먼저 우버를 타고 버스정류장으로 가서 표를 샀다. 조금 비싸더라도 편안한 우등 버스로 구매했다. 그리고 옆에 환전소에서 환전까지 마쳤다. 처음 간 환전소는 1달러에 67루피라 비싸서 다른 데로 갔더니 70.5로 쳐주는 곳이 있어서 200 달러를 환전했다. 건물 안은 마치 예전 동대문 같은 분위기가 들었다. 약간 낡았지만 있을 건 다 있는 그런 기분. 커피 카트로 커피 파는 아줌마가 동대문에 있었다면 여기는 짜이를 팔길래 한 잔 사 마셨다. 여기 짜이는 단 맛이 더 많이 났다. 드디어 자이푸르의 하이라이트인 암베르 포트로 떠날 시간이 되었다.


13시 14분 암베르 포트 앞 포장마차


어깨가 너무 아프다. 하도 긴장하고 걸어 다녀서 그런지 아니면 가방이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어 그런지 모르겠다. 암베르 포트까지 우버 불러서 갔다. 가는 길은 평범했는데 암베르 포트 앞 언덕을 하나 딱 넘으니 사막 한가운데 있는 멋진 요새가 나타났다. 건기임에도 큰 호수에는 물이 가득 차 있어 하늘을 담고 있었다. 내리자마자 수많은 비둘기가 반겨주는 것 빼고는 완벽해 보였다. 우선 점심이라도 먹어야 하는 시간이라 주변에 노점으로 갔다. 마치 우리나라 관광지 앞에 물과 간식을 파는 간이식당이 있는 것처럼 암베르 포트 앞쪽 길을 따라 길거리 식당이 널려 있었다. 안전하게 과자나 하나 사 먹을까 하다가 사모사가 너무 맛있어 보여서 사모사를 하나 샀다. 사모사와 고추 튀김 같아 보이는 것, 찍어 먹는 커리 이렇게 주문해서 하나씩 먹었는데 오늘 먹은 커리는 인도에서 먹은 커리 중 가장 매웠다. 거의 불닭볶음면 수준으로 매웠다. 고추튀김은 우리나라 고추튀김과 속도, 맛도 비슷했다. 아니 똑같았다. 신기했다. 사모사는 겉은 야끼만두처럼 생겼는데 안에 커리로 버무린 속이 만두처럼 들어가 있었다. 맛있었다. 



먹고 드디어 포트 안으로 들어가는데 안으로 들어가는 긴 길에는 장사꾼들이 가득했다. 궁전 안에 수많은 인파를 뚫고 표를 샀는데 관광객은 500루피였다. 하지만 학생 할인을 받으니 100루피였다. 다행이다. 미리 국제학생증을 만들어두니까 여기저기 쓰인다. 유럽 여행 전에 만들었는데 덕분에 한 여태까지 20만 원은 아끼지 않았나 싶다.


암베르 포트는 11세기 무렵 인도가 통일되지 않았을 때, 자이푸르 부근을 지배하던 왕에 의해 지어진 요새 겸 왕궁이다. 높은 언덕에 있어서 그런지 멀리서 언뜻 보면 노란 모래 언덕으로 보이기도 한다. 미세 먼지 가득한 날씨에 보면 더욱 신기루처럼 하늘에 떠 있는 모래사막처럼 보인다. 암베르 포트는 입구 앞에서부터 아름답다. 그런데 아름답고 멋있는데 엄청 충격적인 기분은 아니었다. 원래 잘 알던 타지마할을 직접 보는 충격이나 수많은 인파의 갠지스강을 미리 봐서 그런가, 그냥 볼만하다 와 멋있다 이 정도였다. 하지만 암베르 포트 벽 너머로 보이는 마을이 오히려 잔잔하게 마음속에 다가왔다. 사막 한가운데 세워진 잃어버린 도시 같아 보였다. 주변 계곡에 나무가 드문드문 서 있고, 미세먼지가 안개처럼 둘러싸고, 사막의 모래를 닮은 노란 벽이 마치 게임 속 한 장면을 보는 기분이었다. 아니면 요르단처럼 중동의 도시처럼 보였다. 미세먼지가 없었다면 어떨까.



