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꼭지
1 화: 장마지만 걷기엔 적당한 하루
‘ 나는 내가 즐기기 위해서 하는 일이 뭐가 있을까?’
걷다가 갑자기 머릿속에 머무는 생각. 이래저래 곰곰이 생각해 봐도 즐거워서 스스로 찾아 하는 일은 산책이다.
망종이 지나자 제법 무더워진 날씨의 화산섬은 어제부터 장마권에 들었다. 이 주 전쯤에는 규슈에 걸쳐있던 장마전선이 이제 북상한 것이다.
당분간 산책은 힘들겠다 싶었는데 어제와 다르게 오늘은 날씨가 다소 맑다. 선글라스와 모자, 팔토시를 챙겨서 간단히 옷을 입고 해안도로로 내려간다. 어제보다 3도 낮은 24 도라지만 습도가 88%라서 교토처럼 굉장히 습하다.
집에서 벌랑포구까지의 길은 내리막길이라 경쾌하니 즐겁다. 담벼락 위에 줄지어 핀 능소화는 지나치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 담장 너머로 빨간 등대가 보이는 화북포구까지가 오늘 산책코스다.
삼양3동 해안도로에서 화북포구로 넘어가는 올레 18코스에는 길가 이곳저곳에 덩이괭이밥이 수북하니 피어 눈을 즐겁게 한다. 어깨까지 자란 개망초부터 발목에 스치는 앙증맞은 송엽국까지 초목으로 둘러싼 자연은 걷는 이의 마음을 초록으로 물들인다.
뱀 같은 길을 오르내리다 보면 금산 5길의 골목길을 지나서 청풍마을에 도착한다. 고풍스러운 김씨와가 고택 앞 멋진 향나무를 지나간다. 돌담너머로 백 년의 역사가 느껴지는 중후한 고택을 감상하다 보면 곧이어 보덕사가 나온다. 길흉화복의 고된 삶에 섬사람들에게 한 줄 희망이 되었을 신비로운 사찰을 보고 있자면 내 마음도 넉넉해진다. 그렇게 버찌열매 떨어진 인도를 걸어서 마주친 16미터의 높이의 이백 년 넘은 해송은 근사하게 나를 반긴다.
비석거리를 지나서 별도봉으로 곧바로 가지 않고 오른쪽 곤을동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지금은 사라진 곤을 부락이 4.3의 화마에 유적으로 남아있다. 매번 지나치지만 볼 때마다 가슴을 먹먹하다. 기수갈고둥같이 사라진 마을을 지나쳐 화북포구로 향하는 해안도로에 발을 옮긴다.
왼편으로 보이는 제주항에는 5~6층 종합병원 규모의 화물선들과 여객선들이 정박해 있고 가끔은 대형크루즈선도 구경할 수 있다. 해안도로에는 검은 염소 두 마리와 들고양이 두세 마리의 눈 맞춤의 행운을 얻기도 한다. 수면을 차고 오르며 선회하는 바다가마오지와 왜가리들의 근사한 비행도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