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보카도, 기운 내!

by 김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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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나 다른 동물들도 좋아하지만, 나는 특히 식물도 좋아한다. 그래서 이미 반려 식물이 네 그루. 아보카도와 레몬 나무, 테이블 야자와 콤펙타를 키우고 있다. 테이블 야자와 콤펙타는 물만 주면 가만히 두어도 잘 자라는 아이들이다. 대신 아보카도와 레몬 나무는 키우기가 여간 쉽지 않다. 온도와 햇빛 그리고 습도를 많이 타는 아이들이라 조금만 신경을 못 쓰면 잎끝이 타들어 가거나 잎이 축 처져 버리고 만다.


원래부터 식물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당시 한 신문사에 소속된 월간지를 출간하는 자회사를 다니며 3년 차로 접어드는 때였다. 신문사의 갑작스러운 구조 조정으로 다니던 회사가 타 자회사와 병합되면서 조직도가 바뀌었다. 부장님과 나, 둘뿐이던 회사는 갑작스레 12명으로 인원이 늘어났다. 나름대로 적응하기 위해 정신없는 회사생활을 이어가고 있던 시기였다. 내가 속한 회사의 대표로 온 타 자회사 대표님은 대형 식물을 많이 선물 받았으니 내가 물을 좀 주고 가꿔달라고 부탁하셨다. 그땐 그냥 귀찮고 짜증스러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근데 뭐 어떡하나, 말 들어야지….


출근하면 아침마다 15분간 사무실을 돌면서 물을 주고 필요해 보이면 영양제를 꽂아 주면서 나는 여러 식물을 가꾸기 시작했다. 그런데 매일매일 빼먹지 않고 돌봐주었을 뿐이었는데 식물들은 보답이라도 하듯 무성한 잎과 꽃을 피워냈다. 몇 달이 지나자 사무실 구석마다 놓인 여인초, 뱅갈고무나무 등 대형 식물들은 잎이 너무 풍성해진 나머지 좁은 복도를 지날 때마다 손으로 잎을 들거나 헤치며 지나가야 할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어떤 대형 식물들은 직원들의 수월한 이동을 위해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팀장님 등 몇몇 남자 직원들은 나의 진두지휘 아래 ‘하나, 둘, 끙차!’ 대형 식물들을 들어 내가 원하는 자리에 모아주었다. 이상하게도 식물들은 모두 나의 소유가 되어 있었고, 대표님은 보시기에 좋았더라며 만족해하셨다. 이제 내 자리 옆으로 줄을 선 대형 식물과 다른 식물들을 나는 지극정성으로 돌봤다. 출퇴근할 때마다 식물들을 돌아보며 들어서고 문을 나서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식물 돌보는 맛을 알아버린 나는 그때부터 집에서도 작은 식물들을 키우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사무실에서 아보카도를 사서 속을 다 비우고 씨앗을 씻어 발아시켰다. 몇 차례의 시도 끝에 씨앗에선 싹이 났고, 일하다 남는 시간에 씨앗을 심고 분갈이까지 마쳤다. 그리고 작은 나무가 될 정도로 아보카도를 키워냈다. 그 아보카도는 지금 우리 집 옥상 앞문을 지키고 있다. 나의 모습을 본 대표님은 어느 날, 집에서 레몬을 먹고 발아시킨 씨앗이라며 싹이 난 레몬 씨앗을 나에게 몇 개 주셨다. 화분에 심어달라는 얘기였다. 나는 그 여러 개의 씨앗을 받아 화분에 심고 레몬도 작은 나무들로 키워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대표님과 원하는 직원들 몇 명에게 나눠준 뒤 내 몫으로 한 그루를 받았다. 자랑스러운 아보카도와 레몬 나무 두 그루는 내 책상을 지켜주었다. 시간이 지나 그 월간지 회사를 퇴사하면서 나는 수많은 식물 중 내 몫의 아보카도와 레몬 나무만 들고나왔다. 사무실의 식물들과 인사하고 오는 데 사실 시간이 좀 걸리기도 했다. 그간 정이 들어 아쉬운 마음이 컸다. 내가 없으면 이 식물들 모두 죽게 될 것이라는 걸 뻔히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통풍이 잘되는 회사에서 온도 조절이 잘 안되는 집으로 이사 온 아보카도와 레몬 나무는 한동안 시름시름 앓았다. 그러나 잎끝이 타들어 갈지언정 그들은 쑥쑥 잘 자랐다. 월간지 회사를 나온 후 이직한 두 회사 사무실로 아보카도 나무를 들고 오기도 했다. 하도 까다로운 레몬 나무는 몇 번 더 이사했다간 단명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회사 모두 나와는 인연이 아니었던지라 아보카도 나무는 또다시 까만 비닐봉지에 담겨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어쩌다 보니 5번이나 먼 거리를 왕복한 아보카도 나무는 이사로 인한 스트레스로 아직도 잎이 축 처져있다. 미안한 마음에 영양제를 두 개 꽂아 주었다. 왠지 이런저런 시간 속에 지쳐버린 나의 모습 같달까. 지금으로선 새잎을 끊임없이 내놓으며 위로만 쭉쭉 자라나고 있지만 처진 잎은 전처럼 팽팽하게 일어설 기미를 보여주지 않는다.


레몬 씨앗을 받을 때 대표님께서 말씀하시기론 레몬은 심은 후 10년이 지나야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과연 내가 이 씨앗을 심어 10년 동안 레몬 나무를 키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의심하던 기억이 난다. 찾아보니 아보카도도 마찬가지로 열매를 맺으려면 10여 년 정도를 키워야 한다고 들었다. 10년. 혹은 10년 이상이 될지도 모르겠다. 열매가 맺히는 시간이라면, 이 두 그루의 나무와 나는 그때쯤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상상해본다. 좀 더 키가 높아진 나무들은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나는 지금보다 더 좋은 모습이 되어 있기를. 늘 덤덤하게 생각하곤 하지만 그 안엔 아무도 모르는 간절함이 숨어있다. 이 두 나무도 그렇겠지. 밤이 되었다. 오늘 하루도 고이 보내며 나는 여느 때처럼 아보카도, 레몬 이 두 나무와 함께 다시 시간을 기다린다.



23.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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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보카도, 기운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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