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뭘 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어요!!
캐스터 : 안녕하십니까. 낚시를 사랑해주시는 시청자 여러분. 이곳은 올 시즌 5번째 낚시가 펼쳐지고 있는 속초 청호동 방파제입니다. 18-19 시즌 4번의 혈투에서 1승밖에 챙기지 못한 낚시꾼 박씨의 절체절명의 위기입니다만, 오늘 이곳에서 또 다른 1승을 챙길 수 있을지, 많은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해설 : 네 그렇습니다. 첫 출조지였던 속초 해수욕장에서 한반도 4대 돔이라 불리는 참돔, 감성돔, 돌돔 그리고 벵에돔 중 하나인 감성돔, 속칭 감생이를 연타석으로 낚아 올린 박씨였는데요, 이후 세 번의 연속 경기에서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해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다행히 전반적으로 구름 한 점 없는 깨끗한 하늘, 그리고 거울보다 맑게 빛나는 바다가 지속돼 날씨가 도와주고 있습니다. 다만 겨울이라는 추운 날씨를 과연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그리고 오늘 18시부터 예정되어 있는 5.5m/s의 강한 바람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이 점이 주목됩니다.
캐스터 : 네. 오늘 잡으려 하는 목표가 되는 어종, 낚시 용어로 대상어종이라고 하는데요, 오늘의 대상어종은 무슨 물고기죠?
해설 : 오늘의 대상어종은 따로 없고 잡히는 대로 잡는 것이 박씨의 목표일 듯합니다. 그동안 많은 실패 원인이 있었는데요, 그중 하나가 대상어종을 감성돔으로 잡은 것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물고기에 대해 설명해드리자면, 방금 말씀드린 대로 4대 돔 중 하나로 낚시꾼의 로망입니다. 육질이 굉장히 쫄깃하고 기름기가 많아 고소해서 횟감으로 최고의 물고기입니다. 게다가 깊은 바다에 사는 다른 물고기들과 다르게 감성돔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역이나 연안 근처에 갯바위 부근에 서식하기 때문에 배를 타고 멀리 나가지 않아도 운이 좋으면 초보 낚시꾼도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박씨는 최근 세 번의 경기에서 감성돔만 노리다 실패했는데, 때문에 이번에는 아무 물고기나 잡을 수 있는 낚시를 시도할 것 같습니다.
캐스터 : 그래서 박씨가 처음 바다낚시를 나가서도 잡아 올릴 수 있었군요. 그럼 왜 세 번의 낚시에서는 실패했을까요?
해설 : 말씀드린 것처럼 운이 좋아야 합니다. 처음 감성돔을 낚은 곳은 천운으로 서식지를 발견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하지만 이후 그 장소에서 공사를 시작해 낚시를 할 수 없어졌죠. 이미 감성돔에 맛 들려버린 박씨는 여러 다른 장소를 돌아다녀도 그런 천운을 다시 만나지 못해 지난 세 번의 낚시는 실패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캐스터 : 박씨가 감성돔에 집중하는 이유는 맛 때문인가요?
해설 : 사실 박씨는 감성돔을 먹어 보지도 못했습니다. 첫 경기 출전해 잡아 올렸을 때는 회 뜨는 법을 몰랐거든요. 입맛보다는 손맛, 그거 하나 때문에 포기하지 못하고 하나의 어종에 집중하는 것 같습니다.
캐스터 : 손맛, 낚시는 손맛이라고 하는데요. 그럼 이 손맛이 무엇인지 설명해주시겠습니까?
