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은 여전히 비닐봉지를 노려보고 있었다. 비정상적으로 마른 그의 날카로운 턱선과 이어지는 커다란 목젖 때문인지 그의 단호한 표정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할 말이 없어진 나는 DSLR의 전원을 껐다.
“제가 반드시 떼어낼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저번에도 들은 적 있는 말을 그가 반복했다. 그의 눈은 시퍼렇게 빛나고 있었다. 이전에 이웃 아줌마에게서도 보았던 그런 눈빛처럼. 그리고 그는 내 옆을 지나쳐 아파트 입구 쪽으로 사라졌다.
오후 4시쯤 빠르게 집안일을 처리하고 시내로 나가서 사진을 인화했다.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농 안에서 공책을 꺼냈다. 오늘 날짜를 쓰고 비닐봉지가 찍힌 사진을 붙였다. 비닐봉지가 우리와 함께 한 지가 일주일 정도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 전부터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찍었던 비닐봉지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겨보았다. 사진들 속 비닐봉지는 하나같이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바람에 휘날리지 않는 모양이 없다. 왠지 그 모습이 나에게 경고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언제든지 너희들의 세상에 파고들 수 있어.’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공책을 덮었다. 이제 저녁을 준비해야 한다. 간단히 저녁을 먹고 그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으니 일찍 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기지개를 켜면서 부엌으로 갔다. 가스레인지를 켜고 냄비 아래에 불을 붙인다. 그때, 얼마간 들리지 않았던 그 소리가 들려왔다.
쨍그랑, 쨍그랑, 쨍그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