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좀 쫓아다녀

by 김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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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낮부터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대뜸 우울하니 만나자는 말을 하기에 그날 저녁에 당장 보기로 했다. 저녁이 되고 만나기로 한 식당에 먼저 도착한 친구의 얼굴을 살폈다. 역시나 불안하고 고민이 많아 보였다. 무슨 일이길래 그래…? 물어보니 친구는 회사 동료를 짝사랑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 상대방 남자는 이미 여자친구가 있다고. 그 말을 들으니 나는 말문이 막혔다. 어이없어서 또는 이런 고민이나 하는 친구가 한심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면 안 되는 상대를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나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실은 나도 짝사랑 전문가다.


“그래, 어떤 노력을 했니?”


친구는 어떻게든 마음을 접어야 한다는 생각에 평소 자신의 이상형과 가까운 남자 아이돌을 골라 그를 좋아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의 팬이 되기로. 그래서 매일 밤 그 아이돌의 노래를 듣고, 사진을 찾아보고, SNS를 살폈다.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도 매번 들어가 댓글을 남기며 소통도 했다. 뭐, 어느 정도는 성과를 거두었다고도 한다. 그 남자 아이돌의 어느 솔로곡이 마음에 들어 매일 밤 듣게 되었다. 그런데 그 사랑 노래를 듣고 있자니 짝사랑하는 상대가 계속 떠올라 밤마다 울며 잠드는 게 습관이 되고 말았다. 친구는 아이돌을 좋아하는 일을 그만두고 더 현실적인 방법을 찾기로 했다.


친구는 지인들에게 연락해 소개팅을 부탁했다. 마침 여러 군데에서 소개팅 자리가 들어왔다. 어느 주말엔 점심과 저녁 두 탕씩 사람을 만난 적도 있고, 평일 중 3일 저녁을 모두 소개팅으로 시간을 보낸 적도 있었다. 물론 그들 중 두 명이 친구에게 애프터 신청을 했지만, 애석하게도 두 사람 모두 친구의 마음엔 들지 않았다. 한 명은 떼어내느라 애 좀 먹었다고 한다.


“웃긴 건 뭔지 알아? 나도 모르게 소개팅 자리에서 짝사랑하는 회사 동료의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고. ‘이 사람이 나의 이런 면을 좋아할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00님이라면 어떨 것 같아요?’라고 고민 상담을…. 나도 미쳤지.”


소개팅 자체에 설렘도 없고 무엇보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체력만 허비하는 일이었다. 친구는 자신이 점차 이기적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짝사랑하는 상대를 잊기 위해 만만한 다른 회사 사람 한 명을 좋아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를 이용하기로. 그래서 일부러 회사 안에서 그 남자와 붙어 다녔다. 물론 평소 그럭저럭 친한 사이라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점심도 그 남자와 먹고, 퇴근 후에도 그 남자와 시간을 보내고 영화도 봤다. 일부러 자기 전까지 카톡도 하고 전화도 했다. 그런데 이 남자가 좋아지기는커녕 짝사랑하는 상대와 자꾸 비교되는 것이 문제였다. 회사 같은 공간에서 짝사랑하는 상대와 그 남자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종종 보게 되었다. 그러나 그동안 자신과 시간을 보낸 남자는 외모만 봐도 한심해 보이고, 그의 성품이나 내면도 계속 흠만 찾게 된다고. 그 둘이 붙어 다닐수록 자신이 좋아하는 회사 동료에게서만 빛이 나는 것이었다. 다른 방법을 찾아도 어찌 된 일인지 자꾸 사랑하는 사람만 눈에 들어왔다.


“잠깐, 근데 네가 좋아하는 그 사람은 뭐가 그렇게 잘났어?”

“모든 면에서 완벽하지. 그런데 그거 알지? 이 생각 모두 나의 착각이 분명하다는 거. 내가 짝사랑을 한두 번 해보나? 막상 만나고 나면 후회할 것도 알아. 여느 남자들이랑 똑같을 것도 다 알아. 그런데 마음이 접히지 않으니까 괴로운 거지. 난 그 사람 안 좋아하고 싶어. 싫어하고 싶어. 근데 그거 어떻게 하는 거야?”

