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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ina Aug 17. 2023

캐나다 워홀 200일 차, 시작점으로 돌아오다

워킹 없는 워킹홀리데이, 그리고 새로운 시작

이젠 7개월 차로 달려가고 있다. 잘 다니고 있던 일자리도 그만두었다. 일정하게 안정적으로 들어오고 있던 수입은 다시 없어졌다. 가끔 다니던 단기 아르바이트도 이젠 가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8월부터 '해외직구구매대행업'을 시작했고 또 다른 매거진 'Reina의 사업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캐나다에 워킹홀리데이에 가서 갑자기 국내 사업자를 낸다고? 어떻게 보면 정말 뜬금없는 전개이기도 했다. 내가 생각해도 전개가 이렇게 흘러갈 줄은 한 달 전만 해도 몰랐으니 말이다. 한 달 전, 나는 New Westminster school에서 Summer shool 영어 수업과 함께 Nanny로 일을 하고 있었다. 평범하다면 평범한 워킹홀리데이 생활을 지내고 있었고 한 달이 지난 현재 나만의 홈페이지를 만들고 사업자를 내어 일을 진행하고 있다. 이제 막 시작했기에 눈으로 보여지는 건 하나도 없다. 보드게임 '젠가'처럼 단단하게 쌓아 올린 듯 보이지만 구멍들이 생기고 우르르 무너지고 쌓아 올리다가도 무너뜨리고 그렇게 만들어가는 중이다. 정말 바쁘고 최선을 다해 하루를 보내지만 밤이 되고 누우면 '나 뭐 했지?'라는 생각이 드는 생활을 보내고 있다.


워킹 홀리데이 200일 차 내가 여기까지 오기까지 모든 걸 풀어낼 순 없겠지만 그래도 하나씩 풀어가 보려 한다.

나는 ISS of BC에서 진행하는 GTH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었다. 5월 말 여름학기에 들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주었고 7월부터 무료 영어 스쿨을 다닐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내가 일을 하고 있었기에 이 기회를 가을 학기로 미루려 했다. 학교 위치와 일을 하러 가는 곳은 이동시간이 너무 멀었고 가을학기 온라인 수업 듣자라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내가 왜 일 때문에 영어공부를 미뤄야 할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나에게 우선순위는 현재 이 일이 아니라 '영어'와 여기서만 할 수 있는 '경험'들었다는 걸 복기시켰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7월엔 학교와 일을 병행할 수 있었다. 

7월까지 일을 하고 그만두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학교를 다니며 일을 함께 하며 일주일쯤 흘렀을까 이 생활이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밴쿠버라는 환경도, 일하는 곳도, 여기서 생활하는 패턴 자체도 조금씩 익숙해져 가고 있던 나였다. 그리고 이 익숙해져 가고 적응해 가는 나의 모습 속에서 과거부터 반복되어 오던 나의 패턴들을 하나둘씩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시기쯤 브런치 글 '과거부터 반복되어 왔던 삶의 패턴을 발견했다'를 써 내려갔다. 그 글엔 일부가 담겨있지만 많은 부분들을 돌아보며 '지금 이 삶이 내가 원하던 삶이 맞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금과 같은 생활을 계속하다가 한국에 돌아간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갈까?


사실 그 어떤 그림도 그려지지 않았다. 분명 캐나다 오기 전 나와 지금의 나는 알게 모르게 많은 변화가 있었고 그렇기에 그 어떤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럼 이대로면 만족할까? 남은 기간 이런 시간들로 채우고 돌아간다면 그게 내가 원하던 방향이 맞을까?


여기서 알게 모르게 답답함을 느꼈다. 밴쿠버에서의 생활은 분명 행복했다. 지금 이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고 매일 감사했다. 그렇기에 이 답답함의 근원을 더욱 알 수 없었다. 정말 며칠간 고민을 끝없이 했던 걸로 기억난다.

어느 순간부터 나를 어느 틀 안에 가두어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일, 어렵게 영어를 쓸 수 있는 환경의 일을 구했으니 여기서 계속 일해야 한다는 생각과 (9월쯤 장기간 여행계획이 있었기에) 9월까지는 일하고 그만둬야지!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 기간까지는 여기서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나의 발을 묶고 있었다. 이 부분은 정말 작은 부분에 불과했다.


그럼 여기서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일을 구한다면 해결이 될까?

여기에는 얼마나 더 있고 싶어? 비자를 연장하고 싶어? 한국에 돌아가면 어떻게 살고 싶은데?


나 스스로에게 끝없이 되물어봤다. 그렇게 내가 원하는 미래를 구체적으로 하나씩 그려가보기 시작했다. 내가 그린 미래에는 한국에 가면 이렇게 해야지, 저렇게 해야지, 한국에 가면 이런 삶을 살 거야.

조금씩 그려지는 내 미래를 보면서 '지금은 못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자.

이게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 순간부터 내가 할 수 있는 부분들을 하나씩 다 건드려보기 시작했다. 이렇게는 할 수 있는지, 저렇게는 할 수 있는지. 이렇게 하면 어떻게 방향이 흘러갈 수 있을지, 저렇게 하면 어떻게 흘러갈 수 있을지. 그리고 여기까지 왔다.

6개월 만에 시작점으로 돌아왔다. 캐나다에서 '백수'가 되었고 대한민국에서 '사업자'를 냈다. 캐나다 도착 첫 달처럼 수입은 없다. 캐나다 첫 달처럼 모든 걸 내가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다. 캐나다에서 어느 정도 안정화된 이 생활을 놓는다는 게 쉽지 않았고 나는 이 생활을 놓아야만 더 많은 걸 배워나갈 수 있다는 걸 무의식적으로 알 수 있었다. 7월, 1달 전 내가 느꼈던 답답함은 '안정'이라는 달콤함에 묶여 원하는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는 스스로의 모습으로부터 올라온 '답답함'이었던 것이다.


한 가지 6개월이라는 시간이 주는 굉장함도 알게 되었다. 정말 순식간에 지나간 시간인 듯했지만, '안정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시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지금 시작한 이 일도 조급함을 느끼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부분부터 하나씩 차근차근해보려 한다.

지금은 모든 게 서툴고 한 가지를 하더라도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6개월 후에는 또 어떤 모습일지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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