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이 보이는 창

by 김단이


내가 사는 빌라 302호엔 다섯 개의 창문이 있다. 내 키보다 높은 곳에 달린 화장실의 작은 창과 거실과 부엌이 연결된 공간에 위치한 두 개의 창문 그리고 안방과 할머니가 계시는 방에 각각 하나씩 달려있다. 이 창문들의 공통점은 모두 여는 즉시 옆 건물 벽이 보인다는 것이다. 안방과 할머니 방의 창문은 옆 빌라와 아주 가까이 붙어 있어 베이지색 벽돌 무늬까지 다 보일 정도였다. 거실과 부엌 쪽 창 두 개는 그나마 옆 건물과 작은 길을 사이에 두고 있어서 벽이 멀어 보이기는 했다. 그러나 애매하게 먼 거리는 옆 건물 빌라 1, 2, 3층에 누가 사는지, 언제쯤 저녁을 먹고 설거지하는지 등의 장면을 언뜻언뜻 보여주었다. 아마 저 빌라에 사는 사람들도 우리 가족의 모습을 강제로 엿보고 있을지 몰랐다.


밖을 보고 싶다면 그나마 거실 쪽 식탁 뒤의 창문을 열어보는 게 나았다. 그러나 내가 주로 열어보는 창은 안방의 창문이었다. 문을 닫고 불을 모두 끈 뒤 창문을 열면 밤이어도, 벽만 있어도 창밖은 환하게 빛이 났다. 그 빛을 바라보며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양반다리 자세로 앉아 생각에 잠길 때도 있었다. 붉은 갈색 벽돌이었다면 좀 별로였을 텐데, 베이지색 벽은 때론 멍하니 바라보고 있기에도 괜찮았다. 가끔 방에 들어오는 동생은 왜 벽을 보고 있냐며 묻기도 했다. 그러나 낮이건 밤이건 베이지색의 그 벽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안정되었다. 벽을 스케치북 삼아 그곳에 대고 생각을 그리듯 머릿속을 정리했다. 눈은 벽을 보고 있지만 전혀 다른 것을 보고 있다는 내 말을 동생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벽만 보여도 그 창밖으로 오만가지의 계절이 다 지나가곤 했다. 오랜 시간 저 벽을 바라보며 성장했다. 일도 하고 가지각색의 글을 쓰기도 하면서. 때론 누군가를 그리워할 수도 있었다. 그토록 고고해 보이던 그 사람도 저 허름한 벽만 있으면 마음껏 떠올리고 그리워할 수 있다니 나에게 있는 것으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가 되기도 했다. 창을 열면 보이는 저 벽 하나로 나는 많은 걸 가질 수 있으니 행복이란 건 그다지 멀리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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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07.

벽이 보이는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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