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날씨가 흐려서 부엌에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시곗바늘은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진이 좋아하는 고등어 조림을 하기 위해서 생선을 손질했다. 냄비에 간을 맞추면서 계속 ‘난 괜찮아’ 되뇌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에 이렇게 침식될 순 없다. 내 기분은 언제든지 내가 바꿀 수 있어. 진의 기분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생각하며 내가 좋아하는 재즈 음악을 틀었다. 기분을 전환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나는 괜찮아, 나는 괜찮아, 입 속으로 되뇌었다. 만일 비닐봉지가 살아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감히 저따위가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정말 살아있는 사람이다. 살아있는 뭐든 간에 사람을 이길 순 없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짜증이 나 냄비 속을 휘젓던 국자를 싱크대에 탁, 던져놓았다. 깊은 한숨이 나왔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나마저도 미친 것 같다. 나는 계속해서 그 청년의 말을 신경 쓰고 있는 거야. 미친놈. 비닐봉지가 살아있을 리 없지. 오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에 다시 생각을 집중하기로 한다. 오늘은 진에게 안아달라고 해야지. 가수의 간드러지는 목소리에 내 콧노래가 더해졌다. 항상 진과 섹스를 할 때면 마음이 편했다. 그는 늘 나를 만족시켜주기 때문에. 그리고 그의 표정에서도 안식과 만족을 볼 수 있다는 건 내 마음을 뿌듯하게 만들었다. 진을 생각하자 아까보다 기분이 괜찮아지고 있었다.
오후 7시 반,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렸다. 소파에 앉아있던 나는 현관 앞으로 달려 나갔다.
“진! 이제 와?”
“오늘은 기분이 좋아 보이네.”
일부러 명랑하게 목소리를 꾸미고 그를 맞이했지만, 그의 심드렁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의 얼굴이 어두워 보여 나는 이내 다시 안타까워지고 만다.
“오늘은 평소보다 골치 아픈 일들이 많았어.”
안방으로 들어선 진은 겉옷을 옷걸이에 걸며 혼잣말했다. 진의 고충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사무실에서도 몇 시간씩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늘 컴퓨터 화면만 바라보고 있을 그의 모습이 머릿속에 선명히 그려졌다. 원래도 업무량이 상당한데 오늘따라 상담 요청하는 사람들도 많았다면, 그의 오늘 하루는 불을 보듯 뻔했다. 오늘 밤은 그냥 재워야 하나? 진의 축 처진 기분에 따라 나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오늘 저녁은 당신이 좋아하는 고등어 조림이야!”
다시 애써 활발하게 그에게 말을 걸었지만, 그는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화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겨우 미소를 지어 보이는 그의 얼굴을 보곤 나는 어쩔 줄 모른다. 저 미소가 정말 좋아서 짓는 미소인지 그렇지 않은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화장실에선 물소리가 들려오고 나는 화장실에 들어간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화장실 앞을 서성인다. 오늘따라 안절부절못하는 내 모습이 바보같이 보일 것이라는 건 알고 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었다. 곧 화장실 문이 열리고 진이 나왔다. 그는 화장실 앞에 서 있는 나를 보고는 놀란 표정이었다. 그러든지 말든지 난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평소와는 다른 나의 행동에 그는 당황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재미있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그의 속내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다. 그런 그의 모습이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내 그가 나를 껴안아 주었기 때문에. 그의 입술에 키스했다. 그리고 우리는 곧장 침실로 갔다. 침실로 그를 끌고 들어가 그의 바지 호크를 풀고 지퍼를 내렸다. 그의 손도 내 허리 부근으로 다가와 윗도리를 잡아 올렸다. 그런데 내 브래지어를 뜯던 진의 손이 부자연스레 멈췄다. 나는 그를 올려다본다. 그가 또 무엇인가 불안해하는 것 같아 긴장되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결연했다. 미간을 찌푸리고 긴장감이 어린 숨을 내쉬고 있지만, 그가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