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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루 Dec 16. 2023

비밀은 비밀로 사라지지 않는다

한 편의 시


비밀은 비밀로 사라지지 않는다


아마, 어렸을 때 일거야

아버지 손목에 찬 일제 시계

은빛의 메탈밴드

하얀 시계판 속 선명한 글씨

CASIO

신비로웠지 이따금 일본이란

나라에 대한 환상과 위대함 속으로


학교 선생들은 하나같이 외쳤어

역사의식 너머 문명의 찬란함 앞에서

지배당한 아픔도 외면한 채

스톡홀름 증후군에 사로잡혔어

위엄이란 이런 거라며

하지만 위엄은 그런데 쓰이는 게 아니야

외제면 모두 좋다는 가난한 시절에도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해질 거라는 환상

자본주의 쓰레기 전술로

사랑보다는 조건

그 조건을 만들기 위한 부지런함이

삶의 비밀을

부유함의 궤도에 안착시킨 듯 보였지만

0.78명

세계 최저 출산율

청년들이 경고한다

고독사와 자살률 1위로

노인들도 후회한다


내 손목에도 그때와 같은 시계가

메어 있지만 만족하지 못하는 나

미묘한 감정에 쏠린 우러름은 끝이 없어

화려한 문화의 쓰레기 더미에서

매몰되며 하루하루

허우적대발버둥 치지


아마, 어렸을 때 일 거야

<비밀의 정원>을 읽고

그 비밀을 발견한

기쁨의 햇살이 사라진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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