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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uding Aug 06. 2016

365일, 둘이 된 시간#1

Dear 그녀에게 <기억하니?>

아직까지 내 마음은 2015년 8월에 머물러 있습니다. 어느덧 하나였던 우리가 둘이 된 지 365일이 다돼갑니다. 그녀와 하나였던 시간보다 이제는 둘이 된 시간이 더 많습니다. 그녀는 지금쯤 뭐 하고 있을까요? 살며시 물어봅니다.


긴 시간을 혼자 보내면서 많은 걸 느끼게 됐습니다. 그동안 있었던 그녀와의 아름다운 추억을 하나씩 살펴가며 그녀 옆에서 뭐든 돼보려고 했습니다. 그냥 그걸로도 괜찮다고 생각하면서요. 1년이 다돼가는 시간이 흐르고서야 그녀가 뭐하고 지내나 다시 한 번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우리가 나눴던 문자는 8월 8일 이전으로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네요. 그녀와 있었던 행복한 추억들을 내 손으로 지웠습니다. 8월 8일부터 그녀와 싸우고 그녀를 붙잡은 이야기뿐이에요. 왜 이렇게 됐는지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냥 그녀가 좋다고 어떻게든 연락하려고 애쓰던 내 모습만 남아있기에. 그렇게 추억을 되새김질하다 보니 어느덧 그녀와 둘이 된 지 1년이 지났어요. 그렇게 그녀와 둘이 된 지 4계절이 지났어요.





여름이 왔어요.



2015라는 숫자가 조금 변해 2016이 됐어요. 그렇게 새로운 여름이 왔어요. 그녀는 여름을 참 싫어했어요. 땀도 많이 나고 끈적인다고 여름에는 돌아다니는걸 별로 안 좋아했어요. 그녀가 여름을 싫어한다는 걸 처음 알게 됐어요. 그래서 녀의 옆에서 뜨거운 햇볕을 막아주고 싶었어요. 그녀의 옆에서 내리는 소나기를 막아주고 싶었어요. 그렇게 옆에서 꼿꼿하게 서있는 든든한 나무가 되려고 했어요. 백 년 만 년 옆에서 그녀가 싫어하는 햇볕과 소나기를 막아주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녀는 내 옆에 있을 수 없었어요. 그렇기에 그녀가 안 보이는 곳에서 더위를 식혀줄 바람이 되려고요. 그녀가 싫어하지 않게, 그녀가 덥지 않게 땀을 식혀주려고요. 그런데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하네요. 빗물이 그녀에게 닿지 말라고 더 세게 바람을 불었더니 그녀가 날 막기 시작했어요. 내가 실수했나 봐요. 그렇게 그녀의 눈가엔 눈물인지 빗물인지 모를게 흐르고 있네요. 닦아주고 싶지만 바람이 돼버린 전 그저 천천히 식혀줄 수밖에 없나 봐요. 그래도 다행이에요. 지금 그녀는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 편하게 더위를 피하고 있는 거 같으니깐요.


어쩌면 나는 그녀에게 나무 같은 존재가 될 수 없었던 거 같아요. 내 곁에 있었을 때 그녀가 기댈 수 있도록 든든하게 버텨줬더라면 좋았을 텐데, 내 곁에 있었을 때 그녀가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무언가가 눈가에 흐르지 않도록 그늘을 만들어줬더라면 좋았을 텐데, 소나기가 내리고 천둥 번개가 칠 때 그녀가 다치지 않도록 막아줬더라면 좋았을 텐데 말이에요. 나는 그저 그녀에게 바람일 뿐이었어요. 그래도 괜찮아요. 무더운 여름에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다면 말이에요.





가을이 왔어요.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어요. 그녀가 앉아서 쉬고 있던 나무가 빨갛게 물들고 바람을 맞아 낙엽으로 떨어지고 있어요. 이제 뜨거운 햇볕도 가라앉고 그녀가 일어나 걷기 시작했어요. 무슨 일인지 기운이 많이 없어 보여요. 사랑하는 사람과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취업준비에 지친 건지, 친구와 싸운 건지 어깨가 무거워 보이네요. 지친 마음을 풀어주려고 그녀에게 다가갔어요. 그녀의 머리칼을 흩날려보기도 하고 그녀의 어깨를 주물러보기도 해요. 그래도 그녀의 표정이 좋지 않네요. 결국 그녀가 가는 길을 묵묵히 바라보고자 낙엽이 됐어요. 그녀가 나를 밟고 지나갈 때마다 기분 좋은 소리를 내봤어요. 금방 몸이 바스러지듯 조각나고 아팠지만 그래도 그녀가 웃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조금이나마 괜찮아졌다면 아파도 괜찮아요. 계속 낙엽으로 남아있기로 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아파왔어요. 그녀로 하여금 낙엽이 부서지듯 마음이 부서지는 거 같았어요. 그래도 그냥 이렇게 있음으로 그녀가 웃을 수 있다면 그걸로도 좋았어요. 가끔 힘들어 보이고 지쳐있을 거 같다고 생각될 때마다 그녀가 웃을 수 있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했어요. 연애든, 취업이든 잘됐으면 좋겠어요. 그럴 수 있다면 낙엽처럼 바스러져도 나는 괜찮으니깐요.





