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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라 Sep 22. 2024

<장마글방>
한 때 비를 가려주었던 사람

엄마와 나, 그리고 때때로 아빠



엄마와 나,그리고 때때로 아빠

나의 유년 시절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저보다 더 잘어울리는 말은 없을 것이다.

우리 아빠는 참으로 이상한 사람이어서 

아주 때때로 나타나 나의 아빠가 되어주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아빠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서 소식을 보내기도 했고

어떤 날은 지금은 미얀마가 된 버마의 정글을 헤매기도 했다.

그 곳에서 만난 아이들을 위하여 가진 돈을 모두 털어 학교를 지어주기도 했고 

병원이 없는 마을에서 때로는 국경을 넘어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기도 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우리 아빠는 내 아빠 노릇은 완전히 잊었구나.. 나는 잊혀졌네.. '

가끔 울적하고 슬퍼졌다.


언젠가 라오스에서 커피농장을 하는게 꿈이라던 아빠는 

어느 날 , 태국 북부에 작은 땅을 샀다.

어느 해에는 그 땅에 작은 연못을 만들었고, 작은 집을 지었다.

시간이 흐르자 커피 나무를 심었고,식구들과 나누어 먹으라며 직접 수확해 볶은 커피를 집으로 보냈다.

그리고 어쨌든, 지금은 라오스에 살고 있다.


시간이 흘러 이젠 내가 성인이 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난 여전히 아빠를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비록 내 아빠로 살아온 시간은 아주 짧지만 

아빠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끊임없이 이 세상을 열심히 살아간 그저 한 사람이었다.

물론, 엄마의 희생과 이해덕에 모든 일이 가능했겠지.

그리고 그 이상한 아빠덕에 지구 반대편 어딘가, 나를 위해 늘 열어둔 문 하나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위로를 받곤한다.


꿈을 꾸는 자는 절대 늙지 않는다.

지금도 아빠는 내 아빠이기보다는 자신의 세계에서 꿈을 꾸며 열심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여전히 이상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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