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꼭지
남편으로 살아남기
‘가족은 귀찮은 행복’ 이란 말이 있다. 부정할 수 없는 웃고픈 현실이다. 가끔 내 아내는 남편을 남의 편이라 부른다. 그런 얘기를 듣는 나는 내심 속상하지만 반은 맞는 말이기에 부인할 수 없다.
몇 달 전 아내는 아랫배가 아파와 동네 병원에서 위장과 대장 내시경을 받는다. 검사결과 위에는 별 문제가 없었는데, 대장에 궤양인지 뭔지 알 수 없는 뭔가가 보여 원장은 대학병원에서 정밀 진단을 받아 보라고 소견서를 써 주신다.
갑자기 벼락을 맞은 우리 부부는 그날부터 전전긍긍하며 인터넷을 뒤지고 아내와 비슷한 사례들을 일일이 찾아본다. 안 좋은 소식은 주변에 퍼지고 더 많은 걱정거리를 낳아 눈덩이처럼 커지고 하루하루가 해무에 갇힌 배처럼 느껴진다.
다행히, 대장 내시경 사진 판독을 잘하신다는 H 병원의 K 의사를 찾아내어 진료 예약을 받아낸다. 2주 후에 만난 그는 대장 내시경 CD를 보며 아내의 가족력을 면밀하게 조사한다. 그리고 CT와 피검사를 통해 암진단 여부를 알아보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모든 검사 결과지를 갖고 추후 진료계획을 잡자며 우리를 설득한다. 우리는 그날부터 발 빠르게 행동에 나선다.
그 모든 과정을 마친 후 다시 잡힌 진료실에서 다행스럽게 의사의 소견에 암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궤양 같은 뭔가는 다시 내시경을 통해 확인해 봐야 무엇인지 알 수 있다길래 우리는 다시 대장 내시경을 예약한 후 두 달간 허락된 평화로운 나날을 소중히 보낸다.
마지막 대장 내시경을 통해서도 이상이 없다는 소견을 들으니 이제는 안심이다 싶었는데, 아내가 가끔 어지러움 증상이 있다며 내과 의사에게 질문한다. 선생님은 D신경과를 소개해 주시며 대장은 5년에서 10년까지는 문제가 없을 거라며 모든 진료를 마무리한다.
돌아오는 길, 뭔가가 해소되지 않는 찝찝한 기분을 안고 남편으로 살아남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그동안 병원을 오가며 만났던 수많은 남편들의 노고와 남의 편이 되지 않기 위해 오늘도 연명하는 모든 남편들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귀찮은 행복이라도 붙잡고 하루를 살아보자며 안간힘 쓰는 그대들의 남편에게도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