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여행기 -31
숙소를 잘 잡아둔 것 같습니다.
새로 옮긴 게스트하우스는 겨울궁전에서도 5분 거리고,
지하철도 바로 앞에 있는 No pain No rain 게스트 하우스였습니다.
2층 침대와 3층 침대가 가득했고 각 침대마다 커튼을 칠 수 있어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도 있었습니다.
오랫만에 앉아서 일기를 쓰고 있는데 게스트하우스 스텝과 이야기 하던 아저씨가 다가와 말을 겁니다.
"안녕, 어디서 왔어? 놀러온거야? 아니면 공부하러 온거야?"
속사포같이 말을 꺼내니 뭐라 답해야 할지 머리가 새하얘집니다.
원체 새로운 사람과 말 하는것을 잘 못하기도 하고,
그 대답을 영어로 해야하니 머리에서 정리가 되지 않습니다.
Um...Um... 만 반복해서 입으로 나옵니다.
이 잠깐의 시간이 얼어 붙은 것 같습니다.
이 때 아저씨는 다시 한 번 말을 꺼냅니다.
"천천히 얘기해도돼. 긴장하지마. 나는 이곳 대학교에서 강의하는 사람이야. 모스크바에서 사는데 직장 때문에 이 쪽으로 이동했지. 집 구하는 것보다 여기서 사는 것이 더 싸서 지금 이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물고 있어."
아저씨의 이야기를 먼저 듣고 나니 말을 꺼낼 용기가 생겼습니다.
드디어 제 입에서 영어가 흘러나왔습니다.
한국인이며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여행하러 왔다고 이야기 하니 두 눈을 크게 뜨고 흥미롭게 들어줍니다.
친구가 한국에서 공부하는 중이라고 합니다.
러시아와 달리 서울에는 산이 많은 것이 흥미롭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며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해 보라고 저를 북돋아 주었습니다.
5분여간 대화를 마치고 저는 겨울궁전을 가 보겠다고 말하고 자리를 피했습니다.
단 5분에 불과했지만 여행하며 이렇게 오랫동안 사람과 대화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여행의 흥미로운 점은 이런 것도 있습니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사람들끼리 모여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면 마치 책을 읽은 것처럼 새로운 경험을 알게 됩니다.
제가 살아온 나라가 세상의 전부가 아니듯이 저 아저씨가 살아온 나라도 세상의 전부는 아니었지요.
제가 해준 말 덕분에 저 아저씨는 한국에 대해 알게 되었고,
저도 아저씨 덕분에 러시아인이 한국에서 느끼는 감정을 알게 되었습니다.
낯선 사람과의 이야기가 생각보다 재밌기는 하지만 아직 오랫동안 이야기 하기는 지칩니다.
사회성이 게임처럼 경험치가 있다고 하면 오늘 처음으로 1 포인트가 쌓인 기분입니다.
이제 이 포인트를 조금씩 쌓아가는 목표가 생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