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아이를 다 키우면 하와이에서 하와이하와이 하는 삶을 딱 일년동안 살아야겠다, 맘을 먹었다.
하와이하는 삶이란 무엇이냐면,
아침에 일어나서 조용히 모닝커피를 마시고 쪼리를 끌고 바다로 슬슬 걸어 나가 바도를 타고 ( 서핑아니고 둥둥 파도타고 떠다니기 ) 저녁에는 해지는 해변가에서 훌라 춤을 추는 삶이라고 내가 이름 지은 그런 삶을 말한다.
그리고 가끔은 와이키키해변에서 김밥도 팔고 싶었다.
사실은 글을 쓰는 연재 노동자가 되어 하와이하와이하며 글을 쓰고 싶었지만
아직은 전혀 가능성이 없으니 김밥을 팔아 용돈을 벌어야겠다 계획했다.
코로나가 터졌다.
코로나는 지구의 삶을 통째로 바꾸어 버렸다.
우리는 이동할 수 없었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했고, 아이들을 위한 시설에 근무하던 나는 출근을 하지 못했고, 촬영감독 내 신랑 김해인은 촬영장에 나가지 못했다.
모든 것이 막혀버린 그런 삶 속에서 언젠가 나의 하와이하와이 하는 삶도 기약할 수 없었다.
학교도 못 가고, 출근도 하지 못하고 두 아이와 보내는 코로나의 일상은 그냥 비가 아니라 허리케인, 태풍, 폭우,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암흑과도 같은 날이었다.
꽃피는 봄이 오면 감정이 차고 넘쳤는데 코로나로 생활이 축소되고 움추러드니 감정도 몇가지로 단순해지기 시작했다.
그런 날들이 이어지던 어느 날, 나는 우연히 망원동에서 함께 훌라 춤을 출 동료를 구한다는 뮤지션 복태님의 글을 보았다.
언젠가의 삶을 보장받지 못하는 코로나의 시대,
난 그렇다면 지금 당장의 삶을 살겠다 마음먹고 하와이가 아닌 서울에서 훌라 춤을 추겠다고 결심을 했다.
우리는 마스크를 쓰고 춤을 춰야 했지만 춤을 추는 동안에는 마스크로도 가릴 수 없이 웃고 또 웃었다.
신기하게 춤을 추고 나면 춤만큼 내 마음도 한껏 가벼워져서 나의 다음이 늘 기대되었다.
나의 다음이 기대되는 일은 참으로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라 특별히 소중했다.
나는 앞으로는 이렇게 지금 당장의 마음을 잃지 않고 살아야겠다, 훌라 춤을 추고 나오면서 마음을 먹었다.
출근을 할 수 없어서 친구들과 인터넷 쇼핑몰을 열었다.
출근을 할 수 없어서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아이들은 여전히 학교에 가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한강에서 롱 보드를 타기 시작했다.
우리는 캔버스를 사서 그림을 그렸고 집에서 하루 종일 함께 체스를 두었다.
학교를 가지 않아서 제주도에 집을 빌려 고양이까지 모두 제주도에 갔다.
비가 그치기만을 마냥 기다릴 수 없었다.
언젠가가 아닌 지금 당장, 우리가 이 비 속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충실하고 즐겁게 해 나가는 것만이 우리가 이 시대를 살아갈 수 있는 힘이라고 믿으며 우리는 열심히 춤추고 달렸다.
예상보다 훨씬 길었던 코로나는 끝나고 아이들은 학교로, 나는 새로운 일을, 그리고 김해인은 다시 촬영장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 시간이 남기고 간 흔적과 상처는 너무나 크고 강해서 아직도 가슴이 시리고 쓰리다.
그럼에도 우리의 삶에는 모든 순간들이 나름의 의미를 남기는 것이고, 우리는 비 속에서도, 햇볕 아래에서도 계속 살아나갈 것임을 이제는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불확실한 언젠가보다는 지금 당장의 삶을 살아가라고, 코로나가 내게 남긴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