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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경찰서 방문기

러시아 여행기 -37

by 박희성

사라진 카드에서 인출된 돈은 174만원.

카드를 정지시켰으나 돈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우선 게스트 하우스의 스텝에게 가까운 경찰서의 위치를 물어보았습니다.

스텝은 인쇄까지 해 주며 경찰서의 위치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다행히 가까운 위치에 경찰서가 있었습니다.

지도를 보며 5분만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굳게 닫혀있습니다.

벨을 눌러도 응답없는 메아리만 돌아옵니다.

앉아서 허탈하게 하늘만 바라보았습니다.

푸른 하늘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얄미울까요.

긍정적으로 여행하기로 어제 결심했는데,

오늘 이런 큰 일을 겪으니 하늘도 무심하십니다.


하는 수 없이 휴대폰으로 주변의 경찰서를 찾아보았습니다.

걸어서 20분 정도의 거리에 또 다른 경찰서가 있습니다.

푸른 하늘 아래에서 멍하니 걷다보니 데이빗 보위의 노래가 생각났습니다.

"Planet earth is blue, and there`s nothing I can do..."

하늘은 이토록 파란데 제가 할 수 있는것은 없었습니다.

우울한 기분은 땅을 파고 들어갑니다.

걷다보니 성 이삭 성당이 나옵니다.

평소와 같은 기분이면 새로운 성당 탐험을 하기 위해 들어가겠지만, 그냥 지나칩니다.

무엇도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또 다른 경찰서 앞에 도착했습니다.

벨을 누르니 이번에는 철컥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우둔한 철제 문이 금속 갈리는 소리를 내며 열립니다.

안으로 들어가서 휴대폰 번역기로 번역한 제 상황을 보여주었습니다.

잠시 기다리라는 손짓을 합니다.

10분 정도 앉아있으니 덩치 큰 경찰 한 명이 저에게 따라 오라고 합니다.

효도르를 닮은 경찰을 따라 걸어들어가니 2층 맨 끝에 사무실이 하나 나옵니다.

안으로 들어가니 매캐한 담배냄새가 납니다.

4평 정도 되는 좁은 사무실에 덩치 큰 러시아인 세 명과 왜소한 아시아인 한 명이 들어가니 긴장되어 숨도 잘 쉬어지지 않습니다.

경찰은 무슨일이냐 물었고, 저는 다시 번역한 제 상황을 보여주었습니다.

셋은 제 휴대폰을 가만히 보더니 또다시 잠시만 기다리라고 합니다.

두려움이 스멀스멀 느껴져서 어깨가 떨리지만 긴장하지 않은 척 당당히 어깨를 폈습니다.

또다시 덩치 큰 경찰 한 명이 들어옵니다.

이 경찰서에서 유일하게 영어를 할 수 있는 경찰이랍니다.

러시아어로 설명하는 것 보다는 영어로 설명하는 것이 더욱 쉽지요.


"지난 오전 9시 경에 카드를 분실하였는데, 9시 15분 10만루블이 빠져나갔다. 나는 9시 조금 전에 스타벅스에서 카드를 꺼낸 이후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경찰은 가만히 듣다가 스타벅스의 위치를 물어봅니다.

넵스키대로에 있는 스타벅스라고 대답하니 자기들끼리 러시아어로 이야기합니다.

서로 열띤 토론 끝에 영어를 할 수 있는 경찰관이 저에게 말을 꺼냅니다.


"미안하지만 우리 관할 구역이 아니라서 도와 줄수가 없어. 돈을 잃어버린 것은 안타깝지만 여기서 사건 접수를 해 줄수가 없어."


더 이상 해 줄수 없다는, 심지어 덩치도 강호동보다 거대한 네 사람 앞에서 제가 무엇을 더 할 수 있을 까요.

알겠다고 하고 밖으로 나가니 경찰이 어깨에 손을 올리고 기운내라고 해줍니다.

그래도 이 나라에서 제가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응원입니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밖으로 나오니 여전히 하늘은 푸릅니다.

어딘가 가서 위로받고 싶은 하루입니다.

혼자 여행한다는 것이 이렇게나 외로운 일이라는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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