“그걸 나한테 묻는 거야?”


잠시 어이가 없을 뻔했다. 할 말을 잃은 친구는 불판 위의 고기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열심히 고기를 구우며 친구를 위해 나름대로 방도를 생각해냈다. 그리고 다 구워진 고기를 친구의 접시 위에 올려주며 말했다.


“힘들겠지만, 그 사람에게 엄청난 수치심을 느껴야 네가 그 사람을 안 좋아하게 될 것 같은데…. 마음이 접히는 데 수치심만 한 게 없지. 일단 작게라도 시작해보자. 그 사람에게 고백하는 건 어떨까? 여자친구 버리고 너한테 오라고.”

“…꼭 그렇게 수치스럽고 아파야 그 사람을 잊을 수 있는 거야?”


이번엔 내가 입을 다물었다. 한동안 말없이 고기만 굽는데, 갑자기 친구의 입가에 배시시 미소가 떠올랐다. 왜 웃냐고 물으니 친구는 그래도 짝사랑하는 상대가 있어 행복하다고 넌지시 말했다. 그 사람이 떠오를 때마다 아파서 울기도 하지만 일하던 도중 그 사람과 잠깐 눈이 마주치는 순간이 그렇게나 행복하다고. 그때 느끼는 행복감으로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견디고 하루를 버틸 수 있다고.


“그 사람은 네가 좋아서 쳐다보는 게 아니고, 네가 하도 쳐다보니까 눈이 마주치는 거야.”

“당연히 알지. 나도 짝사랑 짬밥이 있어! 맞아, 처음엔 나도 그 사람 내면 깊은 곳엔 조금이나마 나를 향한 관심이 있지 않을까 착각하기도 했지. 그리고 이젠 현실을 알아. 부끄러운 일이야. 근데 사랑하는 마음은 부끄러움을 이기더라. 이미 그 사람, 눈치챘을지도 몰라. 이미 나를 얕보고 있을지도 몰라. 그런데 아무리 한심해 보이더라도 그렇게나마 그 사람과 눈을 맞추고 싶어.”


어쩌다 둘만 있는 장소에서 그가 친구에게 아침 인사를 건넬 때도 있었다. 때론 커피를 사주기도 했다. 그런 날이면 친구는 그 순간의 행복으로 몇 날 며칠 동안 웃으며 지낼 수 있었다. 밤마다 커피를 건네주던 회사 동료의 손을 떠올리며 좋은 꿈을 꿨다. 지금 내 앞에서 그런 것처럼 친구의 얼굴엔 사랑스러운 미소가 가득했다.


“그렇다고 지금 내 하루가 엉망인 건 아니야. 나 일도 열심히 하고 있고, 이번에 마친 프로젝트도 칭찬 많이 받았어. 음, 그랬더니 그 사람이 나한테 와서 수고했다고 하더라.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어.”


흥, 난 콧방귀를 뀌었다. 그렇지만 나도 모르게 이유를 알 수 없는 미소가 입가에 번져 오르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귀엽구만. 그러는 사이 친구는 내게서 집게를 빼앗아 들고 이번엔 자기가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친구의 말이 갑작스레 가슴에 사무쳤다.


“짝사랑 경력만 20여 년이네. 그만큼 쫓아왔으면 이젠 떨어질 때도 되지 않았나. 그만 좀 나가떨어져라, 짝사랑. 나잇값하고 먹고 살기 힘든 세상에 내가 여태껏 너에게 마음을 쏟아야 할까….”


친구하고는 10살 때부터 알고 지냈다. 초등학교 반이 바뀔 때마다 친구는 짝사랑하는 남학생도 수십 번씩 바뀌곤 했다. 그런데 친구도 그러려고 그러는 건 아니었다. 금사빠가 잘못이긴 하지만, 친구의 마음은 늘 진심이었다는 걸 난 알고 있었다.


“그래도 이제 우린 어른이니까 그 사람을 잊도록 노력해 보자.”


내 말 때문이었는지 친구의 한쪽 눈에서 톡, 눈물이 떨어졌다. 다급하게 눈물을 훔치는 모양에 나도 그만 속상한 마음이 되어 몰래 스윽, 눈물을 훔쳤다.



23.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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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좀 쫓아다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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