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여행기 -40
오늘은 매우 늦잠을 잤습니다.
어제 있던 스트레스는 대부분 떨쳐냈습니다.
오늘의 해가 새로 떠올랐으니 오늘부터 새로 걸어 다녀야겠습니다.
오늘은 러시아 문학 기행을 떠나 볼 계획입니다.
러시아에서의 마지막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밖으로 나오니 비가 추적추적 내립니다.
<죄와 벌>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날씨입니다.
낮이지만 어둡고 비 내리는 하늘 아래 걷고 있습니다.
마침 오늘은 우산도 쓰지 않고 걷고 있었습니다.
마치 제가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가 된 기분입니다.
길을 걷다 운하가 나오면 아래를 내려다보며 사색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물론 니체의 초인 사상에 빠져있지는 않았습니다.
왜 라스콜리니코프는 그런 사상에 함몰되었는지 생각할 뿐입니다.
이런 생각으로 센나야 광장에 도착했습니다.
지금은 예전의 모습을 찾을 수 없고 화려한 백화점까지 들어섰습니다.
그래도 오늘의 문학 여행은 이곳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센나야 광장은 한 때는 집창촌과 빈민촌이 가득했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할렘가였습니다.
지금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죠.
<죄와 벌>에서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은 평범한 인간이 아닌 특별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결론 내고 고리대금업자인 노파와 그녀의 동생을 죽입니다.
그리고 이곳의 매춘부지만 신앙심 깊은 소냐에게 살인을 고백하고 경찰서로 자수하러 가는 길에 이 광장을 지납니다.
그리고 자신은 특별한 사람이라는 믿음과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어 센나야 광장에 꿇어앉아 흙에 입맞춤을 합니다.
결국 라스콜리니코프가 진정한 자신으로부터의 해방을 이룬 광장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센나야 광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코쿠시킨 다리가 있습니다.
<죄와 벌>에서 주인공 이름도 채 나오기 전에 나오는,
소설의 첫 문장에서 나오는 K 다리입니다. 라스콜리니코프가 드디어 모든 잡념에 대한 정리를 마치고 자신이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결정에 점찍기 직전에 걷던 그 다리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도 글을 쓰다 간간히 산책하던 다리입니다.
저도 괜히 모자를 푹 눌러쓰고 사색에 잠긴 척 다리를 건넙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3년마다 이사를 다녔는데, 그중 하나입니다.
창문에 도스토예프스키의 집이라고 쓰여 있는 것이 전부입니다.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다른 볼거리도 없지만 신기합니다.
이 곳에서 도스토예프스키가 글을 썼을 것이고,
그 집이 아직까지 남아있다니 놀랍습니다.
문학의 나라라는 칭호는 작품 한 두 개로 생기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모든 곳이 문학의 거리이자 문학의 박물관입니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골목이 비슷하게 생겨 헷갈리긴 했지만 결국 잘 찾아왔습니다.
이곳은 라스콜리니코프의 집입니다.
멀리서 집 앞으로 튀어나와있는 조각을 본 순간 속으로 헉 소리가 났습니다.
<죄와 벌>은 소설일 뿐이고, 소설 속 주인공의 집에 불과합니다.
역사 속의 라스콜리니코프는 존재하지 않고 그가 현실에서 살았던 집도 아닙니다.
하지만, 소설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졌고 허물어진 벽을 건너가는 기분입니다.
멋진 장관을 본 듯 마음속의 큰 감동이 몰려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