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고, 경험하고 싶고, 영어를 잘하게 된다면 외국인 친구를 사귀고 싶어요!"
10명 중 7~8명이 나와 비슷한 대답을 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내가 영어를 잘해야만 외국인 친구를 사귈 수 있다 생각했고, 외국인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그저 꿈만 같은 이야기였다.
한국에서 내가 다녔던 영어회화스터디모임에는 외국인친구들도 굉장히 많았다. 나는 기초반부터 시작했던 것도 있고, 평일 오전에 갔었기에 한적한 편이었다. 평일오전반이었지만 사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저녁반으로 옮길 수 도 있었고, 다른 다양한 방법을 이용하여 한국에서도 외국인 친구를 사귈 수 있는 환경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저 내 영어실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멀리서 동경하듯 바라만 보고 있었다.
가장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캐나다로 떠나왔다. 이젠 모든 게 실천이었고 더 이상 물러설 공간이 없었다. 난 아직 영어실력이 부족해.라는 생각은 여전히 자리 잡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시 부족한 공부를 채우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나는 믿져야 본전이다라는 생각으로 매일 밖을 나가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앞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대화소리, 공원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대화소리. 나 진짜로 캐나다에 왔구나.라는 걸 느낄 수 있는 시점이었다.
당장 '돈'이 급한 부분이었다면, 한국인이 운영하는 업소를 들어가 일을 시작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나에겐 '돈'보다는 여기서의 시간과 경험이 더 소중했다. 무엇보다 캐나다, 밴쿠버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현지 잡을 구하길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내 현실적인 나의 영어실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애초에 조급해하지 않기로 하고 이곳으로 왔다. 나는 크게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었다.
첫 번째, 영어스쿨을 짧은 기간 다닌 후, 일을 구한다.
두 번째, 도서관, 교회 등 내가 참여할 수 있는 영어클래스를 알아보고 참여해 보도록 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내가 선택해 온 길은 두 번째이다. 영어스쿨을 다니기 위해 트라이얼 수업을 여러 곳 다녀보았지만 그곳에서 멍-때리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매일 시간에 얽매여야 한다는 것이 싫었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열리는 클래스들을 알아보았다. 밴쿠버공공도서관에서는 무료로 ESL가 열리고 있었다. 많은 지점 중 열리는 곳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처음 ESL 참여한 날이었다. 어떤 클래스에 참여한다는 건 처음이었고, 어떤 식으로 진행이 되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일방적인 짧게 나누는 대화 외에, 한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 상황도 이 날이 처음이었다.
10명 남짓 사람들이 왔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이 날, 중국인 친구와 일본인 친구, 나 이렇게 셋이서 대화를 하게 되었다.
한국, 중국, 일본. 비슷한 언어를 쓰는 것 같지만 전혀 다른 언어의 세 나라 사람이었다. 나는 영어를 못 하지만 이들과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 '영어'밖에 없었다. 내가 일본어 할 수 있는 것도, 중국어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나마 버벅거리며 조금이라도 말할 수 있는 '영어' 만이 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당일 이야기를 나누었던 질문들이다
다른 두 친구들은 나보다 훨씬 영어를 잘했다. 그렇게 대화를 시작했는데 대화를 하면서도 나에게 질문이 돌아오면 흐름이 끊겨버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말할 수 있는 문장의 길이는 짧았고, 한정적이었기에 나의 대답도 단답으로 내리고 끝이 났던 것이다. 나는 대화를 하면서도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내가 영어를 못해서 피해 준다고 생각했다.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땐, 머릿속에 한국말이 맴도는데 말로는 영어를 뱉아야 하는 그 상황 속에서 모든 게 뒤엉켜버렸다. 결국 나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말을 해버린 경우가 많았다. 이야기를 하면서도 Sorry라는 말로 시작해 Sorry라는 말로 끝났던 거 같다.
"Reina, Don't need to sorry."
중국인 친구 SIA 가 해준 말이었다. 내 생각을 전달하지 못하고 지체되고 있을 때 나는 Sorry라는 말과 함께 미안하다는 제스처만 연발하고 있었고, 그때 들은 말이었다. 이렇게 말해준 SIA에게 너무 고마움을 느꼈다.
나는 영어를 못 해서 너무 미안하다며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며 이야기를 했을 때, 그들은 너는 충분히 우리와 대화를 하고 있다. 우린 이미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우린 친구라며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는 그때 까지도 형식상 해주는 말인 줄 알았다. 스스로에게 다음부터는 더 잘하자며 다짐하고 있을 때, 친구들은 나에게 만나서 너무 반가웠다며 인스타그램 친구 하자고 말을 건네어왔다. 신기한 일이었다.
나는 이 순간들이 즐거웠지만 내가 영어를 못 해서 피해만 주는 줄 알고 있었다. 친구들을 내가 말을 못 해서 답답해했을 거라 생각했다.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내가 이들과 소통하면서 느꼈던 즐거웠던 감정, 이들도 함께 느꼈던 것이었다.
결국 '친구'라는 관계라는 것은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
언어와 소통이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서로 통하는 마음이라는 걸.
그 서로 통하는 마음을 확인하기 위한 수단이 '언어'이고 '소통'이라는 걸.
나는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 나는 '언어'를 못하면, '소통'을 못하면 친구를 사귈 수 없다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영어를 못 했던 것에 미안해했고, 영어를 못 해서 그들을 늘 동경하듯 바라만 보고 있었고, 나는 할 수 없는 거라 생각했다.
한국에서 충분히 할 수 있었지만 못 했던 이유,
지금까지 꿈으로만 남아있었던 이유,
내가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는 이들과 소통하면서 영어보다 더 소중한 걸 알아차릴 수 있는 하루였다.
영어를 못 하는 나지만, 평생의 꿈이었던 '외국인 친구 사귀기'. 나의 버킷리스트 하나를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