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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딩버스 Oct 18. 2021

[모로코] 전통 혼례복을 내어준 친구 어머니

예비 며느리로 오해받은 사연

어렸을 때부터 남의 집에 놀러 가는 게 큰 실례라고 생각했던 나는 친구 집에 간 기억이 별로 없다.

친구 부모님이 밥을 먹고 가라고 하거나 조금 더 있다가 가라고 해도 왠지 모르게 불편한 마음이 들어서 집으로 일찍 왔었다.

그런 내가 신세를 제대로 진 친구가 있으니, 대학교 수업에서 만난 외국인 친구의 본가를 방문했을 때이다.


내 첫 직장에는 특이한 제도가 있었다.

근속 1년을 채우면 일주일 동안 해외여행을 갈 수 있었다.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오라는 취지였다.

비용을 지원해준 것은 아니지만, 주말 끼고 총 9일을 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나름의 복지였다.

그래서 나는 겁도 없이 아프리카 여행을 계획한다.

혹자는 북아프리카는 아프리카도 아니라고 하지만, 나는 그때 '모로코'에 꽂혀 있었다.

우리 학교로 교환학생으로 온 친구와 막학기에 친해졌는데, 그 친구가 모로코 출신이라서 궁금함이 있기도 했고,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카사블랑카'라는 지명이 마음에 들어서 꼭 한번 방문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모로코의 수도는 카사블랑카가 아니고 라바트이다.)


모로코까지는 직항이 없어서 아랍에미리트에서 경유를 해서 도착했다.

여행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혼자서도 씩씩히 모스크를 구경하고, 현지에서 만난 여행객들과 마라케시 사막의 숙소에서 잠을 잤다.

다만 문제는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이동할 때였다.

모로코는 아랍 국가라서 아랍어가 기본이지만 불어로 병기를 할 정도로 불어가 많이 쓰이는데, 영어는 지원이 거의 되지 않았다.

기차를 탈 때마다 이 플랫폼이, 이 방향이 맞는지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열차를 예매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영어 지원이 안되어서, 불어 언어를 우선 선택한 뒤 구글 번역기로 비슷한 이름으로 나오는 곳을 선택해야 했다.


몇 번 그렇게 하다가 푸념도 할 겸 와이파이가 되는 숙소에서 모로코 친구에게 페메를 보냈다.

"나 지금 모로코 여행 중인데 영어가 안 통해서 너무 힘들다. 기차 탈 때마다 잘못 탈까 봐 걱정이야."

서울에 있던 친구는 분명 8시간 시차가 날 텐데도 거의 즉시 답장이 왔다.

"뭐라고? 너 지금 모로코 여행 중이라고? 혼자야? 기차를 탄단 말이야?"

친구는 기겁을 했다. 외국인 여자 혼자서 현지인들이 타는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는 게 사실상 굉장히 위험한 거라고 했다.

왜 모로코에 가면서 자기한테 말을 안 했느냐고, 알았으면 자기가 다 도와줬을 텐데 여행 거의 끝날 때쯤에야 말하느냐고 혼이 났다.

지금은 귀화해서 한국인이 되었고, 나보다 더 한국의 세금 전문가가 된 이 친구가 너무 바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딱히 말은 하지 않았던 것인데 친구는 은근 섭섭해하는 것 같았다.

여행은 잘하고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친구를 안심시켰다.

다만 음식에 향이 너무 강해서 잘 먹진 못하고 오렌지 주스만 잔뜩 먹고 있다고 말했다.

친구는 마지막 일정에 자기네 집을 꼭 추가하라고 하면서 내 여행 계획을 바꿔줬다.


기차를 타고 친구네 도시로 이동했더니, 친구 아버님께서 기차역까지 마중을 나와주셨다.

영어를 잘 하진 못하셨지만, 한눈에 나를 알아보시고 나를 친구 집까지 친히 운전해주셨다.

친구의 둘째 남동생이 영어를 잘해서 동시통역사로 분했다.

한국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다른 모로코 지역을 여행한 이야기를 하면서 수다를 떨었다.


