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시계
학교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역 안으로 들어가 지하철을 탔다. 그냥 집으로 갈까도 싶었지만, 왠지 가봐야만 할 것 같았다. 지하철로 약 한 시간을 달려 유년 시절, 내가 살던 곳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부모님이 사는 곳. 그리고 나의 모든 것을 한순간에 뒤바꿔 놓은 장본인이 사는 이곳에.
난 망설임 없이 주택가로 들어섰다. 빵집이 있던 자리에 부동산이 들어섰고 내가 초등학생 때 매일 들락거렸던 떡볶이집 간판이 새롭게 바뀌었지만, 주택가로 가는 길만큼은 그대로였다. 간혹 불어오는 바람에 벚나무들의 푸른 잎이 서로 춤을 추듯 흔들리는 이 길. 각자 엄마가 부를 때까지 우리가 뛰놀던 이 거리를 난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었다. 머지않아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 집은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 있었다. 난 그 집 사람들이 날 보지 못하도록 옆집 승용차를 방패 삼아 몸을 숨긴 뒤 그 집을 몰래 엿보았다. 좁은 마당 안 살구나무에는 여전히 살구들이 가득 달려있거나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어릴 적에 우리가 뚫어놓은 구멍 때문에 쓸모없어진 방충망의 모습도 여전했고 담벼락의 낙서도 그대로였다. 그리고 대문 옆 '이정환'이라는 문패도. 그 집 사람들이 다니는 교회 이름이 적힌 플라스틱 스티커도 여전히 그 자리에 붙여져 있었다. 시간의 흔적인지 아니면 그 시절의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집만큼은 전보다 많이 낡아 보이는 듯했다. 나는 주위를 살핀 뒤 조심스레 대문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이정환'이라는 문패 옆, 우체통에 들어있는 편지 두 통을 꺼냈다. 하나는 '이정환' 그리고 다른 하나에는 '조유진'이라고 쓰여 있었다. 각각 서로 다른 카드회사에서 온 우편물이었다. 난 그 우편물을 다시 우체통에 집어넣었다. 말하자면 이 행위란, 내가 자취하는 집으로 이사 오기 전 그가 생각나거나 언니가 보고 싶을 때 틈틈이 하던 일이었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그의 이름이 쓰인 편지를 보면 가지고 나온 커터 칼로 종이를 뜯어 내용을 읽고 다시 풀로 붙여서 우체통에 넣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짓을 하기엔 난 나이가 너무 들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그저 그의 가족 곁을 맴돌 뿐이었다. 의심받지 않는 한에서만 그와 관련된 것은 알아내고, 그와 그의 가족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지켜볼 뿐. 사실 이렇게 해서 얻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오랜만에 이 집에 와 본 결과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여전히 여기 있다는 것만 알아내고 돌아가게 되었다. 그가 돌아왔다는 흔적은 아무 데도 없었다.
난 주택가에서 역으로 가는 길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엄마 얼굴도 볼 겸 예전에 살던 집에나 가볼까 생각했지만 모두 그만두었다. 내가 사는 집에 가서 쉬고 싶었다. 오래간만에 와 본 동네를 살펴볼 겨를도 없이 역 안으로 들어갔다. 아까보단 사람도 별로 없고 한적한 역은 시원했다. 그래서 그런지 밖에 있을 때보단 훨씬 기분이 좋아졌다. 이젠 저녁에도 날씨는 찜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