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깃줄 곡예

by 김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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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의 계절을 보내고 있다. 어젠 흐린 하늘에 잠깐 해가 비추었지만, 오늘은 여지없이 비가 내린다. 지난주처럼 퍼붓는 모양이 아니어서 밖을 나가는 일이 생각보다 부담스럽지 않았다. 카페에 도착하면 1층보다 2층이 비교적 조용한 편이어서 난 주로 2층 창가 앞에 자리를 잡는다. 그곳에서 오늘 하루의 주어진 일을 시작한다. 간간이 창밖을 내다보며. 밖을 바라보고 있으면 1층에 테니스장이 위치한 건물이 바로 보이는데, 전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 저 멀리 내 얼굴이 조그맣게 비춰 보이기도 한다.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유독 머릿속이 복잡할 때면 창 너머 비춰 보이는 내 얼굴을 멍하니 바라본다. 그리고 그 가운데엔 기울어진 전깃줄 하나.


오늘은 빗물이 전깃줄을 타고 한 방향으로 굴러가는 모습이 보였다. 비가 세차게 내리지 않아서인지 전깃줄에 앉은 빗물은 맺힌 물방울 모양 그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전깃줄을 타고 저쪽 아래로 흘러가는 그 모습이 마치 아찔하게 곡예를 타는 것 같다. 전깃줄 곡예를 하며 한쪽으로 사라지는 물방울을 보며 깨달은 것은, 그 뒤로 무수히 많은 다른 물방울들이 먼저 사라진 그것의 뒤를 쫓아 한 방향으로 몰려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자꾸만 한 방향으로만 달려가는 물방울의 모습을 하나둘 세며 눈으로 좇아보니 사람 사는 모습과도 닮은 것 같다.

이미 앞서가고 있는 사람을 무작정 쫓아 나도 그 뒤를 따르고 있지는 않은지. 미래? 또는 저 앞길이 보이지 않아 확신할 수 없음에도 그저 먼저 간 사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의 모든 것을 쏟아내고 있지는 않은지. 뜬 눈을 내 손으로 가려버린 채 무작정 저 한길로만 가려 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에 잠겨있자니 갑자기 빗줄기가 거세어졌다. 전깃줄 아래엔 아까처럼 많은 물방울이 달리지 않았다. 몇몇 남아있는 물방울은 이전 것들보다 천천히 이동하다 똑, 떨어지고 말았다.


애써 곡예를 타는 모든 일이 잘못되진 않았을 것이다. 방향을 정해 어느 한쪽으로 가고 있다는 것만 해도 칭찬받아 마땅하지 않을까. 그러나 앞 사람이 간다고 마냥 달리고 싶진 않다. 조금만 더 천천히, 주위를 살피면서 가고 싶다. 방향을 틀어야 할 땐 과감히 틀어버리기도 하면서.



23.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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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깃줄 곡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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