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하늘이 우중충한 것이 어제보다 더 기분이 나쁘다. 그런 생각을 하며 비닐봉지를 DSLR 화면에 담고 사진을 찍었다. 어젯밤, 진은 거실에 있는 소파에서 혼자 잠을 잤다. 침대에 누운 나는 그를 부르지 않았다. 그런 내 행동이 오히려 진을 편하게 하는 것 같았다. 서운함인지 화인지 모르겠는 감정이 마음속으로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진이 은희의 이야기를 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비닐봉지 속에서 들리던 것이 은희의 웃음소리였다니. 물론,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진이 은희에 대한 생각을 접지 못했다는 것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분명, 아버지가 전화를 했기 때문에 요즘 은희를 생각하게 된 것이 아닐까 이렇게 합리화를 했다. 이제 곧 추석이니까 은희의 기일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결혼식을 올린 후 은희의 첫 기일을 제외하고는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에 내려가지 않았다. 어차피 가봤자 서로 불편해질 것이 뻔했기 때문에. 은희의 자살은 아주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진과 은희가 사귀던 시절, 진이 먼저 은희에게 헤어지자고 말했던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 후 은희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진의 잘못은 아니었다. 진만큼이나 예민하고 평소에 우울증을 앓던 은희였기 때문에. 언젠가 그 아이의 방에서 하얀 약을 본 적도 있었다. 항우울제 성분의 약이었다. 부모님은 모르시는 것 같았지만, 난 그걸 알고도 일부러 모르는 척했다. 5살 나이 차가 나는 동생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난 그 아이에게 늘 정이 가지 않았다. 내 관심은 진에게 가 있었다. 은희가 죽기 전에도 몇 번밖에 만나지 않은 진이었지만, 은희와 사귀는 그가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은희가 죽은 후, 장례식장에서, 그리고 은희의 발인 날에도 진을 한두 차례 보았을 때도. 왠지 모를 끌림과 머릿속을 가득 메운 그에 대한 생각에 나는 장례가 끝나자마자 진에게 만나자고 연락했다. 그리고 진은 그런 나를 한 번도 거절하지 않고 만나주었다. 나는 진이 좋았다. 바람이 불어오자 비닐봉지가 나풀거렸다. 이전의 일을 떠올리니 그 일들이 모두 꿈속 일처럼 느껴졌다. 나하고는 거리가 먼 현실이다. 나는 전혀 지금까지의 일들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비닐봉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밑을 내려다보니 그 청년이 나무 아래에서 서성이는 것이 보였다. 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나무 밑으로 가자 청년이 나를 보고 눈인사를 했다.
"아직도 쥐 소리가 나나요?"
"예. 너무 시끄럽네요. 이젠 쥐 같은 거 만날 일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전엔 쥐를 볼 일이 많았나 봐요?"
"어렸을 적에 부모님이랑 살던 집에 쥐가 많았어요. 이제 부모님도, 가난도, 쥐도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여기까지 따라올 줄은 몰랐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