성 안으로 한 번 들어가 봤다. 미로처럼 어디가 어딘지 모르게 설계되어 있었다. 안으로 통하는 계단에는 불이 없으니 더 신비로웠다. 이슬람식 건축 양식으로 지어져 알함브라 궁전이랑 비슷하다고 한다. 알함브라 궁전을 가보지는 못해서 뭔가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한참 여기저기 쏘다니다 보니 반대편에 서 있는 높은 성벽도 궁금했다. 그리 멀지 않아 보여서 한 번 가볼까 해봤는데, 차로 30분이나 걸리는 거리였다. 왜 항상 생각보다 가까워 보이면 생각보다 멀까. 우리가 우버에서 내렸던 곳 뒤에도 성벽이 있길래 여기는 걸어갈 만해 보였다.


성 안의 건물들은 역시 모두 사암으로 만들어져 노란색이었는데 미세먼지를 뚫은 햇빛이 벽을 때리자 황금색으로 물들었다. 예전에 먼지가 없던 시절에는 멀리서 보면 확실히 황금빛으로 빛나는 요새가 아니었을까 싶다. 암베르 포트는 왕이 휴가차 오는 곳이라 그런지 성이 투박해 보이기도 했다. 생각보다는 화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벽에 그려진 그림들은 신기했다. 가장 중심에 유리 장식이 화려하게 되어 있는 벽은 보기만 해도 빠져 든다. 사진 찍으며 여기저기 쏘다니다 보니 정원도 들리고, 목욕탕도 들리고, 목욕탕 물도 한 번 재보고 (4천 리터다) 성 밖으로 나왔다.



버스를 미리 예약해 두어서 내가 가고 싶었던 마을과 친구가 가고 싶어 했던 식당 뒤 높은 산의 성벽 중 성벽으로 갔다. 가는 길에 보니 아까 우리가 간단히 간식 먹은 식당에서 라면을 먹는 사람들이 많았다. 인도 카레라면 예전에 한국에서 우연히 한 번 먹었는데 맛있었는데, 다시 먹어볼까 생각이 들었다.


내려가서는 라면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커리 라면이 너무 먹고 싶었다. 그냥 컵라면에 물 부어서 주는 줄 알았는데 고수와 채소까지 넣어줬다. 맛은 있었는데 MSG만 가득한 맛을 기대했지만 생각보다 건강한 맛도 느껴졌다. 야채가 싫다는 뜻. 라면에는 채소 없는 게 좋다.


 16시 14분 케밥집

라면을 다 먹고 바로 뒤에 있는 성벽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성벽을 오르는데 거의 길이 아니었다. 겨우 찾아 올라가는데 계단이 엄청 높다. 아니 너무 높다. 한국에서 오르던 평범한 산과 차원이 달랐다. 입구부터 관악산 정상 가는 길의 기분이었다. 산이 아니라 성벽을 오르는 거라 계단이 되어 있지만 계단 하나의 높이가 50cm는 족히 넘어 보였다. 이 한 겨울에 땀을 비 오듯이 흘리며 20분 정도 올라갔다. 굽이굽이 가는 길이 아니라 성벽까지 직선으로 한 번에 가야 했다. 힘이 너무 들어서 훈련받는 기분이 들었다. 생각나는 군가 부르며 겨우 올라가니 세상에 이런 보상이 있을 줄은 몰랐다.



오를만한 가치가 있었다. 암베르 포트를 오는 사람들은 그 성이 아니라 사실 이곳을 와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순간적으로 우와 하는 함성이 펼쳐졌다. 황금색 암베르 포트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아까 가보고 싶었던 마을의 모습 역시 미니어처처럼 펼쳐진다. 바위산 사이사이에 드문 드문 서 있는 나무까지. 꿈에서 볼 만한 풍경이다. 성벽 반대편에도 아메르라는 도시가 있는데, 여기는 1~2층의 낮은 건물들만 서 있으니 여기야 말로 정말 숨겨진 중동의 마을 같다. 너무 멋있어서 마지막 가장 높은 종탑에 잠시 앉아서 멍 때리며 구경했다. 땀을 식혀주는 바람이 슬며시 부니 기분이 너무 좋다. 이런 여행 오랜만이다. 


