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싯바늘을 매단 큐피드의 화살

by 박희성

미늘 없는 사랑


푸른 어둠이 짙게 깔린 밤은 제아무리 여름이라도 찬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수 시간 꼼짝 못 하고 앉아있는 탓에 관절이 굳어 무릎과 팔이 시리다. 달빛조차 숨은 밤이라 강변에는 움직이지 않는 야광찌만 은은한 형광 색으로 서 있다. 간간히 울리는 여치인지 귀뚜라미인지 구분되지 않는 곤충의 울음소리만으로 시간이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굳은 듯한 시간과 찌뿌둥한 몸을 풀기 위해 일어서 기지개를 켜본다. 팔과 허리를 온 힘을 다해 당기면 가슴 깊숙하게 찬 공기가 들어온다. 순간적으로 몸을 이완하면 따듯한 공기로 바뀌어 희미한 별빛 사이로 빠르게 퍼져 사라진다.

가만히 미동도 없던 찌가 야릇하게 움찔거린다. 별빛과 야광찌만 빛나던 강물에 파동이 슬쩍 퍼진다. 한 번의 작은 파동이지만 가슴 깊숙한 곳부터 설렘이 올라온다. 하지만 곧 숨이 멎을 듯한 찰나의 시간은 물고기를 기다리는 낚시꾼에게 영겁처럼 느껴진다. 낚싯대를 건드리지 않고 손을 최대한 낚싯대에 가까이 두고 저 작은 진동이 멈추길 기다린다. 찌가 살랑거리는 움직임을 멈추고 잠시 후, 일직선으로 형광 빛이 하늘로 솟구친다. 동시에 낚싯대를 움켜쥐고 하늘 높이 치켜세운다.

400g이 되지 않는 가벼운 낚싯대로 생명의 활력이 오롯이 전달된다. 별빛만이 가득하던 고요한 강가에서 요란스럽게 사방으로 힘을 주던 붕어가 드디어 힘을 다해 물 밖으로 끌려 나왔다. 활력이 강한 붕어는 바늘을 빼려 하면 요란하게 몸부림치는데 이 붕어는 물속과 달리 밖으로 나오니 가만히 있는다. 자세히 보니 입술에 걸려있어야 하는 목 깊은데 걸려있다. 빨리 빼서 놔주어야 다시 살아갈 텐데. 낚시 바늘에는 미늘이라는 것이 달려 있어 들어가기는 쉬워도 빠져나오기는 어렵다. 이 미늘이라는 것은 둥근 낚시 바늘의 끝에 거꾸로 튀어나온 작은 바늘이다. 큰 바늘 반대로 튀어나온 탓에 깊이 찔려 미늘까지 살을 파고들면 미늘로 인해 낚시 바늘이 살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한다. 이 미늘 때문에 물고기를 잡고 놔주더라도 물고기에 평생 상처가 남는다.

사랑에 빠지게 하는 큐피드의 화살도 사실 낚시 바늘 두 개로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낚시 바늘 두 개를 겹쳐 놓은 듯한 하트 모양의 미끼를 물어 사랑에 빠지고, 한번 빠지면 미늘 때문에 혼자 힘으로 헤어 나올 수 없다는 것 까지 얄궂은 큐피드의 화살은 낚시 바늘과 묘하게 닮았다. 나에게 이 화살이 날아와 박혔을 때는 이런 모양이라는 것을 몰랐다. 나에게 꽂혀 있는 이 바늘을 억지로 빼기 위해 그녀를 마음속으로 욕 하기도 하고 밤에 찾아오는 연락을 억지로 무시하기도 해 보았지만 미늘처럼 가슴에 톱니처럼 박힌 추억이 빠져나오길 거부한다. 함께 본 영화를 다시 보면 바늘이 또다시 움찔거리고, 그녀가 뿌리던 향수 냄새가 풍겨오면 가슴 한편이 아리다. 나를 위해서 그리고 그녀를 위해서 이 바늘 같은 추억들을 모두 뿌리째 뽑아내야 하지만, 빼고 난 이후의 상처가 두려워 용기를 내지 못한다. 아프다. 생각나는 모든 순간이 아프다. 뽑히지 않는 미늘 있는 사랑이 아닌 차라리 미늘 없는 사랑을 하고 싶다. 추억이 남긴 상처가 바늘구멍만 해 금방 메워질 수 있어 바늘이 빠져도 아픈 상처 없는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

희미한 LED 불 아래에서 용케 붕어가 깊이 삼킨 바늘을 빼냈다. 미늘에는 붕어의 피가 묻어 있다. 미안하다 붕어야. 나의 순간의 쾌락을 위해 너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말았구나. 함께 상처 받은 입장에서 안일하게 나만 생각하는 난 이기적인 사람이었구나.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살아갈 수 있었는데 왜 나는 한순간의 이기심으로 또다시 실수를 반복했을까. 너를 놓아주더라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차라리 바늘에 미늘이라도 없었으면, 이렇게 상처 받지 않았을 텐데. 붕어는 물거품을 일으키며 강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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