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가 또 들려."
"여자 웃음소리가?"
"응. 옷 입어."
그는 갑자기 일어서더니 빠르게 바지를 입고 지퍼를 올렸다. 그리고는 나에게는 방금 자기가 벗겼던 내 윗도리를 내밀었다.
“우리를 감시하고 있어.”
진의 말이 이번엔 무게를 담은 채 둔탁하게 떨어진다. 나는 멍한 기분이 들다가 순식간에 기가 차고 만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미쳤어?”
더 이상 말이 곱게 나가지 않았다. 진은 서둘러 셔츠를 입고 차례차례 단추를 채웠다. 굳은 표정의 그를 바라보다가 “비닐봉지 말하는 거지?”라고 묻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이가 없었다. 보지 않아도 내 표정이 기분 나쁜 기색을 띠고 있을 것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옷을 다 입은 그가 한숨과 함께 내 옆에 앉았다. 그러나 표정은 전과 다르게 평온하다.
"당신은 여자 웃음소리가 안 들린다고?"
"응."
"우리가 같이 있거나 섹스할 때마다 웃음소리가 들려."
"그런 건 그냥 신경 쓰지 않으면 안 돼?"
"어. 이대로 가다간 정말 무슨 일 날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내 목소리는 이미 짜증에 치달아 높아져 있다. 그러나 그는 동요하지 않았다. 지금 그의 모습도 내가 알던 평소 진의 모습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늘 불안해하던 모습과는 다르게 그는 지금 굉장히 침착하다. 불안해하고 있는 쪽은 오히려 나였다.
"처음엔 그냥 여자 웃음소리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야. 이제야 알았어. 은희 웃음소리야."
그가 말했다. 진과 내 주위를 부유하는 공기가 뒤틀렸다. 갑작스레 귀에 이명이 울린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런 나를 올려다보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는 진. 말문이 막혀버린 나는 진을 혼자 두고 거실로 갔다. 부엌으로 들어가 가스 불을 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저녁을 준비했다. 진의 말을 듣고 나니 이상하게도 점점 흥분이 가라앉고 머릿속이 깨끗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그 소리가 은희의 웃음소리라고 했다. 응, 은희 웃음소리가 들린다고? 그래, 어쩌면 그게 맞는 것인지도 모르지. 이제 완벽하게 모든 상황이 이해되었다. 꽤 오랫동안 그 이름을 잊고 있었다. 어쩌면 애써 생각할 필요가 없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오늘 낮부터 계속 ‘나는 괜찮아.’라고 되뇌던 것처럼 ‘은희’라는 이름을 되뇌었다. 이미 오래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내 여동생이자, 진의 전 애인이었던 은희의 이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