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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봉지 14화

3.

by 김단이


예의 깡통이나 캔이 부딪히는 소리. 그런데 소리가 다르다. 예전과는 다르게 끊일 듯 끊이지 않는 소리인데, 그 소리 안에 감정이 담긴 듯 평소와는 다르게 들리는 아주 맑은 소리이다. 비웃고 있다. 나는 대번에 그 비닐봉지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불을 내리고 가스레인지를 껐다. 현관 문고리를 잡고 신발을 구겨 신었다. 가슴이 뛰었다. 현관을 쾅, 열고 아파트 복도에 섰다. 바람이 쉴 새 없이 불어왔고 비닐봉지가 세차게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아파트 주위에 심긴 나무 주위로 뿌연 석양이 비추고 있었다. 머리 위가 싸한 느낌에 나는 고개를 내밀어 위를 올려다보았다. 10층 정도 위에서 청년이 고개를 내밀고 서 있었다. 그는 무언가를 쥔 채 비닐봉지를 겨냥하며 위협적으로 팔을 흔들고 있었다. 그 무언가가 반짝, 빛을 냈다. 칼! 저건 칼이다! 그에게 뭐라고 소리치려는 찰나에 그가 곧게 팔을 뻗으며 칼을 던졌다. 칼이 반짝이며 고운 포물선을 그리고 비닐봉지에게로 날아갔다. 나는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푹! 마치 사과가 썰리는 것 같은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아아아아악-!"


그 소리 위로, 눈을 뜨기도 전에 자지러지는 긴 비명이 아파트 주위에 울려 퍼졌다. 눈을 번쩍 떴다. 비닐봉지는, 여전히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더 이상 캔이 부딪히는 소리는 나지 않은 채. 하지만, 밑에, 분리수거장과 좀 더 떨어진 밑에…이웃 아줌마의 아들이 휠체어에 앉은 채로 피를 뿜어대며 경련을 일으키는 모습이 보였다. 아이의 어깨와 목이 이어지는 부근에 박힌 칼이 아이가 몸을 떨 때마다 똑같은 리듬으로 함께 떨리고 있었다.


“아아아! 어마아-!”


분노와 원망 그리고 절망이 뒤섞인 갈라지는 높은 목소리로 아이가 소리를 질러댔다. 피가 묻지 않은 곳이 없는 그곳에 경비원이 먼저 뛰어나왔다. 그는, 아이를 보고는 제자리에 멈춰 서곤 한동안 움직이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곧 아파트 입구에서 아줌마가 뛰쳐나왔다. 괴성을 지르며 아들에게 전속력으로 달려가 칼을 빼내려는 그녀의 몸짓이 멀리서도 보였다. 경비원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아파트 입구로 뛰어 들어가고, “아아아아!” 아줌마는 아이와 똑같은 괴성을 지르며 아들의 목에서 칼을 빼내려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힘을 주어도 칼이 빠지지 않는 듯했다. 나는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와 주저앉았다. 비명과 고함이 어우러진 그곳에 더 이상 있을 수 없었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아 나는 우리 집 현관문까지 겨우 기어갔다. 팔에 힘이 풀려 바닥에 몇 번이나 턱을 찧으면서. 현관문을 닫아버리고 양다리를 감싼 채 주저앉아 무릎 위로 머리를 묻었다. 거칠게 숨이 터져 나온다. 진정하려 했지만 진정할 수 없었다. ‘우리를 감시하고 있다!’ 진이 어제 했던 말을 떠올렸다. 제대로 걸을 수도 없는 발걸음으로 나는 안방으로 달려가 공책을 꺼냈다. 비닐봉지가 찍힌 사진들을 찢어내 바닥에 펼쳐놓았다. 불규칙하게 새어 나오는 숨들 사이로 나는 사진 속 비닐봉지들을 하나하나 넘겨보며 자세히 살폈다. 그러다 하나의 사진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했다. 바람에 세차게 흩날리는 비닐봉지의 안쪽이 아주 조금 들여다보였다.


‘이 새하얀 것! 이 비닐봉지 안에 들어있는 이 새하얀 게 뭐지?’


식은땀을 흘리며 미간을 찌푸리고 그 사진을 눈앞 가까이 가져다 댔다.


‘이건, 손! 손이다!’


이제야 어렴풋이 보이는 것이 매우 당혹스러웠다. 길고 하얀 여자의 손가락 한 마디가 비닐봉지 속 벌어진 작은 틈으로 보였다. 파리한 손톱 모양까지. 비닐봉지 안엔 여자의 손이 들어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깡통 소리는 정체는…. 나는 그만 들고 있던 사진들을 모두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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