그동안 여행은 약간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 기분이었다. 유명한 곳, 유명한 것, 잘 알려진 음식만 찾아다녔다. 인도 여행뿐만이 아니다. 유럽이나 일본을 갈 때도 뭔가 인터넷에서 추천받은 곳을 가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곳을 가면 재밌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지만 이런 가슴이 터질 듯한 순간은 많이 없었다.


유럽 여행에서 가장 손꼽히게 가슴 벅차게 행복했던 순간을 하나 뽑아 보라면 아무래도 체코의 친구를 따라 여행했을 때였다. 체코의 동화 같은 도시인 체스키 크룸로프에서 버스로 3~40분 정도 더 걸리는 곳에 사는 친구의 집을 가게 되었다. 모든 가족들이 환영해 주고 현지인들과 하루를 보내는 귀한 경험이었다. 원체 낯을 많이 가려 이런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운이 좋았다. 다른 여행자들의 책이나 유튜브를 보면 항상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나에게는 당연히 그런 기회가 없을 거라 생각했던 찰나 이런 일이 벌어져 놀랍고 즐거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족 중 한 명이 동네 숨겨진 명소를 구경시켜 주겠다고 나를 데리고 여기저기 다녀 주었다. 오래전 중세 시대에 버려져 이제는 그 누구도 찾지 않는 외로운 성, 성에서 탈출하기 위해 연결해 둔 작은 동굴, 그리고 숲을 헤치고 나가면 겨우 만날 수 있는 강까지. 그 어느 순간에도 예상하지 못한 풍경과 순간을 만나니 여행이 아닌 탐험을 하는 기분이었다.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것이었다. 탐험이다. 이미 전 세계 모든 곳에서 인터넷이 터지고 비밀이 없는 세상에 탐험은 우주 말고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인터넷으로 만나지 않은 새로운 정보를 여행을 통해 발견하는 것이 현대 시대의 탐험이 아닐까 싶다. 여행으로 이렇게 뭔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받는 멋진 경험, 바로 탐험의 보상이다. 이런 순간의 발견이 주는 즐거움이 중독적이다.


산 위에 부는 바람으로 잠시 쉬고 있는데 성벽 반대편에서 한 인도인 아저씨가 다가왔다. 집에 있는 부인이랑 영상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이곳이 너무 예쁘다고 자랑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와서 같이 인사시켜주었다. 모르는 사람인데 첫 만남에 사모님 얼굴도 보고 참 넉살 좋다 인도 사람들은. 이것도 기념이니 같이 사진도 찍고 이야기를 나눴다. 다른 주에 있는 고향을 떠나 자이푸르에서 일하는데 쉬는 날이라 놀러 왔다고 한다. 인도 대륙이 워낙 넓으니 주말에 시간 내서 고향 돌아가는 한국이랑은 조금 달랐다. 



아저씨는 곧 내려갔고 우린 다시 풍경 감상하며 놀고 있었다. 그랬는데 갑자기 연 하나가 눈앞을 지나갔다. 보니까 동네 꼬마애들이 연 날리면서 올라왔다. 체력도 좋다 생각했다. 이 높은 곳 올라오는데 숨도 안 차고 편하게 왔다. 애들이 자꾸 말 걸길래 대충 상대해 주고 이번에는 성벽을 따라 걸으며 다른 종탑에도 가봤다. 이번에 간 곳은 자이푸르 대학생들이 단체로 놀러 왔었다. 눈 마주치자마자 인사하더니 자기들이 먹던 과자를 건네주었다. 남자 애들과 여자 애들이 단체로 있는 거 보니 같은 과거나 동아리가 아닐까 싶다. 이 친구들도 같이 기념사진 찍자고 해서 또 사진 찍었다. 참 여행하면서 이렇게 다양하게 많은 사람들과 사진 찍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한국은 물론이고 동아시아권, 유럽을 여행해도 항상 혼자 혹은 같이 간 친구들이랑만 사진을 찍었지 이렇게 현지인들과 사진 찍기는 처음이다. 사진을 인스타 DM으로 받고 친구 추가를 하니 스토리에도 우리랑 찍은 사진을 올렸다. 과연 우리 사진 밑에 쓰인 글은 무슨 뜻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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