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이화여대. 실기 시험 보던 날

엄마의 노트

by 은혜


주희의 이화여대 1차 발표 날.

이화여대는 성적으로 1차를 먼저 선발한 뒤 그 안에 들어야만 실기 시험을 볼 수 있다.

성적의 문턱을 넘지 못하면 실기장에 들어갈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잔인함이란!

나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결과를 기다렸지만 , 마음속에서는 같은 문장이 계속 맴돌았다.

'당연히 될 거야,
혹시 아니면 어쩌지, '

사이를 오가며.


대학 입시란 참으로 이상하다.

분명 수많은 과정 중 하나일 뿐인데 그 문 앞에 서면 인생 전체가 걸린 것처럼 느껴진다.


주희는 그 순간에도 미술학원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혼자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며 수험번호를 하나씩 눌러본다.
심장이 느려졌다가, 갑자기 빨라진다.
그리고 화면에 뜬 문장.
1차 합격, 실기시험 대상자.

그 순간, 기쁨보다 먼저 안도감이 밀려왔다.

뭐라고 이름 붙이기 어려운 감정이 가슴을 천천히 쓸고 내려갔다.

여기까지 걸어온 시간들이 숨을 고르는 순간 한꺼번에 밀려오는 기분이었다.




실기시험 날 아침 해도 뜨기 전, 겨울의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아이와 집을 나섰다.
입실 시간은 7시 50분.
겨울 최저기온 한파를 기록하는 날씨에 해도 뜨기 전 시험을 보러 나가는데 쓸데없이 비장해졌다.

학교 앞 스타벅스에 미리 도착해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으며 간단하게 그림을 그리며 손을 풀었다.

7시 30분, 조형대학으로 걸어가는 길.
아이들은 각자의 실기 전형에 필요한 준비물을 안고 각자의 고사장을 찾아 걸었다.


이 자리까지 오기 위해 아이들은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걸어왔겠지.

아이들의 긴장한 말간 얼굴을 보는데 눈물이 자꾸 차 올랐다.

아이들은 매일 같은 자리에 앉아 어제의 자기보다 조금 나아지려 애썼을 것이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아이들의 시간들이 느껴졌다.


*


수능이 끝난 뒤에도 주희의 하루는 달라지지 않았다.
친구들이 하나둘 수시 합격 소식을 전하고 미용실에도 가고, 여행을 가며 일상을 찾아갈 때에도 주희는 여전히 하루 열세 시간 그림을 그렸다.

미술학원에서 함께 그림을 그리던 친구들이 합격하거나, 재수를 결심하며 책상을 비울 때마다 주희의 마음도 함께 흔들렸을 것이다.
혼자만 뒤에 남겨진 것 같은 기분, 나만 아직 출발선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 나는 그 마음을 대신 정리해 줄 수는 없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은 그냥 그 불안한 마음 옆에 함께 서 있어 주는 것뿐.

불안한 마음을 애써 접어두고 주희는 손바닥이 까매지고 손톱이 옆으로 휠 정도로 연필을 쥐고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다.

*



고사실로 들어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고 눈물이 차올랐다.
이 아이들은 이미 결과와 상관없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밀도 높은 시간을 스스로 건너오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아이가 들어간 고사실 문 앞에 서서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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