집에 도착했더니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특유의 아랍 향(?) 때문에 밥을 많이 못 먹었다는 내 말을 전해서, 친구의 어머니께서 특별히 향신료를 많이 넣지 않은 온갖 음식을 준비하신 거였다.

아들이 저 멀리 한국으로 유학을 가 있는데, 그 유학 간 나라에서 친구가 여행을 왔으니 반가우셨나 보다.

친구의 어머니께서는 인자한 웃음과 함께 디저트를 계속 꺼내 주셨다.


배가 터질 지경으로 이것저것 먹고 거실 소파에 앉아서 두리번거리다가 가족사진을 발견했다.

모로코 전통 옷이 참 특색 있고 예쁘다고 말했더니, 어머니께서 한번 입어보겠냐고 하셨다.

나는 냉큼 그러겠다고 대답했고, 그렇게 우리의 패션쇼가 시작되었다.


어머니께서는 본인의 옷장에 고이 가지고 있던 온갖 옷과 장신구를 꺼내셨다.

내 인생에 첫 비단옷이었다.

꽃무늬 자수가 놓여있는 드레스부터 치렁치렁한 망토도 입어보고, 화려한 팔찌와 시계, 목걸이와 왕관까지 써봤다.

이 옷은 잠옷이다


한국에서는 전혀 볼 수도, 구할 수도 없는 옷들이다 보니 주시는대로 다 입어봤다.

옷이 정말 다 너무 예뻐서 나도 모르게 리액션이 커지다 보니, 어머니께서는 나를 인형 옷 갈아입히기 하듯, 머리부터 발 끝까지 나를 풀세팅시켜주셨다.

이것저것 매칭을 시켜보고 잘 어울리는 차림이 되면 사진도 찍어주셨다.

어머니께서 결혼하실 때 입었다는 전통 혼례복까지 입어보고 나서야 우리의 한바탕 패션쇼가 끝이 났다.

남동생 두 명과 아버지께서는 이미 상당히 피곤해 보였다ㅋㅋ


그날 저녁은 둘째 남동생과 그 친구와 함께 외식을 했다.

둘 다 내가 졸업한 학교로 다음 학기에 교환학생을 온다고 하길래 내가 선배로서(?) 저녁을 쐈다.

게스트가 밥을 사는 게 어딨냐고 했지만, 나는 이미 충분히 환대를 받은 터라 이렇게라도 보답을 하게 해달라고 했다.

다음 날도 친구 동생이 드라이브도 시켜주고 유명한 관광지로 투어도 시켜줬다.

혼자서만 여행을 다니다가 현지 가이드가 생기니 든든해져서 마음 놓고 실컷 구경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모로코에서의 마지막 며칠은 길을 잃어버리거나 사기를 당할 위험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여행할 수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한 동안 친구 어머니와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패션쇼 사진 뭉터기를 이메일로 보내주시기도 했고, 내가 잘 지내는지를 종종 물어보셨다.

지금 생각하니 내가 아들의 여자 친구라고 생각하신 것은 아닌지 싶다만^^; 친구가 알아서 잘 설명했겠지.


모로코의 전통 옷을 입어보면서 즐거워한 나를 보고 친구 어머니는 사업 아이디어를 얻으셨다고 한다.

외국 관광객에게 전통 음식과 옷을 체험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

그때가 2016년이었어서 내가 다녀간 뒤로 바로 당장 사업을 시작하지는 않으셨지만, 후에 에어비앤비가 활성화되면서 친구 방을 에어비앤비 하면서 옵션으로 그런 경험을 제공한다고 들었다.

아예 다른 문화권에서 이렇게 다양한 옷을 입어볼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되겠는가.

사막에서 산 터번보다도 훨씬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의상이라서 더 많이 사진을 남겨두지 못한 게 아쉽다.

또 모로코에 가게 된다면, 그때는 빈손으로 가지 않으리! 고운 한복 한벌을 사가 져 가야겠다.

선뜻 예쁜 옷들을 입어보게끔 해주신 어머니,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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