해설 : 붕어는 찌 맛, 돔은 손맛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붕어 낚시는 잔잔한 강가에 앉아 세상에 나와 붕어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영롱하게 서 있는 막대찌를 바라보면 붕어가 입질하는 순간 찌가 스르르 올라오는 것을 보는 재미입니다. 반대로 돔 낚시는 거친 바다에 서서 방황하는 낚싯대를 진정시키며 온 신경을 낚싯대를 들고 있는 손에 집중합니다. 물고기가 무는 순간을 입질이라고 하는데, 이 입질하는 순간 살아있는 생명의 활력이 머리카락 굵기의 낚싯줄을 타고 낚싯대를 거쳐 손에 전달됩니다. 이렇게 물고기가 입질해 손으로 느낄 수 있는 기운, 이것이 바로 손맛입니다. 멸치, 고등어, 전갱이 같은 잡고기들의 입질과 다르게 감성돔의 입질은 무겁습니다. 바로 힘의 차이 때문인데요, 같은 크기의 물고기라도 감성돔은 온몸이 근육으로 된 것 마냥 힘이 넘쳐 손맛이라는 것이 잘 느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다른 감각들은 활용하며 재미를 볼 수 있습니다. 후각, 미각, 청각, 시각은 도시에서 얼마든지 느낄 수 있죠. 그렇지만 이 촉각은,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렇게 많이 느낄 수 있는 법이 없지 않습니까? 낚시의 손맛이 뜬금없을 때 예고 없이 찾아온다는 것은 휴대폰 진동과 같지만, 진동의 강도와 세기가 언제나 제각각이라는 점, 이 점이 손에 느껴지는 촉각을 집중하게 하여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감각의 아름다움을 알려줍니다.
캐스터 : 네. 설명 감사합니다. 이제 선수 입장이 있겠습니다. 오늘은 저번 경기와 똑같은 낚싯대입니다. 심지어 미끼조차 같은데요, 아직 감성돔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일까요?
해설 : 아… 채비를 봐야 알겠지만 지금까지 봤을 때는 그런 것 같습니다. 사실 방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지금이 아무리 감성돔 시즌이라고 하더라도 이 청호동 방파제 인근에서는 잡았다는 소식이 없거든요. 우선 낚싯대는, 돈 없는 초보 조사들이 쓰는 다나쓰 ISO와 유정비어 1 으로 보이는데요. 둘 다 가격대가 10만 원 이하라 가성비로 따지면 괜찮습니다. 하지만 방금 꺼낸 채비를 보니 안타깝습니다. 감성돔 낚시를 위한 채비예요.
캐스터 : 또다시 감성돔을 포기하지 못하고 똑같은 채비를 준비한 박씨입니다. 그래도 날씨가 도와주고 있지 않겠습니까?
해설 : 날이 차가워 잡어가 잡힐 확률은 낮지만, 채비만 바꾸면 잡고기라도 잡을 수 있을 텐데 안타까워요. 박씨에게 필요한 것은 감성돔이 아닙니다. 그냥 물고기예요. 잡지도 못할 바에 다른 물고기라도 잡는 게 낫죠.
캐스터 : 첫 낚시의 경험이 너무 강렬했나요, 이곳 속초에서 감성돔이 잡혔다는 소식은 한동안 없었는데 속초 근황을 확인하지 못했나 봅니다. 차라리 감성돔을 잡고 싶으면 남해안에 있는 가거도나 추자도를 가는 것이 좋을 텐데요.
해설 :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해요. 프로 낚시꾼들도 못하고, 심지어 하지 않는 짓을 이제 낚시 시작한 사람이 하고 있어요. 이제는 대상어종을 바꿔야 해요.
캐스터 : 말씀드리는 순간 모든 준비를 마치고 첫 캐스팅을 시도합니다. 저희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고기가 잡혔다는 소식이 올 때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낚싯대를 던져 두니 머릿속에 시끄러운 잡음이 사라졌다. 집에서 출발할 때부터 머릿속에서 나를 괴롭히던 망상들이다. 몇 번을 거듭해서 낚시해도 다시 만날 수 없던 감성돔이었지만, 짜릿했던 첫 키스처럼 잊을 수 없는 것 또한 감성돔이다. 오늘은 다를 것이라는 다짐을 하며 또다시 어리석은 몸부림을 한다. 하지만 야속한 물고기는 얼굴조차 보여주지 않는다. 또다시 머릿속에서 캐스터와 해설이 오늘 조황 실패 분석을 하기 위해 데스크로 들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