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시
그대는 매일 바다에 서 있다
그때 우린 바다에 서 있었다
바람을 몰고 온 지하터널에서 머릿결 날리며
눈부신 두 개의 태양을 바라보며
왼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로
지하와 지상이란 위치만 다를 뿐
내부와 외부란 공간만 차이 날 뿐
몰려 있었건 흩어져 있었건 우린 혼자였고
외로웠고 지독하게 고독했다
바다를 동경하던 우리 눈동자에는
해묵어 짙은 저녁이 쌓이고
혼자이면서도 내가 보이지 않던 우리는
다른 데서 바다를 찾으려 애썼다
외진 철로 위에서 집채만 한 파도 앞에서
창공의 별빛과 홀연히 빛나는 달빛 아래서
열린 공간이든 닫힌 공간이든
아무 상관도 없었던 허상에게서조차
바람, 어디서부터 인지 모를 바람이 분다
우리 영혼을 일깨울 바람이
삶의 바다에 선 우리 곁에서
불어 대던 한줄기 바람이.
바다에 서면 수많은 감정들이 솟구친다. 파도같이 쉴 새 없이 밀려온다. 애월해안에 접어들면 탁 트이는 바다가 나온다. 오른쪽에 그 바다를 끼고 뱀처럼 고부라진 언덕길을 오르내리면 멈춰 서지 않을 수 없다. 왠지 모를 서러움이 엄습하고 막연하게 나를 바라보는 바다와 바다와 눈맞춤하는 나 사이에 미묘한 감정들이 생겨난다. 바람이라도 불면 수만 개의 냄새를 실은 해풍에 후각으로 감지한 어떤 냄새들은 뇌에 자극을 주어 과거의 일들이 떠오른다. 훈풍은 촉각에도 자극을 주어 몸이 살아나는 기분에 취하기도 한다.
먼 대양에서 실려온 유기물과 무기물의 향기와 사람이 닿지 않는 섬의 비린내까지 동반한 바람에게서 생명의 바다라는 자연스러운 경이로움이 내 온몸에 엄습한다. 먼바다에 파랑이 이는 날에는 옷깃이 찢길 듯한 강한 바람에 숨조차 가누기 힘들지언정 해안 바람을 맞으러 달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