겨울이 왔어요.



무슨 고민에 잠겨있듯 힘들었던 그녀 곁에서 낙엽이 되어 보내다 보니 추운 겨울이 됐어요. 더 이상 그녀 곁에 내가 남아있지 않았어요. 나는 다시 그녀 주위에 있을 수 있는 바람이 되기로 했어요. 내가 차가웠던 건지 그녀는 내가 싫다고 말하네요. 그렇게 목도리를 하고 코트를 입으며 나와 멀어지기 시작했어요. 더 이상 그녀에게 다가갈 수 없었어요. 더 다가가면 나를 더 멀리하고 싫어하게 될 테니깐요. 그렇게 멀리서 그녀를 바라보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갑자기 눈이 내리기 시작하네요. 큰 맘먹고 눈이 되기로 했어요. 그녀가 나를 보고 웃어주네요. 조금 더 그녀에게 가까워지고 싶어서 펑펑 내리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녀에게 닿을 때마다 자꾸 녹아 물이 되네요. 그렇게 그녀의 눈가에 내린 눈은 또 물이 되어 흐르기 시작하네요. 이제 나는 어떡하죠?


이제 더 이상 그녀에게 다가갈 수 없게 됐어요. 바람이 돼서 그녀 주위를 맴돌려고 했지만 그럴 때마다 그녀는 나를 더 멀리하고 미워하게 되네요. 눈이 돼서 그녀를 즐겁게 해주려고 했지만 그녀에게 닿을 때마다 녹아서 물이 되고 마네요. 이제는 그럴 때가 됐나 봐요. 조금은 그녀를 더 멀리서 바라볼 때가 된 거 같네요. 그래도 괜찮아요. 떨어지는 날 보며 그녀가 웃고 있으니깐요.





봄이 왔어요.



다시 따뜻한 봄이 왔어요. 그동안 쌓이고 쌓였던 눈은 물이 돼서 흐르기 시작했어요. 차가웠던 내 마음이 녹아 물이 되어 흐르고 있네요. 그녀도 조금은 가벼워진 거 같아요. 마지막으로 그녀가 웃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웃는 모습을 한 번 더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벚꽃이 돼서 그녀 곁에 머물러요. 흩날리는 머리칼에 잠깐 내려앉아보고, 그녀의 무릎에 잠깐 누워보기도 하네요. 가만히 앉아있는 그녀 어깨에 기대고 있으니 이렇게 기분 좋은 날도 없을 거예요. 그녀의 향기가 느껴지고 그녀의 모습이 보여요. 그런데 내려앉은 꽃잎을 다른 사람이 치워주네요. 이제는 가끔 벚꽃이 필 때 멀리서 그녀를 지켜볼 수밖에 없나 봐요.


향긋한 꽃잎이 돼서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어요. 꽃향기로 그녀를 기분 좋게 해주고 싶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바람이 돼서도, 낙엽이 돼서도, 눈이 돼서도, 꽃잎이 돼서도 그녀에게 다가갈 수 없네요. 그런가 봐요. 이렇게 4계절이 지났음에도 그녀와 가까워질 수 없고 계속 멀어지기만 하네요. 이젠 그녀를 놓아줄 때가 됐나 봐요. 정말로 그런 거겠죠? 속으론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젠 그렇다고 계절이 말해주네요. 마지막이라도 좋으니 그녀를 한 번만 봤으면, 한 번만 대화를 했으면 해보고 싶네요. 아니 이렇게 생각해도 어쩌며 마지막이 아니었으면 하네요.


4계절이 왔는데,
그녀는 떠나가네요.
그리움은 커져가는데,
그녀는 작아지네요.


우리 다시 볼 수 있을까요?


_by pu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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