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사치

한 편의 시

by 모루

대단한 사치 / 김충석

시집을 한 권 삽니다

최근에 나온 따끈한 시집으로

또 시집을 한 권 구했습니다

절판된 때 묻은 중고 시집으로

나는 사치를 누리며 삽니다

놀라운 자연의 사치에서부터

오래된 인공의 유적까지

산책을 누리며 시간을 유용합니다

한 편의 시를 씁니다

언젠가 엮어질 또 한 권의 시집을 그리며

카페에도 가고

미술관에도 가서

그들의 사치를 같이 나눕니다

볕이 주는 양분을 받으며

생각이 깊어지는 먼 나무의 열매처럼

푸르고 빨갛고 파랗고 주황의

다채로운 생각들로 하루를 채웁니다

시집을 폅니다

사라진 시인이 살아서 옆에 앉습니다

시인은 나의 연인이 되고

책 읽는 나를 넌지시 바라봅니다

시어에 감동하는 나를

흐뭇한 미소로 바라봅니다

시인이 누렸던 사치를

여전히 누리는 내가 신기한가 봅니다

먹고살기 힘든 세상에

시를 쓰며 산다는 건

대단한 사치입니다

고대 로마의 사치가

오늘날의 풍요에 비할 수 없듯

오늘의 사치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 보편적 가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믿음으로

시를 씁니다

그리고 내일도

시집을 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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