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풋했던 20대, 남자친구가 늘 직장 끝나는 시간에 맞춰 왔다. 재대 후 복학을 준비하는 사람이라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4살 연상쯤 직장 탄탄한 사람을 만나라던 엄마의 바람과 달리 1살 연상의 대학교 졸업도 안 한 남자와 연애를 시작했다. 3년간 이 남자의 지극정성 감성연애에 감동해 제대로 된 연애 한번 안 해 본 나는 결혼까지 하게 된다.
어릴 적 엄마는 추어탕을 자주 만들어주었다. 미꾸라지를 직접 손질해서 채에 잔뼈를 걸러낸 후 시래기와 된장 등의 양념을 넣어 구수하게 끓여줬다.
이상하게 힘든 날이나 몸보신을 하고 싶은 날이면 어김없이 뜨끈한 추어탕이 생각나곤 한다.
연애할 때는 그렇게 잘 먹더니 결혼 후엔 자긴 추어탕 못 먹는다던 남편에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남자들은 무슨 호르몬이 분비되는지 먹지도 못하는 음식을 잘 먹는다며 3년 동안 연기까지 했던 걸까. 내가 그렇게나 좋았던 거라는 생각으로 넘어가지만 먹지도 못 하는 음식을 먹느라 얼마나 괴로웠을지 측은해지곤 한다.
잠깐 비가 그쳤을 때 좀 걷는다는 것이 8 천보나 걸어버렸다. 몸이 노곤하니 추어탕 생각이 났다. 피곤해하는 눈치가 보이면 "추어탕 먹으러 갈까?" 남편이 먼저 묻는다.
먹지도 않으면서 자기는 고등어구이 먹으면 된다며 기력 회복하러 가자고 한다.
아침부터 쏟아지는 비에 더 분주했고 심란한 일도 있었던 꿉꿉한 주말이었다. 뜨끈한 추어탕 한 그릇에 몸과 맘이 위로를 받는다. 남편과 아들이 바싹하게 구워진 고등어 살을 큼직하게 발라 고추냉이 간장에 찍어 맛있게 먹어주니 흐뭇하다.
추어탕을 좋아하지만 추어탕을 못 만드는 여자다. 21년 차 전업주부지만 아직도 힘든 건 꽃게, 낙지, 미꾸라지 같은 살아있는 식재료를 손질하는 것이다.
추어탕을 만들려면 진액을 제거해야 하기에 살아있는 미꾸라지에 소금을 뿌려 손질하고 씻어야 하는 데 이건 도저히 못하겠어서 맛있게 하는 곳에서 사 먹는 음식으로 정했다.
그런데 고등어 추어탕이라고 들어봤을지 모르겠다. 집에서도 쉽게 만들 수 있는데 각종 채소와 고등어통조림을 고추기름내고 육수 넣어 푹 끓여 간하면 추어탕과 비슷한 맛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