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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

詩詩했던 하루

by 모루 Mar 2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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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 하지만 지금은 움츠려야 할 때

 정신을 차리니 보름이 흘렀다.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고 무덤덤하게 맞이한 새해는 아무런 감흥 없이 지났다.

 나는 무기력하게 낮이나 밤이나 불 꺼진 침대에서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폰만 만지작 거렸다.

 일주일이 지나자  4박 5일간 육지로 여행을 떠났고, 때마침 급습한 한파로 뒤덮인 반도의 중심에서 강추위의 겨울을 만났다.

 바닥이 드러난 생기 잃은 민낯은 마른 겨울의 대기로 더욱 푸석거렸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LA에서 발생한 산불은 퍼시픽 펠리세이즈의 고급 주택가를 덮치며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었고, 2005년 양양에서 겪었던 대형 산불이 머릿속에 겹쳐지면서 오렌지 색으로 뒤덮여 소실된 낙산사의 전각이 떠올랐다.  

 2014년에 시작된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역시 지리멸렬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미련스럽게도 쉼 없이 먹어 댔고 소화되지 않는 위장을 비우러 이따금 산책에 나섰다. 최남단에 위치한 섬의 특성으로 영상 13도가 웃도는 낮기온으로 가끔씩 운동 패딩과 파란색 비니를 벗어 땀을 식혀줘야 했다. 그렇게 한 번씩 집에서 해안으로 내려가 서쪽이나 동쪽으로 10킬로 넘게 올레 길을 걸었다.

 삼 년 전만 해도 올레 길을 메우던 관광객들은 비싸고 불친절한 섬의 이미지가 쌓이면서 발길이 끊겨 골목길 곳곳에는 문을 닫은 게스트하우스나 크고 작은 카페가 종종 눈에 띄었다.

 해안 바위 위에는 파도에 밀려온 각종 어구나 잘게 갈려진 스티로폼, 크고 작은 빈 플라스틱병으로 뒤덮여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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