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은 비밀로 사라지지 않는다
아마, 어렸을 때 일거야
아버지 손목에 찬 일제 시계
은빛의 메탈밴드
하얀 시계판 속 선명한 글씨
CASIO
신비로웠지 이따금 일본이란
나라에 대한 환상과 위대함 속으로
학교 선생들은 하나같이 외쳤어
역사의식 너머 문명의 찬란함 앞에서
지배당한 아픔도 외면한 채
스톡홀름 증후군에 사로잡혔어
위엄이란 이런 거라며
하지만 위엄은 그런데 쓰이는 게 아니야
외제면 모두 좋다는 가난한 시절에도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해질 거라는 환상
자본주의 쓰레기 전술로
사랑보다는 조건
그 조건을 만들기 위한 부지런함이
삶의 비밀을
부유함의 궤도에 안착시킨 듯 보였지만
0.78명
세계 최저 출산율
청년들이 경고한다
고독사와 자살률 1위로
노인들도 후회한다
내 손목에도 그때와 같은 시계가
메어 있지만 만족하지 못하는 나
미묘한 감정에 쏠린 우러름은 끝이 없어
화려한 문화의 쓰레기 더미에서
매몰되며 하루하루
허우적대며 발버둥 치지만
아마, 어렸을 때 일 거야
<비밀의 정원>을 읽고
그 비밀을 발견한
기쁨의 햇살이 사라진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