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목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나무 아래에 서 있던 청년이 내 앞으로 바싹 다가와 있었다. 아무렇게나 자라난 머리가 검고 긴 그의 얼굴 주위를 지저분하게 흩날리고 있었다.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마른 몸에 가슴이 다 비칠 만큼의 얇은 소재 하얀 긴팔 옷을 걸친 청년의 모습이 기괴했다. 그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다. 넘어질 뻔한 나는 분리수거 봉지가 걸린 부식된 철 소재의 기둥을 잡고 겨우 섰다. 그는 내가 놀란 것에도 개의치 않았다.
"공부할 때마다 소리를 내요. 내가 언제 가장 불안해하는 건지 아는 거예요."
"예? 그, 쥐 소리요?"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 비닐봉지가 걸린 나뭇가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도 그를 따라 위를 올려다본다. 바람이 거세어졌는지 비닐봉지는 전보다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여전히 무언가가 안에 들어있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비닐봉지의 맨 밑 부분은 흔들리지 않는 채. 지금은 왜 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또다시 덜컥 무서워졌다. 지금 보니 비닐봉지의 맨 밑은 조금 불룩하게 보이는 것도 같았다. 분명 뭔가가 들어있다. 고양이든 쥐든 깡통이든.
"그래서 제가 없앨 거예요. 어차피 다들 그걸 바라고 있잖아요."
"하지만, 아무도 없앨 방법을 모르잖아요."
"방법을 찾아야죠. 저번엔 경비원한테 말하고 창고에서 접이식 사다리를 꺼내와서 그걸 타고 나무에 올라갔어요. 손이 닿질 않아서 그만두고 말았지만. 그런데 내가 올라가니까 그걸 알고는 비닐봉지가 하늘로 치솟더라고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자기를 떼어낼 것 같으니까 위로 솟는 거죠. 저건 그냥 보통 비닐봉지가 아니에요."
"비닐봉지가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인다는 거예요? 사람들이 불안해할 때 소리를 내고, 또 떼어내려고 하면 피하고?"
"예. 아주 교활한 놈이에요."
이젠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게 또 무슨 바보 같은 소린지. 이 사람은 미친 게 틀림없다. 모두가 다 미친 것 같았다. 다시 밀려오는 두통에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청년에게 몸이 좋지 않아서 먼저 들어가겠다고 얘기하곤 비틀거리는 다리에 힘을 실었다. 아파트 입구에서 난간을 잡은 채 네 개밖에 되지 않은 계단을 오르고 있는데, 청년이 내 뒤로 발을 끌며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제가 반드시 떼어 낼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발음이 어눌한 목소리에 그를 돌아보자 회색 추리닝 바지에서부터 시작되어 그의 모습이 두 개로 겹쳐 보였다. 현기증이 심한 것 같아 나는 대답할 겨를도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