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와 나
낚시를 사랑하는 모든 낚시꾼들의 글을 읽어 보았다. 그들에게 낚시를 알려 주신 분은 다름 아닌 아버지였다. 삶이 녹록치 않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 아들과의 유대감을 심고 싶어서, 그냥 낚시터에서 말동무가 필요해서 등 수 많은 아버지들이 그들의 아들의 손을 잡고 낚시터로 향했고, 그 아들들은 잘 자란 낚시꾼이 되었다. 하지만 나에게 첫 낚시의 기억은 아버지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가만히 앉아서 찌만 바라보는 행위를 좀이 쑤셔 도저히 하지 못하셨다.
내 첫 낚시의 기억은 그래서 다른 낚시꾼들과 달리 친구와 함께 한 기억이다. 먼지와 함께 친구 집 안 어딘가 굴러다니던 녹슬고 삭은 낚싯대는 하염없이 심심했던 우리의 흥미를 자아냈다. 어떤 지식도 없어 찌 라는 개념도 몰라 바늘과 추( 그나마 바늘에 뭔가 무거운 것이 달려 있어야 가라앉는 과학 상식 덕분에) 그리고 실만 매달은 채 가까운 강가로 떠났다. 깜깜한 수풀에 앉아 던져둔 낚시대에 어떤 물고기가 덤벼들지 기대감에 잔뜩 부푼 가슴 덕분에 달이 떨어지는 지도 몰랐다. 하지만 던져 둔 낚싯대는 한 시간이 지나도 두 시간이 지나도 소식이 오지 않았다. 문제점을 알면 고쳐 보기라도 할 텐데 무엇이 문제인지 알지도 못하는 수준의 낮은 지식 때문에 기대는 후회가 되어버렸다. 어두운 밤 하늘 마냥 깊어진 기대감은 바람이 빠진 풍선이 되어 버렸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가망 없던 우리의 첫 낚시는 썩은 수초만 건지고 끝이 나버렸다.
이쯤이면 포기할 만도 한데 하염없이 컸던 기대감 때문에 우리는 포기하지 못하고 다음 날 같은 시간 같은 장소를 찾아 갔다. 대신 인터넷이라는 우리 시대의 사부님 덕에 최소한의 지식을 가진 채 비장한 마음으로 낚싯대를 펼쳤다. 어제와는 다르게 좀 더 발전된 채비로 던진 낚싯대에 또다시 기대감을 걸어 던져두었다. 시간이 지나고 달은 어제처럼 산속으로 멀리 사라졌다. 하늘의 빛을 담고 있던 따듯한 땅이 모든 힘을 다 소진하고 차가운 냉기만을 뿜어내고 있었다. 오늘은 또다시 무엇이 문제인지 감을 잡지 못하고 핑계만 서로 미루고 있던 찰나에 난생 처음으로 찌올림이라는 환상적인 장면을 보고 말았다. 영롱한 형광색의 야광찌가 움찔거리고 서서히 올라왔다. 거울만큼 잔잔해 별빛만 찬란히 반사하던 수면에 짙은 파동이 들려와 이 강에 움직이는 생명이 살아있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찌가 슬쩍 올라올까 눈치를 보고 있었고 아무런 지식 없던 우리는 먹이를 물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낚싯대를 들어 올렸다. 타이밍을 놓쳐 바늘에는 지렁이도 사라진 채 이슬처럼 물방울만 맺혀 올라왔다. 또다시 어떤 물고기도 만나보지 못하고 패잔평처럼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틀이 지나고, 우리는 다시 낚싯대를 들고 강으로 향했다. 어제보다는 오늘이 나을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감이 또다시 낚싯대를 들게 하였다.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분명 우리는 지난 낚시에서 어떠한 결과물도 얻지 못했다. 하지만 이 기대라는 추상적인 녀석 때문에 이렇게 움직이게 되었다. 따지고 보면 내 인생이 점차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이유도 이 기대 때문이 아닐까. 낚시도, 글도, 그리고 내 삶도 내일은 나아지겠지 라는 생각이 나를 끌고 가며 하루 하루를 버티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