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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보 아저씨와 마지막 식사

러시아 여행기 -43

by 박희성

피의 궁전을 마지막으로 러시아에서의 관광을 마쳤습니다.

이후 시간들은 러시아에서의 기념품을 구매했습니다.

러시아의 상징인 마트료시카도 있었고, 유명한 초콜릿, 소련 시대의 장식품 등 보이는 것들이 너무 많아 여기저기 둘러보았습니다.

관광의 꽃은 쇼핑이니까요.

아직 여행이 한 달 정도 남아있기 때문에 자제하려 노력하지만 눈이 돌아가는 건 막을 수 없습니다.

결국 마트료시카와 몇몇 기념품을 구매했습니다.

기념품 구매를 마치고 숙소로 들어가기 전에 숙소 앞에 있는 음식점을 들어갔습니다.

식당 앞을 여러 번 지나갔지만 방문한 건 처음입니다.

한식당을 갈까 고민하다가 마지막 날인 만큼 러시아 음식으로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샤실리크와 밥을 고르고 음료로 콜라를 선택하고 있는데 옆에 앉아서 혼자 밥을 먹던 아저씨가 일어납니다.

뚱뚱하게 생겼는데 막상 일어나니 덩치가 거대합니다.

머리는 벗겨졌지만 수염이 덥수룩해 마치 격투기 선수를 연상케 합니다.

흠칫 놀랐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했습니다.

갑자기 아저씨는 저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습니다.

"왜 콜라를 마시는 거야! 음료는 맥주로 시켜!"

너무 놀랐습니다.

아저씨가 일어선 것만 해도 놀랐는데 저에게 큰 소리로 말을 거니까 간이 콩알만 해집니다.

맥주를 마시라는 아저씨의 놀라운 권유가 있었지만 술을 못하기도 하고 무서운 러시아에서 술을 마시는 건 저에겐 마치 사자 우리 안으로 들어가라는 말 같습니다.

"죄송해요. 마시고 싶지만 건강이 안 좋아 술을 마실 수 없어요."
"맥주는 러시아 전통음료야! 그래도 한번 마셔!"

너무 적극적으로 권하는 바람에 차마 마실 수 없었습니다.

차라리 조금만 덜 권유해줬더라면 맥주를 마셔보겠지만 입이 덜덜 떨리는 바람에 맥주로 바꿔달라고 말할 수도 없었습니다.

간신히 웃어넘기고 자리로 와 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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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실리크가 나오고, 드디어 저녁을 먹게 되었습니다.

맛있는 고기와 향신료 향기가 살짝 풍기는 밥을 한 입 먹는 순간 아저씨는 아쉬운 표정으로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다시 한번 놀라서 고기가 목에 걸렸습니다.

이 정도면 저는 토끼보다 심약한 존재로 느껴집니다.

놀란 티를 내지 않으려 고기를 간신히 삼키니 아저씨가 이것저것 말을 겁니다.

어디서 왔는지 러시아는 어땠는지 여러 가지 질문을 하고 재밌게 놀다 가라는 인사를 남기고 식당을 떠납니다. 여행에서 위험을 감지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소심하고 간이 콩알만 해서 이런 상황에서 몇 마디 이야기만 나누었지만 솔직히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만약 조금만 적극적이라면 아저씨와 재밌는 대화를 더 나눌 수 있지 않았을까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였지만 낯선 상황에서 소심함 때문에 날려버렸습니다.

아쉽지만 앞으로 만나는 사람들과 잘 지내보자 스스로 또 한 번 다짐합니다.

이제 러시아에서 마지막 밤이 찾아왔습니다.

내일 아침 일찍 에스토니아로 떠나야 하기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합니다.

긴장과 설렘을 동시에 들고 잠에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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