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하지 않으면

by 김단이


우리 집 가족 구성원이라면 무조건 이 중 하나는 매일 해야 한다. 설거지, 정전기 청소포로 바닥 쓸기, 이불 깔기, 이불 개기, 고양이 화장실 청소와 발톱 깎기. 더 있긴 하지만 이것들이 가장 대표적인 기준이 된다고 할 수 있겠다. 이들 중 하나라도 하지 않으면 이 집에서 밥 얻어먹을 가치가 없는 인간이 된다. 마찬가지로 매일 우리 집에 와서 저 일 중 하나라도 해주는 사람은 엄마가 가족 구성원으로 받아줄지도 모르겠다. 평생 할머니, 두 딸과 함께 모태신앙으로 살아온 엄마는 말했다.


“설거지 하나 안 하면서 어디 가서 예수님 안다고 하지 마라.”


나름대로 신앙이 좋은 편이라 이 말을 들은 이상 도저히 설거지를 안 할 수 없었다. 어릴 땐 말 잘 듣느라 집안일을 많이 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머리가 크고 나니 내 일로도 골치 아픈 와중에 설거지 하나 하기 귀찮아질 때가 참 많았다. 한동안 설거지조차 손대지 않았다가 엄마에게 들은 이 한마디가 날 움직였다. 그 이후 종종 집안일과 설거지를 거들며 내가 이 집 구성원이 맞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는 중이다.


고양이 발톱 깎기는 그나마 귀찮지 않은 일이었다. 가족 중 로이의 발톱을 깎을 수 있는 사람은 유일하게 나뿐이다. 물론 엄마도, 동생도 할 수 있는 일이긴 하지만 로이가 싫어한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자길 안고 고양이용 손톱깎이를 드는 순간, 로이는 극도로 불안해하며 품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친다. 신기하게도 내가 발톱을 깎아줄라치면 로이는 잔뜩 늘어진 채 네 발을 모두 나에게 내맡겼다. 우리 집 서열 1위 고양이님에게 인정받은 나는 1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모든 발톱을 적당한 길이로 깎아내는 재주를 선보이곤 했다. 이 일이라도 그나마 귀찮지 않아서 다행이다. 이건 유일하게 매일 할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어쨌든 덕분에 난 엄마가 해주는 밥을 매일 얻어먹을 수 있다.


요즘은 회사 대표들 입맛에 맞춰주기에도 급급한 세상이라는데, 가장 편한 장소여야 하는 집에서 저 일들을 하냐 마냐에 따라 가족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강제 탈퇴 되는 시국이라니…. 이건 장점일까? 단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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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22.

설거지하지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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