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봉지에 들어있는 건 은희의 손이야….”
온몸 구석구석 모든 신경을 둘러싼 공포감에 미쳐버릴 것 같았다. 은희는, 내 방에 허락도 없이 들어와 자살했다. 내가 없는 틈을 타 내가 남긴 콜라 캔을 모두 마셔버리고, 남은 콜라까지 싹 다 비워낸 채. 캔들을 망그러뜨려 찢어내고는 날카로운 캔의 표면으로 자기 동맥을 끊어버렸다. 은희의 축 늘어진 몸 옆으로 하얀 종이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모든 걸 가진 언니가 왜 내 것을 다 뺏어가려는지 모르겠어.’나는 방안에 주저앉았다. 이게 무슨 일일까. 사진들이 흩뿌려진 방안에 누가 있는 것 같다는, 은희가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그러나 전혀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저 떨리는 몸을 양 팔로 감싸고 있는 것밖에는.
띵동!
거실에서 문자가 왔다는 신호음이 울렸다. 방안에서 나갈 이유가 만들어진 것 같아 여전히 떨리는 몸으로 천천히 일어났다. 스마트폰 화면에 진이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스마트폰을 들고 문자를 열었다. 화면 속 빛이 금세 눈을 찔렀다.
‘내가 당신과 결혼한 이유가 궁금하지 않아? 당신마저도 거절해버리면 당신도 은희처럼 죽어버릴 것 같아서였어.’
이상하게도 문자를 읽으니 침착해졌다. 되풀이해 읽으면 읽을수록 떨리던 몸이 제 자리를 찾아왔다. 이 남자는 참, 나를 침착하게 만드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스마트폰 전원을 끄고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그렇다면, 그때 거절했어야지.’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오늘은 햇볕이 부엌까지 드리워지지도 않았고 거실 불을 켜지도 않아 어두컴컴하다. 내가 웃고 있다는 것을 자신도 안다는 양 밖에서 희미하게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쨍그랑, 쨍그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